제1규칙, 신체접촉 금지

놀이와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들

by 한희

모 초등학교의 1학년 교실에서는 학급 규칙이 접촉 금지였다고 한다. 아이들의 징징거림과 부모들의 잔소리가 만들어낸 최악의 규칙이라고 생각한다.


놀이가 사라진 교실문화에서 생활한 아이들과 놀이를 하다 보면 종종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술래가 치면 때렸다고 울고 술래에게 죽으면 너 때문에 내가 죽었다고 주먹을 날리기도 한다. 놀다가 잘못해서 성기에 몸이 스치면 성희롱과 추행을 당했다고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외친다.


부모들은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알까? 놀다 보면 느낌이 있다. 쟤가 날 정말 아프게 하려고 그런 것인지 아니면 신나게 놀다가 잘못해서 그런 건지. 물론 어떻게 맞은 것이든 눈물이 나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복수하고 싶거나 놀이를 끝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다시 놀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든다.


학교폭력위원회에서 위원으로 일하면서 초등학교 학교폭력이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초등학생들은 놀이를 가장한 폭력을 일으키기 때문에 놀이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놀이를 하다 보면 다칠 수 있는데 이것이 고의로 한 것인지 아니면 놀이 과정에서 실수로 일어난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이 얘기를 들은 학부모 몇몇은 중간놀이시간(1,2교시를 묶어서 수업하고 중간 쉬는 시간을 30 분주는 것)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놀지 않으면 폭력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의 결과였다.

놀지 못해서 놀이의 탈을 쓴 폭력이 나타나는 것이란 생각은 왜 하지 못할까?


즐거움의 발견 플레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가학적이고 잔인한 놀이는 놀이의 부정적 측면이 아니라 놀이가 아니다’

라고 얘기한다. 한 번도 놀이였던 적 없는 폭력을 우리는 놀이의 부정적 측면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폭력은 항상 권력관계 안에서 일어난다. 권력을 가진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기 위해 힘을 행사하는 것인데 놀이는 권력관계 자체를 무너트리고 시작한다.


첫째, 힘을 가진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놀이 밖에서의 권력은 놀이로 들어올 때 깨질 수 있다. 힘이 세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인기가 많거나 등등의 다양한 힘을 가진 아이들. 일상생활에서 그 아이들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놀이 종류에 따라 그 아이들을 이겨볼 수 있는 기회를 잡기도 한다.


둘째, 힘이 센 자는 엎드려야 한다.

놀이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에 이기 고지는 것보다 재미있게 뛰었는가가 더 중요하다. 힘이 센, 잘하는 아이가 있으면 놀이가 재미없게 흘러간다. 그래서 깍두기를 세우거나 능력이 비슷해질 수 있도록 팀원을 구성한다. 잘하는 아이들은 간혹 친구들을 봐주기도 한다. 금을 밟았지만 못 본 척해주고 실수해서 시작하자마자 끝나면... 다시 한번 할 수 있기 기회를 주기도 한다. 이것은 상대가 불쌍해서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나와 상대의 능력차가 크면 시시하기 때문이다.

배드민턴을 친다고 생각해보자. 난 엄청나게 잘하는 사람이고 나와 함께 치는 사람은 초보다. 만약 배드민턴 경기를 하는 것이었다면 신이 나서 아주 짧은 시간에 그를 이기고 쉬러 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즐겁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놀이라면 상대가 공을 칠 수 있도록 잘 던져 줄 것이다. 적어도 강스파이크를 날리는 일은 안 할 것이다. 왜? 그럼 재미없으니까.

폭력은 한 번도 놀이었던 적이 없다는 말이 이해가 되는가? 폭력은 힘센 자가 약한 자를 밟고 올라가서 뛰며 ‘너를 밟고 뛰니 더 높이 뛸 수 있다’고 신나 하는 것이고 놀이는 힘센 자가 약한 자의 손을 잡고 함께 뛰면서 점프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셋째, 상대가 즐거워야 한다.

폭력은 상대가 괴로워할수록 쾌감을 느낀다.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위대함과 존재감을 인정받는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누군가 자신 앞에 엎드리고 머리를 조아려야만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고 존중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놀이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놀이에는 반드시 친구가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놀이를 친구가 함께 해주기를 바란다면 매 순간 친구의 표정을 살펴야 한다. 놀이를 하다가 내 실수로 다친 친구를 앞에 두고 웃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때로는 놀이를 하다가 놀리는 경우도 있다. 상대의 실패를 위한 심리전을 펴기도 하는데 이때는 상대가 웃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론 짜증을 내거나 울기도 하는데 이 과정은 상대와의 심리적 경계를 확인하고 배우는 과정이다. 상대가 울면 바로 놀리는 것을 멈추고 곁에 있는 친구들이 놀리는 친구를 막아서고 보호막이 되어주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언어폭력과 놀이에서의 놀림이 구분되는 것은 상대의 반응에 어떻게 반응하냐는 것과 놀림의 주제가 무엇이 되는가가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보통 놀이에서의 놀림은 이번에 실수를 해서 진다거나 자신의 신체를 활용한 희화하게 많은데 반해(엉덩이춤, 이상한 표정 등) 언어폭력은 상대의 인격과 모독하고 외모를 비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놀이 경험이 없는 아이들과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놀이가 있다. 그중 대표적인 놀이가 개뼈다귀라는 놀이다.

개뼈다귀 놀이는 바닥에 뼈다귀 모양을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놀래를 술래가 끌어당기거나 밀어서 선 밖으로 나오게 하는 놀이다. 선 밖으로 밀려 나온 놀래는 다시 술래가 되고 놀래의 수가 줄어드는 만큼 술래가 많아져서 놀래가 모두 사라지면 술래가 이기고, 술래의 공격에도 죽지 않고 양끝의 집을 두 번 왔다 갔다 하면 놀래가 이긴다. 단, 출발하는 집에 같은 팀이 남아있으면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규칙이 있다.

개뼈다귀 놀이는 밀고 당기고, 달리다가 부딪히는 등 신체 접촉이 많이 발생하는 놀이 중 하나이고 그래서 놀이 경험이 없는 아이들과 하기에는 위험한 놀이다.


놀이 책에 있는 놀이를 아무거나 골라서 놀다가는 피를 보게 되는데 여기서 피는 난처한 상황을 겪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진짜 피를 흘릴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피와 눈물로 아비규환이 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싶지 않다면 신체접촉이 많은 놀이를 하기 전에 먼저 안경놀이를 하고 시작할 것을 권한다. 안경놀이는 잡고 미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치는 놀이라서 쉽게 놀이의 감을 익힐 수 있다. 이 놀이를 충분히 연습하고 개뼈다귀에 도전하기를 바란다. 개뼈다귀는 술래가 놀래를 잡아당겨서 바닥에 아이들이 나뒹구는 경우도 많고 옷이 찢어지거나 단추가 떨어지기도 한다. 이 놀이를 할 때는 절대로 후드티를 입으면 안 된다. 모자를 잡혀서 숨을 못 쉬는 경우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개뼈다귀 놀이는 정말 쉽기도 하고 정말 어렵기도 한 놀이인데, 놀이 경험이 많지 않은 아이들이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움직일 때 한 없이 쉬운 놀이가 된다.

2학년과 5학년의 아이들이 함께 놀이를 할 때의 일이다. 서로 친하지 않은 두 학년의 아이들이 한 편이 되어 뼈다귀 끝 집에 들어가 있는데 5학년 아이들은 자신들이 죽지 않기 위해 2학년 아이들을 바깥으로 밀어냈다. 그래서 술래는 정말 식은 죽 먹기로 조그마한 2학년 아이들을 쭉쭉 잡아 뺐다. 5학년 아이들은 서로 안쪽으로 들어가기 위해 난리가 났고 친구들이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자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힘센 5학년 아이들이 술래를 밀며 건너편 집으로 갔고 몸집이 작은 2학년 아이만 집에 남게 되었다. 건너편으로 갔던 5학년들이 다시 원래 집으로 돌아오려 했는데 같은 편이 집에 있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규칙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고 2학년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야! 그냥 죽어! 너 때문에 못 들어가잖아! 빨리 죽으란 말이야!!”


그렇다. 전래놀이가 항상 화기애애하고 의리가 넘치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놀이 경험이 많지 않은 아이들은 혼자 살기 바쁘고 상대의 자살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이기기 위해서라면 상대의 아픔 따윈 관심도 없다. 잡아서 바닥에 던졌을 때 퍽! 소리가 나고 비명소리가 들려도

‘난 술래잖아요. 어쩔 수 없지.’하면서 미안해하지 않거나 또는 ‘와! 잡았다!’하면서 나뒹굴고 있는 아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음 사람을 잡으러 간다.


우리 아이들도 그랬다. 그러던 아이들이 세 번 정도 놀이를 해보더니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술래가 달려오면 가운데 2학년을 넣고 5학년들이 어깨동무를 해서 올 타리를 쳤다. 그리고 한 명이라도 끌려가는 아이들이 있으면 두, 세명이 달려들어 아이를 잡아주고 도리어 술래를 잡아당겨 죽이기까지 한다. 한 명이라도 더 살아야 유리하다는 것을 안 아이들은 어린 동생이 무서워서 못 넘어오고 있으면 할 수 있다고 응원을 한다.

술래가 미는 과정에서 명치를 맞은 한 5학년 남자아이가 숨도 못 쉬며 울다가 정신을 차리고 가장 먼저 한 말이 2학년 동생을 보며 ‘ 저 새끼 죽여버린다.’였다. 난 정말 해코지를 할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다음 판에서 일부러 공격을 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래서 다음 판에 그 아이와 밀착해서 경계를 하고 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같이 술래를 하면서 다칠 수 있다는 것과 일부러 때린 것이 아니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5학년 남자아이들 중에 사고가 많았는데 한 아이는 쓰러져서 한참을 울었다. 그러자 다른 5학년 친구들이 등을 쓸어주며 괜찮냐고 묻고 물을 건네며 함께 나무 아래로 가서 앉아 있어 주었다.


신체접촉을 금지하면 접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신뢰, 사랑, 연대, 든든함과 친밀감은 어떻게 얻으라는 것인가? 몸이 다치는 것이 두렵다면 어떻게 힘을 조절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이 표현하는 거절의 비언어를 어떻게 읽을 것인지를 연습해야지 '근처엔 가지도 마'라는 말을 하는 것은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제1규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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