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 충전이 아닌 소진을 걱정하는 아이들
아이들은 나와 함께 놀이하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또 언제 놀 거냐고 묻는 아이들을 보며
'요 녀석들 놀 줄 아는 엄마를 귀신같이 알아보네~인기 많아~홍홍'라고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속내는 다른 것이었다.
물론 내가 적당히 난이도를 조절하며 흥을 북돋아 주는 것을 잘하긴 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놀이도 누구랑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천지차이니까.. 하지만 아이들이 나, 또는 다른 어른들과 놀고 싶어 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 얘 죽었죠? 금 밟았죠?”
“너희들이 결정해. 봤잖아.”라고 얘기하면
“아니에요. 그럼 또 싸우잖아요. 그냥 결정해주세요. 따를게요. “라고 얘기한다.
놀 시간이 넉넉하지 않고, 일상이 피곤해서... 여러 이유들 때문에 놀이에 애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지금 감정조절, 다른 친구를 설득하고 조율하는 과정에 에너지를 쓰게 되면 조금 있다 긴 학원들에서 쓸 인내력이 부족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아껴야 한다. 그리고 지금 같이 놀 친구들은 나의 절친도 아니니 좋은 관계는 유지해서 뭐에 쓸 것인가?
대학 출강을 하다 보면 해마다 대학생들의 변화가 크게 느껴진다. 팀을 이뤄서 하는 워크숍 형태의 강의에서 팀원들과 친해지려 하지 않는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수업시간에 잠깐 보는 사이인데 친해지느라 애쓰고 싶지 않다.”라는 얘기를 전해 들을 때마다 관계 맺기에 쓰는 에너지를 아까워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펙을 쌓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에 최대한 에너지를 절약해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우리의 어린아이들이 커서 마음 쓰기를 아까워하는 청년들이 될까 봐 걱정이 된다.
아이들은 놀면서 다양한 성격의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다양한 성격의 친구들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아야 하는지를 배운다. 때로는 설득도 하고 비위도 맞추며 자신이 원하는 놀이를 계속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 과정들을 거치며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할 때 사람들과 어떻게 조율하며 살아야 하고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이 말을 듣고 바로 “뭐야! 목적이 있으면 안 된다면서? 거봐 배우는 게 있네. 사회성, 갈등 조절, 감정 인식 등 배우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네. 흠, 다 세상 살면서 필요한 능력이야. 좋아 그걸 가르치기로 했어요. 애들을 놀게 해 주죠.”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니다. 그걸 목적으로 아이들에게 놀이를 선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럼 그런 능력이 개발되지 않으면 빼앗을 것인가? 놀이는 그냥 아이들의 권리라는 얘기다. 부모들에게 설득해서 얻어내야 할 자유가 아니라 태어나면서 세상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 준 권리다.
권리 따윈 관심 없다면? 그럼 아이들이 행복해지기 위한 단 하나의 조건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놀이는 그저 놀이다. 놀이에 목적을 달기 시작하면 그것은 놀이가 아니다. 놀이가 오염되는 순간 아이들은 놀이를 의심하고 원래 놀이가 가진 즐거움을 잃게 된다.
놀이 기반 학습을 많이 해온 아이들에게 놀이는 어른들의 음흉한 속내가 숨어있는 학습일 뿐이라는 점을 기억하길 바란다. 놀이에서 꼭 이겨야 하고 다음 판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울고 분노한다. 이 놀이를 통해 뭘 배워야 하냐고 묻는 아이들도 있다. (여기서 뭘 배워야 하느냐는 살면서 필요한 기술이라기보다는 학습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인생은 아주 길고~ '한판 더!'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지금 실패는 끝이 났다는 뜻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확인 기회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얘기를 해줄 수 없어서 난 아이들과 놀이를 했다. 말로 이해할 수는 없어도 몸과 마음으로는 기억할 테니.
회복탄력성, 그릿이라는 어려운 말을 들먹이지 않아도 놀이는 그 모든 행복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