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기적

기적을 만든 사람들

by 한희

자기 발견을 돕는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성교육을 한다고 하니 동료들이 웃는다. 그냥 하던 주제나 계속하라고 하는 사람, 자긴 부끄러워서 못하겠다는 사람, 정말 대단하다는 사람 등 다양한 반응들을 보인다.


나의 성을 안다는 것, 나를 안다는 것


그것은 결국 같은 얘기다. 아이의 탄생 스토리가 어떻게 삶의 큰 기둥이 되어 아이를 지켜주고 받쳐줄지, 자존감과 주체성이 어떻게 성적 자기 결정권에 영향을 미치는지.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다.


'성(性)'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단어가 떠오르는가? 아이들 수업도 같은 질문을 하며 시작하는데, 아이들은 캐슬, 이름, 행성, 남자, 여자, 성별, 성폭력 등을 주로 떠올린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행성을 얘기하기도 하고 자기가 읽은 책에서 본 내용을 흥분해서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얘기들을 들어줄 시간은 많지 않다. 앞으로 해야 할 얘기들이 많기 때문에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들에 하나하나 반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집에서 성교육을 할 때 좋은 점은 바로 이 점이다. 엄마, 아빠 또는 얘기를 나누는 어른들은 아이가 질문했을 때 기다려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어떤 대답을 하던지 들어주고 인정해주며 아이의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일상이 모두 평온하고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내면이 여유롭지 못해서 대화를 망치기도 한다. 특히 성교육을 하겠다고 마음 먹은 날은 더 마음이 급해진다.


성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니?


수성, 목성, 해왕성, 명왕성, 금성... 엄청나게 많아요!


야! 지금 성교육한다고 했잖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 성 말고 남자, 여자 할 때 성말이야!


모르겠어요...


아 짜증 나 내가 널 데리고 뭐하니. 됐어하지 마.



이런 전개라면 엄마 말대로 안 하는 것이 낫다. 물론 학교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루어질 수 있지만 이런 대화나 경험을 하지 않기만을 바랄 수밖에.


엄마의 마음은 잘 알고 있다.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는 아이를 보며 학교에서도 이런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불편감과 예상하지 못한 답변을 보며 당황했을 수도 있다. 아이에게 직접 성교육을 해주고 싶었던 좋은 의도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상황이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았고 아직 연습이 부족했으며 그날 마음의 여유도 많지 않았을 뿐이다.


당신과 아이는 문제가 없다. 다만 성교육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날이 문제다. 성교육은 날을 잡아서 맘먹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순간에 틈을 이용해서 하는 것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교육은 오늘 당장 해줘야 하는 1,2,3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긴 시간 동안 해야 하는 곰탕 끓이기와 비슷한 것이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고 몸에 힘을 빼고 가끔 잘 되고 있나 뚜껑을 열어서 확인하듯 기회를 엿보며 하면 된다.






내가 엄마여서 사례나 예시에 엄마가 주로 등장한다. 혹시 불편한 분은 이해해주길 바란다. 모든 양육자를 돌아가며 쓰고 싶지만 그럼 내가 이야기에 몰입이 잘 안된다. 살아있는 사례를 위해 너그럽게 넘겨주시길... 읽는 분에 따라 아빠, 삼촌, 이모, 고모, 할머니, 할아버지, 선생님 등으로 해석해서 읽어주시길 바란다. 난 성교육은 아이를 사랑하고 키우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교육은 그것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보다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이 갖고 있는 성에 대한 지식, 태도, 사람의 표정, 말투, 행동이 더 중요하다. 성기를 말하면서 부끄럽다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내가 가지고 있는 성에 대한 편견이나 왜곡된 믿음 등을 살펴보며 그것을 깨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순, 음경, 잠지, 고추라는 말이 눈, 코, 입을 얘기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온다면 이제 성교육을 할 준비가 됐다


자연스럽게 성교육 기회 잡기 1.

아이에게 존재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싶다면?


주변에 아기를 낳은 가족의 초대를 받았다면 정말 환상적인 기회다. 병원이나 집에 아기를 보러 가서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의 탄생 스토리를 들려줄 수 있다. 제발~ 아팠다는 얘기만 해주지 말고 기다림과 기쁨의 얘기를 먼저 많이 들려주길 바란다. 아이들 수업을 하다가 탄생 스토리 부분이 나오면 항상 아이들이 하는 말이 엄마가 많이 아팠고 고생해서 자기를 낳았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아프고 힘들고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며 아이를 낳는다. 때론 무통분만을 통해 통증이 많지 않은 분만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임신을 한 10개월 마저도 임신 전처럼 자유로웠다는 것은 아니니까 엄마 입장에서 아이를 임신하고 낳은 경험은 기쁘고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핵심은 그런 걸 알면서도 아이를 기다리고 탄생을 기뻐했으며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우리 아이를 선택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 이야기가 아이들에 마음에 전달되기를 바란다.


자존감은 머리에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기억돼야 커지는 것 같다. 눈을 보며 그날의 사건을 뉴스처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감정과 바람을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번 대화는 저학년(초등학교1~3)에 맞춰서


엄마 : 어머~ 아기가 참 예쁘다~

아이 : 응! 엄마 아이가 참 예뻐, 손 하고 발도 엄청 작아!

엄마 : 그러네~ 꼭 우리 어렸을 때 박시(아이 이름) 같네. 우리 박시도 이렇게 작았지. 그런데 이렇게 커졌네~
박시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손톱만 해서 보이지 않았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곁에서 엄마를 지겨주고 도와주고 해서 이렇게 큰 거야. 할아버지는 엄마가 임신했다고 하니까 사과를 사 오셨는데 엄청나게 크고 빨간 사과였어. 엄만 그렇게 크고 빨갛고 달콤한 사과를 본 적이 없어서 이건 어떻게 사셨냐고 물어봤더니 과일가게 아주머니가 임신한 딸 사다 주는 거라는 말을 듣고는 가게에서 제일 좋은 걸 골라주셨다더라. 고모는 예쁜 털모자를 선물해주셨는데 아기 머리카락 없어서 추울까 봐 감기 걸리지 말라고 한 달 동안 직접 뜨개질해서 만들었다고 했지.

( 선물에 가격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한 사람의 바람과 선물의 의미를 강조해야 한다. 10만 원짜리. 백화점 명품을 얘기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

이 이야기의 시작은 병원이 아니어도 된다. 사진을 보면서도 TV에서 드라마를 보다가도 가능하다. 이야기를 시작할 단서, 기회를 잡아라


아빠나 가족뿐 아니라 아기 사진 찍어주신 병원 의사 선생님, 지하철 의자에서 자리 비켜준 아줌마, 항상 아기 몫이라고 덤을 주던 슈퍼 아저씨. 병원에서 배를 만지며 아가야라고 인사해준 4살 아기. 유리문 잡아 준 지나가던 청년 등 주변 모든 이들이 말 걸어주고 건강한 아기(박시)를 축복하고 기다렸음을 얘기해준다


난 이 야기를 초등1학년 수업에서 해준다. 이 얘기를 들은 아이들은 가슴이 벅차 올라서 어쩔 줄 몰라한다. 그 아이의 탄생 스토리는 모르지만 부모나 가족의 마음은 다 같으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가족이었다면 나라도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바다를 가르고 비가 오게 하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네가 태어나고 자라는 이 모든 순간이 기적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 길 바란다. 그 기적을 엄마, 아빠 둘이서만 만든 것이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모두 힘을 모아 만들어 냈다는 것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