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뽀해도 돼?

찌질한 질문의 위대함

by 한희

중학교 2학년 성교육을 갔을 때 일이다.

연애와 스킨십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스킨십에 대해 말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키스, 뽀뽀, 백허그, 머리 쓰다듬기, 허리 감싸기, 손잡기, 팔짱 끼기, 성관계 등등

부끄러워하면서도 열심히~ 꼭 해보고 싶은 스킨십들을 꼽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금세 교실은 활기로 들썩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싶은 스킨십 다섯 가지를 정하고(서로 놀리는 것을 방지하고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위해 암호로 표시) 이것을 친밀도나 연애의 깊이에 따라 순차적으로 배열을 하며 사람마다 원하는 스킨십이 다를 수 있음을 설명을 했다. 여기까지는 아이들도 '그럴 수 있지'라는 반응을 보이는데




내가 원하지 않는 스킨십을 상대가 원할 때 어떻게 하지?





라는 질문을 하면 그때부터는 분위기가 조금 심각해진다. 몇몇 아이들은 당장 헤어져요, 때려줘요!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정말 연애를 하고 있거나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있는 아이들은 표정이 어두워지며 말한다.





내가 싫다고 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 봐 무서워요.




우리는 이런 두려움 앞에 두고 동의와 허락에 대해서, 진짜 사랑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 봐 하는 동의가 진짜 동의인지, 그 동의를 통해 정말 사랑하는 마음을 온전히 나눌 수 있을지에 대해서 얘기하다 보면 1교시가 후딱 간다.

누군가는 그 두려움을 이용해 자신의 욕구를 채울 수도 있고 누군가는 말속에 숨겨진 마음을 듣지 못해 아픔을 줬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그 두려움을 읽고 얘기했을 수도 있다.


난 네가 참 좋아. 그래서 볼 때마다 뽀뽀하고 싶고 꼭 안아주고 싶어. 하지만 네가 원하지 않을 때는 절대 스킨십하지 않을 거야. 난 네가 정말 소중하거든, 네가 날 부담스러워하거나 떠날까 봐 두려운 마음에 허락하는 건 싫어. 네가 거절해도 절대 내 사랑은 변하지 않아. 그것 때문에 널 떠나지 않을 거야.


왜 그때 싫다고 얘기하지 않았냐고, 너도 가만히 있었지 않았냐고, 좋아하더니 왜 딴소리냐고 윽박지르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괜찮냐고 두려울 수 있다고 난 널 떠나지 않을 거라고. 내 마음은 이것으로 변하지 않는다고 미리 말해주고 기다리는 것이 사랑일까?(물론 원하는 스킨십을 하지 못해서 떠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저런 대사는 절대 하지 않는 걸로) 사랑은 모양이 너무나 다양해서 뭐가 진짜라고 정답을 얘기할 수는 없지만 존중이 빠져있는 사랑은 쉽게 찾을 수 있어. 이 존중은 이별에서도 꼭 필요하고...


이 얘기를 들은 아이들은 진지해진다. 말 한마디라도 놓칠까 봐 숨죽이고 듣는 아이들의 눈빛에서 마음에 한 땀 한 땀 새겨지고 있는 나의 이야기들이 느껴진다.


45분의 시간 동안 진짜 사랑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니 불가능하겠지만... 내가 아이들의 마음에 남겨 놓고 오는 작은 질문 하나 가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폭력 앞에서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는 작은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뽀뽀해도 돼?



스킨십을 하기 전에 허락을 받는 것에 대하여 아이들은 찌질하다고 말했다.(찌질이 표준어는 아니지만 아이들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


드라마나 영화나 어디서도 묻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스킨십인데 분위기 깨면서 물어보는 남자는 정말 찌질 해 보인다는 말을 하는 여학생들이 종종 있다. 여자가 먼저 스킨십을 원할 수도 있고 물어볼 수도 있는데 아이들은 스킨십에 대한 동의를 얘기하면 대부분 남자가 여자에게 물어보는 것을 상상한다.

손잡기와 팔짱, 어깨 감싸기, 뽀뽀까지는 허락이 없어도 된다는 학생, 손까지는 맘껏 잡아도 된다는 학생, 사랑한다면 모든 걸 다 허락하겠다는 학생, 정말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중학교를 가던지 여학생들 사이에서 꼭 나오는 얘기는 물어보는 것은 싫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몇 남학생들은 자기는 모든 스킨십이 다 좋으니 여자 친구가 먼저 스킨십을 하면 자긴 다 받아줄 것이라는 얘기를 신이 나서 하기도 한다. 남학생들도 모든 스킨십을 원하는 것은 아닐 텐데 먼저 이런 얘기가 나오면 조용히 눈치를 보며 다른 의견을 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 의견을 내가 들려주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스킨십 싫어하는 남자는 없어요'라고 단언하는 아이들을 만날 때면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느라 수업시간이 부족해진다.


왜 질문하는 남자는 찌질할까?라는 질문을 하면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 자신감 없어 보인다는 얘기를 하는데, 이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미디어의 영향이 클 것이다. 영화에도 스킨십을 물어보는 장면이 있으면 좋을 텐데 수업자료로 쓸 영상이 많지 않아서 아쉽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역할극을 한다. 물론 앞뒤 맥락이 있겠지만 시간 관계상 바로 질문, 성별은 바꿔서 해도 되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상황은 아래의 상황이 많았다. 남자는 선생님이 여자는 학생이 연기하면 아이들 몰입도가 급상승, 성별을 바꿔서 할 때는 선생님이나 부모가 거절에 답하는 역할을 맡아서 연기)


[상황 1]

남자: 뽀뽀해도 돼?
여자: 아~ 짜증 나 그런 거 물어보는 사람 딱 싫어! 찌질하게, 야! 좀 알아서 하면 안 돼?
남자: 아... 미안... 내가 잘못했어... 역시 난 안되나 봐...(축 늘어져서 괴로워한다.)


아이들: 거 봐요! 역시 찌질해, 내가 저래서 싫어, 거봐 내가 물어보는 건 아니라고 했지?, 남자라면 벽치기 해줘야지! 야 헤어져라~ / 자기들 말이 맞지 않냐며 난리가 난다. 성별이 바뀐 상황이어도 똑같다며 매력적이지 않다는 의견.


[상황 2]

남자: 뽀뽀해도 돼?
여자: 아~ 짜증 나 그런 거 물어보는 사람 딱 싫어! 찌질하게, 야! 좀 알아서 하면 안 돼?
남자: 응... 안돼. 난 네가 너무 소중해서 너랑 오래 사귀고 싶어. 내가 지금 허락 없이 스킨십을 하면 나중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내 맘대로 할 수 있어. 그럼 네가 날 부담스러워하고 불편 해할 테고. 그럼 마음이 서서히 멀어질 거야. 난 우리 관계가 정말 소중해서 그렇게 멀어지고 싶지 않아. 앞으로도 물어볼 거야. 그리고 네가 거절해도 내 사랑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꼭 기억해줘. 난 네가 소중해.


아이들: 우아아~~~~~!!! 멋있어, 와 현실에 저런 사람이 있긴 해요? 중딩 중엔 없을 거야, 아니 고딩중에도 없을 걸. 멋지다. 나 저런 사람 만나고 싶어, 나도 저렇게 말해주고 싶다~


찌질하니? 자신감이 없어? 아니야. 내가 하고 있는 생각에 확신이 없는 사람의 행동이 자신감 없어 보이게 하는 것이지 질문하는 것 자체가 자신감 없는 행동은 아니야.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약자의 행동이라고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행동이 진짜 마음과 생각이 강한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양성평등 정책을 만드는 전문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동의를 질문을 통해 확인하지 말라'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해도 되냐고 묻는 것은 질이 낮은 동의 확인법이라고 질문을 통한 동의를 성교육에서 훈련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안된다는 얘기를 했다. 비언어 인지 훈련을 충분히 시켜서 표정, 동작을 통해 동의와 비동의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대안도 없이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이 가장 쉽다.)


일 년에 40~50분 성교육으로 비언어의 달인이 될 수 있다면 나도 그 방법을 전수받고 싶다. 주입식 수업과 치열한 경쟁 안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친구들과 관계 맺기에 시간을 쓰며 비언어를 읽고 표현하는 훈련을 하라고 그게 최고의 방법이라고 알려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교육일까?


성폭력 예방교육에서 '안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를 교육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현실과는 괴리가 있긴 하지만 정책을 만드는 분이 높은 지향점을 갖고 있으니 다행인가? 언젠가는 그날이 올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날이 우리 애들이 살 날은 아닐 것 같아서 불안한 것이다. 교육은 더 좋게 변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애들이 학교에 있을 나이는 아니다.


그래서 집에서 양육자, 보호자가 하는 성교육이 중요하다. 그래서 세상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집에서 시작하자고 얘기하는 것이다.

비언어를 읽는 능력이 중요하다, 동의를 하는 단어에서 거절의 비언어를 읽을 수 있어야 하니까. 그래야 거절해도 된다는 얘기를 한 번 더 해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것은 학교나 학원에서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집에서 아주 오랜 시간, 천천히, 곰국 끓이듯 끌어내야 하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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