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하지마!

거절을 막는 말, 나쁜 아이

by 한희

나는 거절을 잘 못한다.


항상 착한 아이가 되어야한다는 지시 안에서 착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저주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컸다. '착한 아이는 거절하면 안된다.'는 메세지를 누군가 내게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느낌으로 알았다. 물론 항상 밝게 웃으며 모범적인 학생으로 살아가는 삶은 나에게 많은 이익을 안겨주었다. 특히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의 명령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은 학교나 사회에서 생존하는데 매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어린 시절 뼈속 깊이 새겨진 이 메시지는 어른이 된 지금도 날 괴롭게 한다. 친구나 지인들의 부탁을 거절할 때마다 죄책감이 밀려들고 이래도 되는지를 고민한다. 어른들의 말씀에 '내 생각은 좀 다르다'고 얘기할 때 마다 가슴이 오그라들고 무섭다.


물론 평생을 공동체 안에서 생활해야하는 인간으로써 공동체의 약속과 규칙을 지키고 공익을 위해 내가 원하는 것들을 조금 뒤로 미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어른을 공경하고 그들의 경험과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필요한 가치, 중요한 미덕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모든 상황과 관계에서 나의 입장과 바람에 상관없이 타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타인, 아이, 나의 바람이 모두 달라서 갈등을 겪는 경우는 흔하게 일어난다.

최근에 모래 놀이터에서 아이와 놀 때 일이다. 새로 산 모래놀이 장난감을 가지고 갔는데 놀이를 하고 있던 다른 아이들이 자기도 갖고 놀면 안되냐고 물으며 다가왔다.


아이는 장난감을 끌어안으며 '안돼! 이건 내꺼야!'라고 외치는 상황. 아이는 뺏길까봐 벌써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다른 아이들은 이미 울고 있다,


이때 엄마는 선택을 해야한다.

1. 같이 갖고 노는 거라며 장난감 중 하나를 강제로 뺏어서 준다

2. 이렇게 놀거면 다신 안사준다고 한다

3. 안빌려주면 집에 간다고 한다

4. 왜 나누지 않냐며 욕심쟁이라고 한다

5. 지금 주면 더 좋은것을 사준다고 한다


물론 다른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1~5번의 행동을 모두 할 수도 있고 애초에 장난감을 가지고 나가지 않는다,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 미리 나갈때 약속을 받는다 등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갈등의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서로 입장이 다른 3명. 그런 행동을 선택한 이유는 다 있다

아이의 입장

난! 새로 산 장난감이 소중하다. 게다가 키즈카페에 있는 장난감도 아니다. 내 것이 분명한 신상을 엄마는 자꾸 나누라고 하고 나누지 않으면 나쁜 아이라고 한다. 오래 갖고 놀아서 재미가 없어진 장난감이라면 아이들과 놀기 위해 나눴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엄마의 입장

나의 아이가 서로 나누고 배려하는 아이가 되길 바란다. 그것은 사회 생활을 할 때 필요한 태도이다. 자기 것만 챙기는 이기적인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울고 있는 아이의 엄마가 어떻게 볼지 신경쓰인다. 이러다 앞으로 친구들한테 미움받는 아이가 될까봐 걱정된다.


다른 아이의 입장

나한테는 모래 놀이 장난감이 없다. 나도 갖고 놀고 싶다. 같이 놀면 재미있을 텐데.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갖고 있을 수도 있지만 위의 생각들을 하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이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고 울음 바다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세 사람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되면 해결이 될까? 이해가 되는 순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끝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들이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별하는 시기. 이때는 물건으로써 경계를 학습하는 시기이다. 공용 장난감을 혼자 놀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갖고 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물건의 주인인 아이의 의견부터 듣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 산 장난감이라 더 소중한가 보구나?'

'지금은 나누고 싶지 않니?'

'혼자 놀아도 괜찮아. 하지만 친구들은 너랑 같이 놀고 싶대'

'그럼 같이 놀고 싶을 때 말해줄래?'


다른 아이에게는 '이건 선물 받은지 얼마 안된 장난감이라 소중해서 지금은 나누고 싶지 않대. 미안해'라고 하거나 아이가 직접 말할 수 있게 도와준다.


내게 소중한 것을 알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것. 미덕도 좋고 관계도 좋고 다 좋지만 지금 마음까지 접어가면서 나누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눔이란 기꺼운 마음에서 나와야 행복한 것이니까. 그리고 선택할 수 있을 때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다른 사람의 바람도 보이며 연결되고 싶은 욕구도 생긴다고 믿는다.


이런 경험을 한 아이는 '장난감을 빌려주지 않은 나는 나쁜 아이구나'가 아니라 '내가 소중한 것은 말할 수 있구나. 나의 거절을 친구가 슬퍼할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상대가 슬퍼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강제로 할 필요는 없구나. '를 알게 된다.


이 경험은 장난감을 나누는 상황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원하지 않는 스킨십 상황에서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엄마와 목욕을 하고 나와 옷을 입는 4살 아이를 보고 아빠가 '아이 예뻐~ 목욕했어?'하며 껴안아 주려고 할때, 만약 아이가 원한다면 다가와서 안길 것이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아빠, 나 안는거 싫어, 지금은 하지마~'

이때, '어? 미안, 샤워하고 나온 00이가 예뻐서 그랬는데. 싫음 안할께~ 말해줘서 고마워. 아빠가 00이 사랑하는 거 알지?'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야! 그 소중한 몸을 누가 만들어줬는데 그래? 아빠가 안아준다고 하면 그냥 가만있는거지 까탈스럽기는. 치사하다 안해! 너 다시는 안 예뻐해 줄꺼야!'(엄마와 아빠가 바뀐 상황 일수도 있음)라고 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감정은 존중하지 않는구나.'

'좋아하면 상대방의 감정은 무시해도 되는구나.',

'말해도 소용이 없구나' 를 배우게 된다.


나의 물건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내 감정도 소중하다는 것, 감정의 주인은 나고 감정 자체로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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