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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연 Jul 08. 2024

단편소설 <수건>(1954) ③

영화사가 노만 16

서울고 전경. 1953년 경. ⓒ 노만, 한상언영화연구소.

(②에서 계속)


  오늘은 별로 차가 나가지 않았다. 서면에 가서 물로 차를 잘 닦아다 세워 두었다. '그'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놀면 안되었다.모빌유 묻은 걸레를 들고 닦는 척 했다.

  이제 '그'에게 이야기하던 사내는 오늘은 유달리 우울해 보이는 것 같았다. 부은듯 한 얼굴은 창백했다. 그 사내는 슬금슬금 이차 저차로 돌았다.

  '그'는 심심해 또 차를 뒤지기로 했다. 담요들 뿐이었다. 어떤 차엔 빈 레이숀 '통'들이 굴러다녔다. 누가 벌서 먹어 치운 것이었다. 다른 차에 갔다. 담요들이 쌓여있었다. 한 칸을 열자 거기엔 갖 사다 놓은 듯한 커다란 치솔, 미안수, 비누, 면도들이 들어있었다. 미안수나 좀 바를가 하다가 손이 더러운 것을 깨닫고 곧 닫아 두고 차에서 나왔다. 그때, 옆 차에서 어제 이야기하던 그 사내가 나왔다. 그 사내는 '그'에게 빙긋 열적은 웃음을 던졌다. '그'는 모르는 척 했다.

  '그'는 종내 노리던 레이숀을 먹지 못했다. '그'는 모빌유 냄새 휘발유 냄새로 오늘 따라 머리가 핑 도는 것이었다. 운전대에 가서 앉아 눈을 감았다.

  얼마 후에 흑인 운전수가 나타났다. 모두들 일 하는 척 했다. 그들의 특유한 입술은 오늘따라 더 튀어 나온 것 처럼 보였다. 화난 것 같기도 했다. 자동차에 오르더니, 발동을 걸고, 마구 악스레타를 밟아 윙윙 소리가 요란스럽게 났다. 떠나려더니,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운전대에서 내려 차 안으로 들어갔다. 좀 후에 다른 차에 갔다. 거기서도 우물거리다 또 다른 차로 갔다.

  '그'는 차를 닦으며 그 행동을 유심히 봤다. 차마다 뒤지더니 도로 사무실로 갔다. '그'는 레이숀 먹은 것이 또 들킨 게라고직각했다. 좀 후에 통역을 데리고 나왔다. 흑인 운전수를 소리소리 질렀다.

  "수건, 수건, '갓뗌' 수건!"

  "수건이 없어졌다는데, 가졌거건 몰래 갖다 놓시오. 이 자가 오늘 아침 사다 논거라는데 만일 안 나오면 모두 해고(解雇)시키겠답니다. 이 자들의 성질이 한 번 이렇게 화를 내면 좀처럼 풀리지 않아, 해고 시킬겝니다. 갖다 놓면 아무일 없을테니 도루 제자리에 갖다 놔 두십시오."

  통역은 나즈막한 소리로, 모여든 종업원들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종업원의 시선은 모두 '그'를 향했다. 이 놈이 틀림없다는 눈초리였다. '그'는 화가 나서 소리질렀다.

  "차를 뒤져봅시다."

  "그럼 한번 잘 찾아보십시오."

  통역은 승락하고 흑인 병사에게 다시 무어라고 했다. 종업원들은 뒤져 보나마나 있을리 없다고, 몇몇이 뒤질 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는 걸 참으며 첫번 차부터 쭉 뒤져갔다. 아까 보았던 차가 어느 찬지 잘 구별할 수가 없어 그 근처 차는 더 자세히 보았다. 있을리 만무하였다. 모두 헛수고였다. 다시 통역의 말을 들었다. 하나 내 놓을 리 없었다. 꼭 '그'가 의심 받았다.

  "이쪽 차부터 다시 한 번 봅시다."

제안한 사람은 어제 '그'에게 이야기하던 그 사내였다.

  "당신도 찾아 봤으면 알지, 뭐 바늘인가?"

  종업원 중 한 사람이 반대했다. 모두들 '그'를 의심하는 눈치들이었다. '그'는 더욱 화가 바싹 났다. 그래서 다시 한번 혼자 찾아보기 시작했다. 충혈된 누이었다. 손이 칸을 열적마다 분노로 떨었다. 어느 차 왼쪽 칸에, 흰 것이 조금 내민 것을 보자 마자 빼냈다. 수건이다. 마구 틀어 박혀있었다.

  "여기 있읍니다. 여기 있어요. 어떤 놈이…"

  '그'는 숨가쁘게 소리 질렀다. '그'의 얼굴엔, 자기가 범인이 아니란 것이 판명됐다는 의기양양한 득의의 웃음이 가득 차 있었다. 하나 '그'가 수건을 들고 흑인 병사 앞에 섰을 때, 곧 자신이 진범인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고, 당황했다. 어절줄 몰랐다. 또 다시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슬프기도 했다. 서름이 복받쳐 옴을 느꼈다.

  흑인 운전수와 종업원들은 '그'를 노려봤다. '그'는 수건 훔쳤던 놈이 누군지 알기만 하면 당장 죽이고 싶도록 악이 바쳤다. '그'는 무의식 중에, 어제 자기에게 이야기해주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 저 사람이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언제나 일할 때는 일만 하고, 쉴 때는 나무 밑에 앉아 담배나 피우던 그 사내가 그 날은 차에 들어갔었다. 자신이 한 번 뒤져보고도 다시 한 번 보자던 그 사내다. 틀림없이 그 사내가, 찾는 척 하고 그 차에 넣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는 그 사내를 쏘아 봤다. 그 사내는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여보, 당신이요, 훔친건……"

  '그'는 버럭, 분에 못이겨 '훔'자에 힘주어 소리쳤다. 그러자 그 사내는 고개를 들고 '그'를 노려봤다.

  "뭐, 내가 훔쳤다구? 난, 난 이렇게 살아가는 거로 만족해 하는 사람이야…"

  그는 두 으로 제 목을 꽉 쥐고 '그'의 앞으로 닥아서며,

  "난 이것만 붙어 있으문 그만이야! 내 아무리 수용소에서 가마니를 두루구 살고 있지만 그런 짓은 안해! 못해!"

소리소리 질렀다. 침이 사내 입 사이로 튀어 나왔다. 거품처럼 흰 침은, 말 할때 마다 '그'의 얼굴에 튄다. 그 사람은 주름살이 잡힌 멱살을 두 손가락으로 꽉 잡아 당기며 더욱 '그'의 앞으로 닥아왔다.

  "이거면 내겐 다야! 이거면!"

소리소리 질렀다.

  '그'는,

  "여보, 당신 안그랬오! 그럼 왜 차를 뒤지는거요!"

하며, 대들 뿐이었다.

  흑인과 통역은, 내일 일을 처리해야겠다고 하며 갔다. 그들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좀 후에 종업원 한 사람이 '그'에게 자기가 그 사내가 수건을 바지 속에 넣는 것을 봤다고 했다. 다른 종업원 한 사람도 바지 앞 단추 사이로 나온 수건을, 자기도 봤다고 했다.

  그 사내는 이튿날 출근하지 않았다.


(④에서 계속)

서울고 재학 시절 노만. 사진관에서 촬영. ⓒ 노만, 한상언영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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