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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연 Jul 09. 2024

단편소설 <수건>(1954) ④

영화사가 노만 17

교지 경희 5집 목차(좌)와 노만의 단편소설 <수건>(우). ⓒ 서울고총동창회 홈페이지.

(③에서 계속)


  며칠이 지났다.

  종업원 한 사람이 그 사내의 가족이 피난민 수용소에서 굶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사내의 안해는 순산을 했으나 먹지 못하기 때문에 젖이 없어 곤난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싸줄 포대기 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또 며칠이 지났다.

  그 사내의 젖떼기 어린애가 병들어 죽었다고 했다. 먹지 못하는데 몸이 약하는 병들었다는 게다. 실상 굶어 죽은 게였다.

  '그'는 이런 소식을 듣자, 문득 서울에 있는 동생들이 굶어 죽지나 않았는지 병이나 나서 죽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났다. 배고파 울고 있는 동생을 상상해 봤다. '그'는 괴로웠다. 그러자 또 그 사람이, (살기가 귀찮어서......) 또 목을 쥐고 (이것만 붙어 있으문 다야!) 하고 거품을 물고 악을 쓰는 환상(幻想)이 '그'를 괴롭혔다.

  그 사내가 수건을 훔친 것도 어린 애들을 위해서란 것을 깨달았을 때, 그 어린 애는 자기 자신이 죽인 것 같은 가책을 받았다. 그러자 서울에 있는 모든 가족에게 죄스러웠다. '그'는 가족을 때때로 잊고 있었다. 걱정도 그리 해본 적이 없다. 모든 양심의 소리가 '그'의 가슴을 치는 듯, 가슴이 에어지는 것 같았다.

  그 사내의 어린 애가, 마치 자기 동생인 것처럼 '그'는 그 어린애의 죽음을 자기 동생이 죽은 것 같은 착각을 하며, 슬픔이 복받쳐 올음을 억제하지 못했다.

  (굶어 죽다니!)

  '그'는 헛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기억엔 기아에 대한 공포가 너무나도 똑똑히 박혀 있었다. 혼자 피난 올 땐 이틀식 굶어서 힘 없는 다리를 끌며, 설은 도마도를 먹고 있었던 자신을 발견했다. 괴로웠다. 눈시울이 뜨거워 옴을 느꼈다. 여지것 자신의 모든 행동이 후회됐다.

  '그'는 그 사내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우선 수건을 사야 할 것 같이 느껴졌다. 그 사내가 무엇에 쓰려고 하였건, 그건 알고도 싶지 않았고, 그저 그 수건을 사감으로서 '그'의 마음의 고통이 나아질 듯 싶어졌다. 그 사내가 필요로 했던 것 만이 사실이기도 했다. 미제 최고품의 수건과 과자 과일도 사들었다. '그'는 기뻣다.

  이마에선 땀이 흘러내렸다. 가을 날씨론 어울리지 않는 더위였다. '그'는 때때로 양복 소매로 땀을 씻으며 아래 입술을 앞으로 내고는 얼굴에 입김을 연방 불어댔다.

  "어델 그리 바삐 가세요?"

  '그'는 낯익은 여자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무늬 많은 원피스를 입고 파라솔을 든 여자가 미소 띄우고 서 있었다. 백희다.

  "네...... 저......"

  어떤 압도감에 말을 흐렸다. 백희는 핼죽 웃으며

  "바쁘세요? 바쁘시지 않거던 집에 가요. 아버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구 퍽 반가워 하시며 만나거던 꼭 다리고 오라는 거에요. 왜 한 번도 안 오셨어요?"

  "네 그저 좀 바뻐서요."

  "그새 혼자 고생 많이 하셨죠?"

  "고생이야 뭘......"

  '그'는 대답하며 백희의 화려한 차림에, 자신이 어떤 압박감을 다시금 느꼈다. 불쾌감이 스쳐갔다.

  "오늘은 꼭 같이 가야해요."

백희는 마침 잘 만났다고, 날치면 안된다는 듯이 다짐을 하는 것이었다.

  "네 가 뵙겠습니다."

   백희의 집에서 자기를 생각해 주는 데는 여간 감사한 게 아니었다. 사실 그동안 '그'의 그러한 생활이 고적감을 더해 주었던 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따뜻한 사랑을 느꼈다. '그'는 흐뭇한 가슴을 안고 백희와 나란히 걸어갔다.

   서울에 있을 가족을 생각했다. 부쩍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하며, 더위도 잊고 그리움에 사로잡혔다.

  "어데 가시던 길에요?"

  '그'는 깜짝 놀라 생각을 멈추었다.

  "저 누구하고 좀 만나보러 가던 길입니다"

대답을 하고 보니 자신이 어데 가던 길이였다는 걸 깨달으며 손에 든 것을 번가라 봤다.

  "그럼 거기 가 보셔야 하지 않어요?"

백희는 자기가 너무 서들러서, 미안하다는 태도였다.

  "다녀서 가도 괜찮습니다."

둘은 잠잠히 걸었다.

  '그'는 진열창에 달린 거울에서 힐끗 자신의 옹졸한 모양과 얼굴을 보고 부끄러웠다. 얼굴은 먼지와 땀으로 얼룩이 지어있었다.

  '그'는 또 무의식 중에 양복 소매로 흐르는 땀을 씻었다.

  "그 수건은 웬 거예요"

  백희는 '그'가 수건을 두고도 양복 소매로 땀을 씻는 것을 보고 이상했던지 물었다. '그'는 부끄러웠다. 더욱 백희의 어떤 압도감이 '그'를 누르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좀 더 쓰려고..."

  '그'는 손에 든 수건과 과일봉지를 번갈아 보며 픽 고소(苦笑)했다.

  '그'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그'는 얼질에 수건을 갖다 대었다. 수건엔 모양없이 지도가 그려졌다.

  "날이 꽤 덥군"

들으란 듯이 '그'는 중얼거리며 얼굴의 땀을 또 닦았다. (高三) ■ 


(교지 《경희》 5집, 서울고등학교, 1954, 56~69쪽)

서울고 재학시절 교사들과 함께. 뒷줄 중앙이 교사 이종구(영어), 맨 오른쪽이 노만. 앞줄 왼쪽이 교사 조병화, 김광식(국어). 1953년. ⓒ 노만, 한상언영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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