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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May 04. 2020

<조조 래빗/Jojo Rabbit>

신발끈을 혼자 메는 순간은 언젠가 온다.


최근 들어 전쟁 영화는 화려한 액션과 스펙터클함보단, 체험적 리얼리티를 살리는 경향이 있다. 전쟁의 끔찍한 참상과 그 현장을 관객이 고스란히 경험하게 하는 것이 주된 목표인데, 우리에게도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와 샘 멘데스의 <1917>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영화들의 작품성과는 별개로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관람하기에 부담스럽거나 꺼려질 수도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유쾌하고 따뜻하게 풀어낸 영화가 있다. <토르: 라그나로크>의 감독으로 유명한 타이가 와이티티의 반전이 돋보인 작품, <조조 래빗>이다.




영화는 2차 세계 대전 말기, 나치를 동경하지만 무시와 놀림을 당하는 10살 아이 요하네스가 집안에 숨어있던 유대인 엘사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그 당시 나치즘에 빠져있는 10살 소년의 시각으로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나치가 최강이고, 유대인은 악마라고 곧이곧대로 믿는 순수한 소년이 신발 끈을 스스로, 직접 멜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자유와 사랑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성장하는 과정을 잘 그려낸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끌어들여 나치즘과 전쟁을 동경하게 선동하는 장면을 통해서 경각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최근의 트렌드와는 다르게 암울한 전시 상황을 타이가 와이티티 특유의 연출로 유쾌하고 재미있게 풀어나가 부담스럽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전개 방식은 따뜻함을 느끼는 동시에 후반부에서 보여주는 전쟁의 참혹함을 배로 늘리는 역할을 한다. 또한 영화는 경쾌한 웃음과 함께 막중한 책임을 던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 이 작품만의 묘한 매력이다.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느끼는 기묘한 체험을 선사하는 몇 안 되는 영화들 중 하나다. 영화에 희노애락이 모두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등장하는 캐릭터도 매우 매력적이고 배울 것들이 많다. 요하네스의 엄마 로지가 특히 눈에 띄는데, 이번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조연상 후보에 모두 노미네이트된 스칼렛 요한슨이 배역을 맡아 더욱 화제가 되었다. 힘든 전시 상황에서 나치즘에 빠진 아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훌륭한 어머니 역할을 해내는 로지는 가슴을 울리는 대사를 몇 가지 하는데, 춤은 자유로운 사람들이 추는 것이라는 말은 요하네스가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또 상상 속 친구인 히틀러는 특별한 역할을 한다.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치즘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는데, 요하네스가 성장했음을 확인해 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감독 타이가 와이티티의 재치 있는 연기도 또 다른 재미다. 이외에도 강인한 유대인 엘사, 귀여운 친구 요키, 멋지게 퇴장하는 대위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이 영화의 강점은 한없이 유쾌하고 경쾌하지만 전쟁의 참혹함과 소년의 성장을 모두 잘 담아냈다는 점이다. 어른들이 꾸민 거짓 이상과 신념은 언젠가 무너진 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애초에 주제 자체가 너무 무거워 다루기 힘든 나치즘과 홀로코스트를 오히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재미있게 풀어냈다는 점은 독특하면서 기발하다. 다만 참신함과 신선함은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은데,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될만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렇게 따뜻하게 풀어내면서 남녀노소 모든 관객들이 부담 없이 좋아할 만한 영화로 만든 것이 더 좋은 방향이지 않았을까.


타이가 와이티티는 인간의 가장 쓸모없고 불필요한 행동이라고 불리는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유쾌하고 사랑스럽게 풀어냄으로써 더욱 강력하게 전달한다. 뛰어난 유쾌한 연출과 따뜻한 색감,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놓치지 않은 메시지까지 삼박자가 모두 충족된 영화, <조조 래빗>이다.



총점 - 9
신발끈을 혼자 메는 순간은 언젠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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