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랑과 이별에게 축복이 있기를.
리메이크가 많이 되는 작품일수록 원작의 매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꽤나 궁금한 작품이었다. 호평이 자자할 뿐 아니라 동명의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고, 얼마 전에 개봉한 국내 영화 <조제>도 이 작품을 리메이크했기 때문이다. <조제>에 대한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원작의 스포일러를 받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덕분인지 울림이 상당히 강하게 남는 작품으로 남았다. 일본의 로맨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리뷰다.
영화는 심야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츠네오가 소문이 무성한 유모차를 타고 다니는 조제라는 이름의 한 여자를 알게 되고, 서로 친구로 지내며 조금씩 가까워지며 사랑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일본 실사 영화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이후 꽤나 오랜만에 보는 거라서 걱정을 조금 했는데, 괜한 걱정일 정도로 굉장히 좋게 본 영화다. 개인적으로 매우 싫어하는 일본 특유의 오글거리는 연기나 연출이 보이지 않고, 잔잔하고 담담하게 흘러가는 사랑 영화라서 너무나도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너무 아름답지도 않게, 그렇다고 마음을 후벼파지도 않는, 잔잔하게 설레고 담담하게 아픈 영화. 그리고 기존 로맨스와는 조금은 다른, 독특하면서 색다른 매력이 보인다는 장점도 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꼬집기도 하는 영리한 영화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필자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정말 1도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찔리는 감정은 들지는 않았지만 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느낄 수는 있었다.
바닷속을 표류하고 있던 나를 꺼내주고, 서로를 채워주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랑을 나름 현실적이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별과 그 과정, 그리고 그 이유도 상당히 솔직하다. 츠네오는 결국 지쳐서 도망갔다. 그는 그걸 숨기지 않았다. 조제는 이러한 이별을 미리 알고 있었을까. 미리 알고 있었다면 혼자서 그 이별을 준비했을까. 그래서 닥쳐온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 그 사실이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든다. 이별의 이유가 상당히 솔직하고 숨기지 않았다는 점은 이 사랑 이야기가 조제가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기 때문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조제를 향한 츠네오의 마음은 단순히 장애인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진심을 다한 사랑이었다. 츠네오와 조제의 사랑은 다른 이들보다 다르지도 않았고, 영원해야만 하는 사랑이 아니었다. 서로에 대해 진심으로 다가간 사랑이었다.
일본 영화 특유의 오글거림이 느껴지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배우들의 열연 덕분인 것 같다. 조제 역을 맡은 이케와키 치즈루는 상당히 이쁜 얼굴에 독특한 성격으로 매력이 엄청난 조제라는 캐릭터를 아주 잘 살려낸 듯싶었다. 그냥 뭐랄까, 너무 귀여웠다. 츠네오 역을 맡은 츠마부키 사토시도 꽤나 준수한 연기력으로 츠네오라는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 담담하게 이별하고 가드레일 앞에서 울 때의 감정은 정말 최고였다. 오버스럽지도 않은, 진짜 실제로 볼 법한 인물들과 연기로 현실성과 몰입도가 대폭 상승한다. 아라이 히로후미, 우에노 주리, 신야 에이코 등 조연진들도 나름 뛰어난 연기력을 펼치는데, 특히 우에노 주리의 연기력이 돋보이기도 한다. 담담함을 살린 연기력이 영화의 매력을 한 층 더한다.
제목이 굉장히 독특한데,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호랑이와 물고기. 참으로 특별하다. 일본의 풍경도 볼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일본 여행이 너무 기억에 남아서 그런지 몰라도 잔잔한 풍경과 음식의 모습이 너무나도 좋았다. 영화는 15세 관람가인데, 이게 어떻게 15세 관람가인지 의문이 들 정도의 수위였다. 넷플릭스만 그런 줄 알았는데 개봉도 15세였다. 왜 15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정말 좋게 봤다. 여운이 길게 남았다. 마음속에서 여진이 길게 느껴진, 정말 좋아하게 된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다.
총점 - 9
나를 꺼내주고 채워줬던 사랑만큼 지쳐 떠나는 우리의 이별이 누추하지 않고 담담하게 흘러가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