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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Mar 21. 2021

<코미디의 왕/The King of Comedy>

웃음으로 포장된 망상이라는 비극을 처연하고 애처롭게.

마틴 스콜세지의 작품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제가 2019년 영화 중 정말 좋게 보았던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가 스콜세지의 영화를 오마주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택시 드라이버>만 해도 <조커>가 이런 분위기를 차용했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코미디의 왕>을 보고 나니, 사실 <조커>가 가장 많이 오마주한 작품이 이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커>를 보면서 받았던 감정을 비슷하게 받았거든요.

아무튼, 영화는 자신이 재능 있는 코미디언이라고 믿는 루퍼트 펍킨이 유명 코미디언인 제리 랭포드가 전화 한 번 하라고 했다고 자신이 유명 코미디언이 되었다고 망상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런 망상에 사로잡힌 펍킨은 항상 웃고 있지만, 정작 관객은 웃을 수 없는데요. 이런 망상은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희극일지라도, 보는 관객들에게는 애처로운 비극으로 보이거든요. 망상에 사로잡혀 온갖 농담을 던지지만, 웃기기는커녕 굉장히 안쓰럽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정말 펍킨은 계속 웃고 있지만 도저히 웃어줄 수가 없더군요.

스콜세지가 정말 거장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이러한 과대망상을 여러 시각에서 보여주고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망상에 사로잡혀 한없이 즐거운 펍킨과, 이를 바라보는 관객, 그리고 이러한 펍킨은 정신병자처럼 대하는 사회의 시선으로 제대로 분해하고 있습니다. 연출도 굉장한데, 현실과 망상의 간극을 아슬아슬하게 걷는 듯한 연출은 물론, 그를 비웃는 듯한 연출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그렇다고 펍킨을 옹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대박만을 바라며 노력도 않고 망상에만 빠져있는 이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이들의 내면에는 펍킨이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렇지만 펍킨은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바보로 사는 것보다는 하룻밤이라도 왕이 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이 부분은 확실히 생각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한 대사로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 같네요.

진짜 로버트 드 니로와 마틴 스콜세지와의 합작은 다 출중한 것 같습니다. 마틴 스콜세지의 연출도 있겠지만 드 니로의 연기도 한몫하겠지요. 정말 그가 보여주는 연기는 한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듯한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명한 메소드 연기가 빛을 발하는 거겠죠. 정말 놀라웠던 부분이 있었는데, 펍킨이 결국 제리의 쇼에 나와 한 파트를 진행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거기에 보여주는 긴 시간 동안의 연기는 정말 미쳤더군요. 실제 상황을 보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했어요. 제리 랭포드 역을 분한 제리 루이스는 물론 펍킨과 함께 행동한 마샤를 연기한 샌드라 벤하드, 펍킨이 사랑한 여자 리타를 연기한 다이안느 애보트, 제리의 비서 캐시 롱을 연기한 쉘리 핵 모두 괜찮은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실제 유명 배우들의 이름이 언급된다는 점도 나름의 재미였네요.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 늘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수작이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그에겐 성공적이었지만 정작 관객들은 환호할 수 없게 만드는 스콜세지의 연출력도 돋보인 작품이었습니다.




★★★★
:웃음으로 포장된 망상이라는 비극을 처연하고 애처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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