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남자, 여자 모두에게 인생을 살면서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길과 어떤 면에서 가지 않아도 되는 길을 가야하는 모험과 같다. 동화 속 모험에서 주인공은 머리 셋을 가진 뿔 달린 괴물을 무찔러야 하거나,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을 만나거나, 바다 요정에 유혹에 빠지는 이상한 어려움에 빠진다. 결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부부가 첫날밤을 보내고 나면 여자는 도로시가 오즈의 첫 날을 경험한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퇴근하면 아무 곳에나 옷을 벗어놓는 남편. 여자 앞에서 조심과 배려는 하나도 없다. 잠잘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해외 축구경기를 보며 텔레비전 앞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마도 남편은 연애시절 그 시간에 아내와 통화를 하며 같은 장면을 보고 있었지 않았을까?
아내가 콩깍지 때문에 놓친 것 중에 하나가 내 청소습관이다. 연애시절 아내는 내 자취방에 오곤 했는데 그 날은 자취방을 청소하는 날이다. 담배에 쩔은 방을 환기시키고, 며칠 동안 싱크대에 담가놓은 그릇을 설거지 하고, 바닥에 먼지 하나 없도록 쓸고 닦고, 정리 정돈을 한다. 사소한 거슬림이 아내의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같이 밥을 먹고, 편안하게 TV를 보고, 자연스런 스킨쉽. 가끔 엉큼한 늑대의 계략을 세운 적도 있다. 내 생일날 자취방에서 아내와 같이 술을 먹었다. 선물 받은 양주로 폭탄주를 제조했다. 양주의 혼합 배율은 당연히 아내 것이 진했다. 몇 잔을 같이 먹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내보다 먼저 잠들었다. 젠장!
나는 청소가 귀찮다. 결혼을 하고나서 아내가 몇 번 내게 시킨 적이 있지만 내가 청소하고 아내가 다시 청소를 한 이후에는 내게 청소시키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서 인지 먼지가 쌓여도 잘 보이지 않는다. 청소를 한다 해도 대충 보이는 곳만 한다. 내 친구들도 다 안다. 한번은 친구가 놀러 와서 일주일동안 씻지도 않은 컵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거의 미친놈 취급하면서 청소를 대신 해줄 때도 있었고, 회사선배가 결국 견디지 못하고 내 책상을 대신 청소해 준적도 있다. 연애하는 동안 아내는 이런 나를 몰랐다. 콩깍지는 참 대단하다.
“청소를 한 거야, 안 한 거야. 구석구석 좀 해!”
“잔소리하려면 시키지 말든가. 깨끗하네. 대충하고 살자.”
“뭐가 깨끗해! 이 먼지 좀 봐!”
“나는 견딜 수 있어.”
“뭐가, 견딜 수 있어. 너는 때도 대충 밀잖아. 너 등은 완전 지우개잖아.”
“손이 안 다으니까 당연하지!”
“한마디도 안 진다니까. 애도 너 닮아서 내가 하는 말마다 대꾸잖아!”
아내의 말에 뜨끔했다.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장난스런 대꾸는 멈추지 않는다. 제 버릇 남 주나! 남이 아닌 아들에게 주어서 살짝 걱정이기는 하다. 하지만 청소하기 싫은 걸 어떡하란 말인가? 아내와 둘만 살면 적당히 게으름 부리고 미적거리면서 잔소리 들으면 되지만 처가어른들과 살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어른들이 힘들게 일하시는데 옆에서 지켜만 보는 것이 도리는 아닌 듯 했다. 하지만 청소는 정말 귀찮다. 먼지들은 어쩜 그리 작은 틈은 잘 찾아서 숨고 나한테는 안 보이는지. 그런 먼지들을 찾아내는 아내와 장모님은 참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가살이를 시작하면서 장모님이 청소하는 것을 보면서 아내의 청소습관을 백퍼센트 이해했다. 장모님은 주말에는 청소를 하지 않으신다. 사위에 대한 배려다. 청소 못하는 사위가 불편해 할까봐. 나도 가족과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주중에 휴가를 쓰지 않는다. 특히 집안 청소하는 날은 피한다. 장인어른은 하루 야근하시고 하루 쉬시는데, 장인어른이 쉬는 날 청소를 하신다. 대충 수요일, 목요일. 격주로 돌아가면서 요일이 바뀐다. 주말에 장인어른이 쉬는 날을 잘 챙겨보면 다음 주에 청소하는 날을 알 수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상황을 만들지 말자! 하지만 가끔씩 예상이 빗나가기도 한다. 확률 상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 때문에 난처해진다. 내가 휴가를 내는 날 장인어른 스케줄이 바뀌었다. 끙!
집안을 가득 채우는 진공청소기 소리에 잠이 깼다.
“오늘 청소하는 날이야?”
“응! 아빠 쉬시는 날이니까 오늘 청소하시나봐.”
‘헉, 오늘이 청소하는 날! 분명 계산상 아니었는데.’
출근 준비를 하는 아내는 어른들을 도와드리라 했다. 그 말이 내 귀에는 ‘쌤통’이라는 말로 들렸다. 출근하는 아내를 보면서, 나도 회사에 가고 싶었다. 이불 속에서 내 잔머리는 빛의 속도로 굴러갔다.
‘갑자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하고 출근할까?’
‘노트북 켜고 일하는 척 할까?’
‘책 읽는 척 할까?’
‘병원에 간다고 할까?’
오만가지 궁리를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주말 골프 약속이 잡혀서 연습하려고 휴가를 냈는데 자연스럽게 집을 빠져나갈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한 쪽에 덩그러니 서 있는 골프백이 자꾸만 재촉했다.
‘야! 어떻게 좀 해봐. 이 바보야!’
한참을 이불에서 궁리를 하다 안방을 나섰다.
“오늘 청소하는 날인가요? 안방은 제가 할까요?”
“웬일로 주중에 휴가를 냈어?”
주중에 휴가를 잘 내지 않아서인지 장모님이 살짝 걱정하시는 눈치다. 역시 사람은 일관성이 중요하다. 빠져나갈 수 있는 작은 틈이 보였다.
“주말에 중요한 골프 약속이 잡혀서요. 고객하고 운동하는데 실수하지 않으려면 연습을 좀 해야 해서요.(중요한 고객은 무슨! 친한 지인들하고 술 먹다가 운동 한번 가자고 날 잡은 거지. 지금 생각해도 나의 연기력은 훌륭했다.)
“지금 가려고?”
“청소 도와드리고 가도 되요.”
“자네 구석구석 잘 못하잖아. 장인어른하고 하면 되니까 운동 갔다가 와.”
이 무슨 횡재인가? 장모님의 핀잔도 고마웠다. 가벼운 마음으로 골프백을 들었다. 문 앞을 나서는데 장인어른은 장모님의 진공청소기가 지나간 자리를 스팀청소기로 닦을 준비를 하고 계셨다. 청소를 하며 진공청소기 소리만큼 끊이지 않는 잔소리를 들으실 장인어른을 생각하니 살짝 죄송했다. 뒤통수가 따가운 건 기분 탓이겠지. 장모님은 내가 없는 것이 편할 수 있다. 사위 앞에서 남편에게 잔소리하는 것이 쉽진 않을 테니까. 나는 웅웅거리는 진공청소기 소리를 뒤로한 채 유유히 집을 빠져 나왔다. 지하 주차장에 장인어른 차가 보였다. 내 차를 남겨두고 장인어른 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두 시간 정도 골프 연습을 하니 점심때가 되었다. 아마 청소도 대충 끝나갈 시간이다. 내겐 마지막 수순이 남았다. 힘들게 일한 어른들에게 작은 보답이 필요하다. 어차피 인생은 주고받는 것이 아닌가? 일단 주유소로 향했다. 장인어른 차에 기름을 가득 채웠다. 가득 올라선 게이지를 보니 마음이 풍족하다. 가득 찬 게이지를 보면 마치 내가 큰 부자가 된 느낌이 들어 좋다. 집안에 들어서니 장모님은 손걸레로 작은 틈에 숨어있는 먼지를 닦아 내느라 여념이 없다. 장인어른은 스팀청소기의 걸레와 긴 전선줄을 정리하고 계신다.
“다녀왔습니다.”
“응, 그래.”
장모님은 가볍게 인사를 받으셨다. 장인어른은 말이 없다. 나라도 그랬으리라.
‘천하 한량 같은 사위!’
“점심 뭐 드실래요.”
“라면이나 먹자고.(이런 뻔뻔한 놈! 실컷 놀고 와서 밥타령)”
“힘들게 뭘 또 만들어요. 중국음식이나 시켜 먹죠.”
“그럴까? 배고프니 얼른 시켜. 곧 끝나니 빨리 먹자고.”
살림하는 주부에게 일수처럼 찾아오는 끼니는 가끔 피하고 싶다. 힘들게 일하고 난 뒤에는 더욱더. 식사를 하면서 장인어른 눈치를 살핀다. 깨알 같은 생색이 장인어른 마음을 녹인다.
“아버님 차에 기름 채워놓았어요. 날씨 더울 땐 힘들게 버스타지 마시고 차 몰고 다니세요. 애 엄마한테 이야기해서 가끔씩 기름 채워 놓으라 할께요.”
“고맙네. 유가는 내리는데 기름 값은 도통 내리지 않아.”
청소날 휴가의 어색한 시간은 짜장면과 가득한 차 기름게이지로 훈훈하게 마감했다. 이를 모르는 아내는 청소에 게으른 남편을 생각하며 하루 종일 고소해 했을지도 모른다. 철없는 남편이 익숙하지 않은 청소기를 들고 있을 모습에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른다.
“좀 도와드렸어?”
“골프 연습하러 갔는데.”
“야! 너 장난해. 힘들게 청소 하시는데 도와드리지는 않고 골프 연습 갔다고?”
“구박받는 콩쥐(나는 아내를 콩쥐라 부른다. 장모님한테 집안일이 서툴다고 매일 구박 받는다.)하고 금지옥엽 사위하고 똑 같은 줄 알아.”
“너 또 뭔 짓을 한 거야? 하여간 박쥐같이 요리조리 잘 피하는 건 알아줘야해.”
“그나저나, 장모님께 로봇청소기 하나 놔 드려야겠어.”
“내가 너한테 졌다.”
그날 저녁 아내는 장모님께 욕실 청소를 깨끗이 하지 않았다고, 제때 밥 안 먹는다고, 어른 잘 대하는 남편 좀 보고 배우라고 구박받는 아내를 보았다. 사위와 같이 사는 장모님은 딸에게 더 엄격하다. 나는 아들하고 장인어른 방에서 철부지 형제처럼 전자오락을 하며 콩쥐 아내를 달랠 방법을 궁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