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두렵다. 첫 출근, 첫 데이트, 첫 고백, 첫 문장. 처음이 주는 압박감은 좋은 핑계거리를 찾게 하고, 매일 같이 맞이하는 내일로 오늘의 시작을 돌려막는다. 세월이 지나면 고리대금처럼 게으름이 쌓이고 ,까마득히 앞서 있는 친구의 뒤통수를 보며 서로가 비슷했던 시절을 소환한다. 잘나가는 친구와 은근한 친분을 과시하며 낭비한 시간을 무마한다. 몇 년을 돌아보면 내 시간 속에서도 이런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사람들은 결심이 시작을 만든다고 믿지만 준비되지 않은 결심은 포기의 지름길이다. 좋은 성공은 장기전의 끝자락에 서 있다. 매일 한 페이지씩 글을 써도 365일이 지나야 한 권의 책을 낼 분량이 확보되고, 그 시간만큼 고쳐 써야만 간신히 출판사에 원고를 보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몇 번의 거절을 참고 혹독한 편집을 거쳐야만 책은 겨우 서점 매대 한 구석에 자리 잡을 수 있다. 나는 아직 거절의 반복 속에 살고 있지만 습관은 좌절 속에서도 차곡차곡 나의 글들을 쌓아가고 있다.
나는 습관의 마법을 믿는다. 습관은 지루한 반복을 자연스런 일상으로 바꾸고, 발견과 창조는 몸에 배인 반복의 결과다. 만유인력이 발견되기까지 사과나무는 수 십 억년 동안 사과를 해마다 땅으로 떨어뜨렸고, 지구는 지동설을 인간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억겁의 시간 동안 태양 주위를 돌았다. 얻고자 한다면 반복해야 한다.
매일 똑같은 자리, 똑같은 시간동안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졌을 때를 나는 시작이라 정의한다. 포기하지 않으려면 시작을 준비해야 한다. 나는 몸을 적응 시키는 것부터 했다. 초보가 매일 한 페이지를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글자도 채워지지 않은 여백은 내 머리도 하얗게 만들었다. 내 손가락은 도무지 쓰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익숙함이 없으니 습관도 멀어져만 갔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손가락에게 쓰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칠 필요가 있다. 나는 책을 베꼈다.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줄을 긋고 쓰기로 마음먹은 시간에 밑줄 친 글들로 여백을 채워나갔다. 손가락이 익숙해질 즈음 생각도 따라왔다. 문장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문장을 바꾸고 다르게 표현하는 것은 할만하다. 요리 레시피가 같아도 조금만 노력하면 다른 맛을 낼 수 있듯 문장도 같은 방법이 통한다.
몸이 적응해도 시작까지는 갈 길이 멀다. 생계에 멱살 잡힌 보통 사람에게 시간은 언제나 변덕스럽다. 퇴근 시간은 날마다 다르고, 숙제처럼 치러야할 행사는 어찌 그리 많은지. 들쑥날쑥한 시간 속에서 습관은 언제나 첫날이다. 매일이 똑같은 일상 같지만 나만을 위한 똑 같은 시간과 공간은 늘 부족하다. 부족하다면 욕심을 줄이자. 나를 위해 30분만을 쓰기로 했다. 하루 30분은 짧지만, 매일 30분의 효과는 컸다. 가족이 이해하고, 동료가 이해하고, 무엇보다 습관이 앞으로 굴러나간다.
30분이 한 시간, 한 시간이 두 시간. 가속도가 붙은 습관은 쌓여가는 글들로 보답했다. 어렴풋이 시작점이 보였다. 좋은 시작을 위해서 여유가 필요했다. 뒷덜미를 잡고 놓지 않는 게으름에 ‘허허! 왜 그래’하며 앞으로 쉼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여유. 여유가 있어야 긴장하지 않는다. 긴장하면 자꾸 움켜지려 하고 조바심이 난다. 긴장과 조바심이 있으면 송곳 같은 여백도 운동장이다. 습관이 알아서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면 여백에 숨어있던 글들은 스스로 모습을 갖추고 제자리를 찾아간다.
나는 먼 곳을 보지 않았다. 시작하면서 정상을 올려다보면 까마득하고, 오를 엄두가 나지 않을까봐 내가 하루 동안 할 수 있는 분량을 못 채워도 자책하지 않았다. 욕심을 내지 않아도, 멈추지 않으면 시간은 항상 내편이라 믿었다. 일 년 지나고 나는 100 page 분량의 글을 가졌다.
셀 수 없이 많은 시작을 실패하고, 시작이 절반인 이유를 깨달았다. 시작했기 때문에 절반이 아니라 절반만큼 하였기 때문에 시작이다. 이제는 시작을 위한 절반이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답할 수 있다.
-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 좋은 습관 가지기, 반복에 지루해하지 않기, 욕심 때문에 자책하지 않기 -
절반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서, 나는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을 다시 읽어본다. 비로소 가로에 가려진 문장이 보인다.
“(절반만큼 했으면) 시작이 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