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에 들어서자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신발들이 여럿 보인다. 어떤 신발들은 주인을 알 수 있는 것들도 있고 새로운 것들도 있다. 설날, 추석, 제사 때가 되면 현관은 새로운 신발들을 맞이한다. 많아진 신발만큼 할 일도 늘어나고, 일손도 늘어난다. 바쁜 일손들은 평소 저녁 식탁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음식을 만든다. 음식이 만드는 고소한 냄새들은 집안 구석구석 뛰어다니며 자신들의 영역을 표시한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내달리는 냄새들은 더 큰 세상을 본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큰 냄새는 새로운 냄새를 머금고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집 저녁시간을 궁금하게 한다.냄새를 내보내려 열어 놓은 창문은 오늘 저녁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음식들을 드실 조상님들이 드나들 문이다. 조상님들은 생전에 익숙하게 드셨던 음식 냄새로 후손의 집을 찾는다.
저녁 8시쯤 되자 장인어른, 장모님과 처가 친척들, 처남들과 처남댁, 나, 아내와 아들이 제사상 앞으로 모인다. 모인 사람들이 절을 두 번하고 삼삼오오 모여 과거 기억들을 꺼낸다. 무슨 일인지 모르고 멀뚱멀뚱 눈만 깜박이는 아들을 보니 내 장난끼가 발동한다.
“아들! 저 앞에 진지 드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보여? 오늘따라 곱게 차려 입으셨네.”
“아빠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여?”
“응. 너 안보여. 엄마, 아빠 말 잘 안 듣고, 나쁜 마음 가지면 안 보이는데 우리 아들, 정말 안보여?”
“거짓말! 정말 보여?”
“아이쿠, 우리 손자 큰일났네!”
“할아버지도 보여요?”
아들은 울먹울먹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작은 할아버지 지갑이 열린다. 만원짜리 한 장 건네며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말 잘 들으면 내년에는 꼭 돌아가신 외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를 볼 수 있을 것이라 말씀하신다. 예의와 절차로 엄숙한 자리에 화목한 웃음과 재롱이 가득한 잔치가 펼쳐진다. 장례에는 슬픔이 모이지만 제사 때에는 반가움과 기억이 모인다.
다음 해 제사 때에도 나는 아들에게 똑 같이 물었다. 아들은 내게 한심하다는 듯 눈을 흘기며 속마음을 전한다. ‘아빠! 장난해?’ 말로는 속지 않는 아들에게 나는 다른 장난을 준비한다.
“아빠! 술 맛있어?”
“응, 맛있어. 맛볼래? 술은 원래 어른들 앞에서 배우는 거니까 살짝 맛만 봐.”
술잔에 살짝 담근 새끼손가락을 아들에게 건넨다. 아들은 엄청 떫은 감은 먹은 듯 얼굴을 찌푸린다. 물을 벌컥벌컥 먹으며 올해도 아빠한테 당했다 씩씩거린다.
“뭐야! 이상하잖아!”
“네가 어른이 되면 맛있게 될 거야.”
“뻥치지마! 아빠는 맨 날 나를 놀려!”
“자네도 어지간하네.”
장모님은 짓궂은 내 장난을 살짝 타박하며, 손자에게 급히 물 컵을 건넨다. 장모님에게 손자는 작은 손길에도 손때가 묻을 것만 같고 쉽게 깨질 것 같은 맑은 유리컵인데, 나는 아들을 손때 가득 묻은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다룬다. 내가 아들을 귀하게 여기면 장모님이 힘들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손자 키우기. 처가 친척과 처남들은 장모님이 걱정스럽다. 나는 아들에게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이며 걱정하지 말라는 마음을 전한다. 제사는 이런 저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걱정을 없애는 자리이다.
여자에게 제사는 귀찮고 힘든 전통이다. 준비해야 할 음식, 지켜야 할 격식, 손님 대접, 뒤처리 까지. 남자가 경건한 마음을 준비하는 동안 여자는 힘든 노동을 한다. 이 힘든 일을 장모님은 거르지 않는다. 시어른들 다 돌아가시고 한번쯤은 거를 만도 한데 쉬어가는 법이 없다. 아내는 힘들다 하면서도 제사준비를 하는 엄마가 못마땅하다. 며느리들 불러서 제사 준비하는 것을 보면, 여자 입장에서 화가 난다. 시어머니 유세하는 것도 아니고, 왜 며느리들 힘들게 하는지 이해할 수도 없다. 제사가 끝나면 괜찮다는데도 제사 음식을 며느리들에게 나눠준다. 힘은 힘대로 들고, 좋은 소리 못 듣는 일을 왜 그리 억척스럽게 하는지 아내에게 장모님은 구식이다. 아내 불만을 들을 때면, 나는 우리 부부의 노후를 상상한다. 엄마, 아빠 사이를 끼어들며 몸을 비비던 아들의 감촉, 엄마와 아빠 눈길을 한시라도 놓칠까봐 쉴 새 없이 떠드는 아이의 목소리, 층간 소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실에서 공놀이를 하는 아들의 움직임. 노년의 고요함은 아들이 만들었던 五感(오감)을 삼킨다. 특별한 날에만 오감은 잠깐 살아난다. 장모님에게 제사는 오감이 살아나는 특별한 날이다. 남편, 딸, 사위, 손자가 있어 집안은 아직도 북적이지만 장모님은 가끔 몇 십년을 함께 살아온 아들들의 체온도 그립다. 그런 제사이기에 거를 수 없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제사가 끝나면 일상이 찾아온다. 아내에게 일상은 아들 걱정이다. 학원은 어디로 보낼지, 중학교, 고등학교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직업은 무엇이 좋은지, 아내 인생이 아들에게 매여 있다. 독립을 하고나면 일 년에 전화 몇 번, 명절과 제사 때에 얼굴 보는 것이 전부인데도 아내는 아들과 평생같이 살 것처럼 걱정한다. 나는 아내에게 아들한테 너무 공들이지 말라고 한다. 일 년에 몇 번 못 볼 아들보다는 나한테 잘하라고 한다.
“좋은 대학 가려면 좀 괜찮은 중학교, 고등학교 가야하지 않을까?”
“애가 알아서 하겠지.”
“부모가 다 신경 써야해! 요즘 애들은 만들어 지는 거야.”
“뭘 만들어! 커서 귀찮게 안하고 우리한테 꼬박꼬박 용돈만 잘 주면 되지. 일 년에 몇 번이나 본다고 내 인생을 아들한테 다 써? 너도 네 노후나 걱정하세요.”
“그래도.....”
“공부할 애들은 시키지 않아도 할 거고, 공부를 잘 한다고 성공하는 시대도 아냐. 아들은 남의 여편네 남편이야. 네 남편한테나 잘 하세요! 나도 그렇고 처남들도 결혼 한 다음에 부모님을 얼마나 찾아본다고. 괜히 나중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지 말고 자기 인생 살아.”
나보고 아내는 냉정하다 한다. 나는 아내에게 그냥 키우는 재미만 느끼라 한다. 부모 말 잘 듣고 남 보기에 훌륭한 아들로 성장한다면 고맙겠지만 인생은 계획처럼 되지 않는다.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지만 완성과 성취는 내가 어쩔 수 없는 運命(운명)에 달려있다. 아들을 향한 내 노력은 조상님 제사에 모여 이야기 할 수 있는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일이고, 먼저 인생을 살아온 선배로서 내가 좋았던 것, 나빴던 것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 전부다. 아들의 인생에 나는 보조자 일뿐 아들을 이끄는 사람은 아니다. 아내는 내가 말과 행동이 다르다 한다. 아들 말이라면 어떻게든 들어주려하고 아내보다 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내가 원망스러운가 보다. 나는 아내에게 아들을 향한 노력에 기대와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고, 운이 좋아 아들이 성공하더라도 그건 내 것이 아니라고,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도 아니라고 말한다. 아들이 만든 인생은 아들의 보금자리에 함께하는 내 미래 며느리, 손자, 손녀의 것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 나는 이별을 준비한다. 내가 해줘야 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아들과 관계에 선을 긋는다. 아들이 가정을 이루면 내 곁에는 황혼을 함께하는 아내만 남는다. 해외출장을 간다고 어머니께 전화했다. 명절날 아팠던 아내가 궁금하셨던지 아내 안부를 먼저 물으신다.
“네 아내는 괜찮아?”
“요즘은 조금 좋아진 것 같아.”
“네 아내가 아픈 건, 네 사랑이 부족해서 그래. 아들한테만 신경 쓰지 말고 부인한테 잘해라.”
내 마음과 달리 어머니는 내가 아내에게 소홀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마음에서 아들을 많이독립시켰다고 생각했지만 주위에서 보기에는 아닌가 보다. 어머니나 아내가 보기에 나는 언제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아들의 독립을 먼저 경험한 어머니 말씀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