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루틴과 습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물 젖은 장작에 작은 불쏘시개로 불을 붙이는 것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눈이 따끔해지는 메케한 연기 속에서 팔이 빠질 듯한 부채질을 한다. 물먹은 장작에 불을 붙이려는 작은 불씨의 노력은 천하장사와 어린아이의 씨름 같다. 까만 잿가루가 얼굴을 뒤덮고 그냥 굶을 결심을 할 때쯤 옆에서 지긋이 지켜보고 있던 어르신이 묵직한 쇳덩이를 무심히 던져주신다. ‘토치!’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달리는 야생마처럼 불길은 나무의 구석구석 훑으면서 얇은 표면부터 장작의 깊은 줄기에서까지 불꽃을 뽑아낸다.
”루틴과 습관은 강력한 무기지만, 아무나 가질 수는 없다.“
습관이 만든 루틴은 눈 쌓인 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눈덩이처럼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뭉치고 단단해져서 좋은 결과와 성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스스로 굴러가려면 시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멈춰있는 트럭은 밑으로 잡아당기는 중력만 있지만,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나아가려는 힘이 땅속에서 끌어당기는 힘을 상쇄해서 조금만 밀어도 트럭은 앞으로 나아간다.
책을 펼치면 모르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와 물어볼 것이 산 같이 쌓여있는 책 속에 글들과 공식은 작은 불씨처럼 연약한 아이의 열정과 결심을 ‘후~~’ 불어서 금세 꺼버린다.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하나, 둘 차곡차곡 쌓이면서 변명거리들도 늘어난다. 변명이 쌓이면 도파민처럼 터지는 유튜브와 게임은 위안이며 도피처이다.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이해도 안 되는 공부를 몇 시간을 계속하면 몸도 마음도 지친다. 주저앉은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부축하면서 기력을 찾을 때까지 함께 해줄 부모, 선생님, 친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부모님은 힘들었던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편한 세상에 살고 있는 아이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아이는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선생님은 도움을 주기에 너무 멀리 있다.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친구는 위안이 되지만 해결은 없다. 지친 마음을 추스르고 스스로 움직이게 할 시작의 힘과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할 여분의 힘이 필요하다. ‘루틴과 습관을 만드는 힘!’
”AI 시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작은 틈이 생겼다.“
처음 ChatGPT를 사용하고, 유료결재 선택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30년을 넘게 IT와 함께하면서 마음을 흔드는 기술은 손에 꼽을 만큼 많지 않다. 나는 얼리어댑터가 아니어서 신기술이 나와도 남들보다 먼저 써보려고 조급해하지 않고 기술이 안정화될 때까지 기다린다. 스마트폰도 처음 출시되고 이 년 정도 지나서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window95, 웹브라우저, ADSL, 휴대폰은 아니다. 이 기술들에 나는 얼리어댑터였다. 세상을 바꿀 것 같은 기술들. 이것들은 세상을 바꾸었다. 내가 은퇴를 얼마 남지 않은 무렵에 만난 AI, ChatGPT. 나의 촉이 움직였다. 처음에는 영어로 시작했다. 영자신문의 기사를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구글번역기나 파파고를 통해서 원문 전체 번역에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평생 원인과 결과가 있는 논리적인 프로그램의 세계에서 살아온 내가 의미적 다양성이 있는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번역은 되었지만, 각종 전치사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영어 세계는 도착할 항구가 없는 배를 타고 헤매는 것 같았다. 영어 문장을 통째로 ChetGPT의 프롬프트에 입력하자, 번역된 문장이 빠른 속도로 화면을 채웠다. 성급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번역은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다. PDF로 된 신문기사는 캡처해서 주었다. 텍스트를 주든 이미지를 주든 ChatGPT는 상관하지 않았다. 먹이를 주면 더 달라고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마냥 ChatGPT는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나는 결과에 놀랐다.
”신기한 것이 재미가 되고, 재미가 루틴과 습관이 되고, 루틴과 습관이 결과가 되었다.“
영어신문을 보는 시간이 좋았다. 한 단어, 문장에 크게 한 방 맞으면 회복하고 다시 영어신문을 보는데 여러 날이 필요했다. ChatGPT가 만들어서 내게 준 보호장비로 나는 영어문장의 펀치를 피할 수 있고 맞아도 아프지 않다. 처음에 번역만 시켰지만, 문장 구조나 전치사의 쓰임새를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면 질문했다. 친절한 ChatGPT는 영어를 재미있게 만들었고, 꾸준히 공부할 수 있게 해주었다. 토요일 아침 낭만적인 드립커피와 함께 영어신문을 보는 내가 대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질문거리가 줄어드는 느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