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룰루랄라 Feb 05. 2020

생애 첫 마라톤을 시작합니다.

아니 10.5Km 뛸 계획입니다.

마라톤을 뛰기로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장거리 뜀박질이라고 해야 하나?   10.5Km에 도전하기로 했다.

태어나서 처음 10Km를 뛰는 것이니 나에게는 마라톤이 맞겠다.


점점 더 무심해만 가는 주변 사람들의 소식이나 보려고 페북을 헤매다가 지금 사는 곳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농부아람푸'라는 곳에서 마라톤이 열린다길래 바로 접수를 해버렸다.   

참가비가 무려 500밧!   카우무(내가 자주 먹는 한 끼 식사)를 열 번이나 먹을 수 있는 돈인데....

내 종이장 같은 의지력과 내 거지 같은 체력으로 힘들게 뛰는데 왜 내가 돈을 내고 뛰어야 할까?


처음 태국에 와서 참 의욕이 많았다.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고 부대끼면서 이 곳에 녹아들어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의 모든 행사에 참여하고, 태국 사람들을 보기만 하면 서툰 말이라도 적극적으로 했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것도 외국에 나와서 모내기라는 것을 해보고, 이곳 국왕 생일 행사에 가서 5시간 동안 일없이 서 있다가 오기도 하고, 한국어를 가르치러 와서는 태국 학생들의 영어 스피치 대회에 영어 트레이너 자격으로 대회도 나가봤다.   


동네 구멍가게 주인아줌마는 물론 그 집 식구들하고도 친해지고, 세 들어 사는 집주인 하고도 맥주를 함께 마시고, 맛없는 집이지만 집 근처 식당에도 자주 갔다.  (맛없는 식당은 자주 가도 역시 맛이 없다!)


하지만 사는 게 다 그렇듯이, 특별한 행사라는 게 그렇게 많지가 않다.

또 처음에야 특별할 뿐 행사라는 게 몇 번 겪어보면 다 그게 그거다.

또 태국 사람들이 워낙 자기 방어벽이 두꺼운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외국인이라고, 한류의 중심지에서 온 선생이라고 특별한 시선으로 대하는 경우도 점점 사라져 간다.

태국 사람들은 오히려 어느 선을 넘어서 가까이 가면 더 멀어지는 사람들이라...


현지어를 빨리 더 잘 배우려고, 현지인을 많이 만나려고 했고 만나는 사람마다 적극적으로 말을 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한두 번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친절한 대화는 점점 사라지고, 인사말에서 진도가 더 나가지 못하는 답답한 눈빛만 서로 나누게 된다.


여기에 온 지 1년도 안 됐는데 벌써 삶이 무기력해진다.

못 알아듣는 지루한 연설과 자기들만 아는 이상한 노래만 부르는 학교 연말 행사도 가기 싫어서 안 갔다.

거리를 쩡쩡 울려대며 지나가는 설날 퍼레이드도 항상 똑같고 시들해 보여서 나가 보지도 안았다.

간단한 인사말과 2~3초의 짧고도 기계적인 미소 말고는 1시간을 같이 있어도 아무 얘기를 안 하는 이 곳 사람들에게 더 이상 말을 걸기도 싫어진다.   슬슬 자존심마저 상해 온다.


그래서 마라톤을 하기로 했다.   뭐라도 해야겠다.   이들이 나에게 뭘 해주진 않을 거다 앞으로도 계속!

그러니 내가 찾기로 했다.   내가 하기로 했다.   

생애 첫 장거리 뜀박질이라 걱정도 많이 된다.

지금은 연습을 할수록 자신감이 붙는 게 아니라, 장딴지와 허벅지에 파스만 붙는다.


2월 16일 10.5Km를 완주하고 나면 내 가슴엔, 내 심장엔 뭐가 붙어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만드는 즐거움, 먹는 즐거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