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제 이 흡입기는 '웬만하면 쓰면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2. 1990년대까지만 해도 천식 환자에게 기관지 확장제가 제일 중요한 치료였습니다. 당시 천식은 단지 '때때로, 기관지가 경련하고 그 결과 기도가 좁아져서 숨이 가쁜 병’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운동을 심하게 한 뒤에 생기는 종아리 경련이나 눈꺼풀 경련처럼 말이지요.
3. 기관지 확장제로는 베타-아드레날린 작용제가 주로 쓰였습니다. 아드레날린 수용체가 활성화되면 우리 몸은 교감신경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교감신경은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나오는 물질이고, 우리 몸은 위기 상황에 숨을 크게 들어마셔야 하니 기관지는 한껏 넓혀집니다. (강도가 뒤를 쫓아오는 위급한 상황이라면 빨리 뛸 수 있게 숨길이 활짝 열려야 좋습니다.)
4. 베타 작용제는 교감신경이 작용한 것처럼 즉각적으로 기관지 직경을 넓혀주므로 환자 만족도가 굉장히 뛰어났습니다. 컥컥 되던 환자는 뿌리는 즉시 숨이 트입니다. 마치 코딱지를 파내어 주면 숨 쉬기 편해지는 것과 똑같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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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런데, 이렇게 간편하고 효과도 좋았던 베타 흡입제가 알고 보니 천식 환자의 사망률을 크게 높이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져 말 그대로 학계가 발칵 뒤집어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1970년대 뉴질랜드에서는 천식 환자 사망률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상승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그때까지 흔히 쓰이던 페노테롤 흡입제 때문이었습니다.
6. 페노테롤은 베타 수용체 1형이나 2형을 가릴 것 없이 작용하는 바람에 심장에 큰 부담을 주는 약이었습니다. 환자들은 숨쉬기는 편해졌지만 혈압이 오르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고 결국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이전에 다룬 인데놀이 바로 이런 아드레날린 수용체를 억제함으로써 두근거림과 긴장을 완화해 주는 기전이었습니다. 대신에 천식을 유발할 수 있음) 페노테롤은 효과가 매우 뛰어났지만 (현재 쓰는 벤토린보다 훨~~ 씬 강력해서 환자들이 너무 만족했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시장에서 퇴출됩니다.
7. 1990년대 들어 천식이 단순한 근육 경련이 아니라, 과도한 염증반응으로 유발되는 훨씬 복잡한 기전으로 일어나는 질병이라는 것이 알려집니다. 좁아진 기관지를 넓혀만 주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염증을 조절하는 약물, 코티코 스테로이드가 천식 치료의 주요 치료법이 된 것도 이쯤입니다. 페노테롤 사건도 있고, 원리에도 맞지 않으니 더 이상 속효성 베타 작용제 흡입제(SABA)는 권하지 말자라는 주장이 힘을 얻습니다. (1995, GINA)
8. 하지만 베타 흡입제(SABA)는 여전히 많이 쓰였습니다. 아니 쓰이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효과가 나타나는 장점 때문에 속효성 흡입제에 대한 환자들의 선호도가 여전히 강력하고 높았습니다. 반대로 원리야 어쨌든 간에 스테로이드 흡입기는 뿌린다고 금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적정한 효과를 보려면 매일 규칙적으로 뿌려야 하는 데 바로 효과가 없으니 환자들은 자꾸 까먹었습니다. 한 마디로 답답한 치료였습니다.
9. 게다가 베타 흡입제(SABA)는 가격이 저렴했습니다. 더불어 스테로이드 성분에 대한 사람들의 우려 또한 스테로이드 성 흡입제 사용을 꺼리게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1형이 아닌 2형에 주로 작용해 심장에 대한 영향력이 미미한 것으로 알려진 살부타몰 흡입제는 페노테롤 사건 이후에도 엄청나게 많이 쓰였습니다. (지금까지도 말이지요!)
10. 얼마나 대중적으로 쓰였냐면 이 약은 천식과 관련 없는 분들에게도 매우 익숙할 정도입니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등장인물이 숨이 찰 때마다 호주머니에서 꺼내 간간히 흡입하던 흡입기가 바로 살부타몰 흡입제, 벤토린이기 때문입니다.
11. 시간이 흐르면서 우려했던 대로, 베타 작용제 흡입기에 의존하는 천식 환자들의 예후가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나쁘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기 시작합니다. 가이드라인에서 점점 벤토린의 사용을 자제하자는 뉘앙스도 강해집니다.
12. 이에 스웨덴에서 2006년부터 2014년까지 36만 명의 천식환자 중 벤토린을 1년 사이 두 개 이상 처방받은 사람들을 추적관찰한 연구가 큰 주목을 받습니다. 연구에서는 천식이 잘 조절되는 환자라면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벤토린이 필요 없고 한번 흡입할 때 보통 2번 흡입하는 것으로 가정하면 최대 2개/년 이상은 쓰지 않아야 한다고 분류했습니다.
13. 총 365,324명의 천식 환자(평균 연령 27.6세, 여성 55%)가 연구에 포함되었으며 이 중 30%가 속효성 베타 2 작용제(SABA)를 과다 사용했습니다. 2% (7,140명)의 환자는 11개 이상의 벤토린을 쓰는 것으로, 즉 매달 1개 이상의 벤토린을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려한 대로 SABA 과다 사용은 적절한 SABA 사용에 비해 천식 악화 위험 증가,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호흡기 질환 관련 사망, 그리고 천식 관련 사망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4. SABA(벤토린)를 과다 사용한 그룹(연간 11개 이상)에서는 적정한 SABA 사용 그룹에 비해 사망자 수가 6배나 많았습니다. 그만큼 많이 쓰지 않은 그룹이라 하더라도 일정 개수 이상의 사용은 사망위험과 밀접하게, 비례하여 연관되었습니다. (위험비(HR)가 용량에 따라 1.26 → 1.67 → 2.35로 오름 )유지 목적으로 스테로이드 흡입제를 비교적 잘 쓰는 환자라 하더라도 SABA 사용량이 많다면 사망률은 높아졌습니다.
15. SABA과용은 사망률뿐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SABA를 많이 사용한 환자일수록 항우울제, 수면제, 진정제 사용이 많았습니다. 슬프게도 한번 SABA를 과용한 그룹은 지속적으로 과용이 지속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16. 속효성 베타 흡입제를 자주 사용하게 되면 기관지의 베타 수용체가 내성이 생깁니다. 약물에 노출되면 될수록 민감도가 떨어지거나 수용체 숫자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내성이 생기다 보니 환자들은 더 자주 흡입하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17. SABA는 천식의 근본 원인인 만성 염증을 치료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거기까지면 좋을 텐데 과학자들은 되려 염증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SABA를 자주 사용한 환자의 기관지에는 호산구 세포가 훨씬 많아졌고 반복되는 염증 작용으로 흉터가 생기며 기관지가 비가역적으로 변형(리모델링)됩니다.
18. SABA를 자주 쓰면 천식의 악화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합니다. 위의 뉴질랜드의 페노테롤 예에서 증명되었듯이 SABA 자체가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므로 환자는 호전된 증상에 안심하게 됩니다. SABA를 많이 쓰는 환자는 흡입 스테로이드 사용을 덜한 경향성이 뚜렷하며, 조절되지 않는 천식은 매우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집니다. 더불어 아무리 베타 2 수용체에 선택적으로 작용한다 해도 살부타몰 역시 심장에 무리를 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 의사들은 SABA, 벤토린 오남용의 악순환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 와중에 2019년 GINA 에서는 더 이상 SABA를 단독으로 쓰지마라는 파격적인 발표가 나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