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로이드 (2)

by 예재호

1.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스테로이드가 치료제로 쓰이는 이유를 사진 한 장으로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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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거나 맞고도 멀쩡한 수준을 넘어, 말 그대로 총알을 '멈춰 세우는' 활약을 펼칩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네오가 매트릭스의 소스코드에 관여할 수 있는 존재, '그(The One)'이기 때문인데요.


3. 우리의 주인공 스테로이드(코티솔) 또한 네오가 총알을 멈춰 세우듯, 면역이나 염증 반응을 일시에 멈출 수있는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효과를 보이는 이유도 영화 설정과 일맥상통합니다. 전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스테로이드는 핵까지 바로 들어가 세포의 소스코드인 DNA에 작용하는 방식으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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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threads.com/@care.about_your.health/post/DT186XLgaU2?xmt=AQF0s61r7ud1pqdaE6IQa3FvWWTcsEiRAUOiLv4FN9LfOQ


4. 예를 들어 스테로이드는 유전자 수준에서 비만세포(폭탄)가 IgE(도화선)와 결합하는 데 필요한 IgE수용체(FcεRI)를 덜 만들어 내도록 조절합니다. 신약 졸레어가 IgE을 1대 1로 마크해 비만세포에 붙지 못하게 만드는 원리라면, 스테로이드는 아예 IgE가 붙어서 일할 '일자리'를 줄여버리는 원리니 훨씬 고차원적입니다. 당연히 효과도 비교할 수 없게 스테로이드가 뛰어납니다. 심지어 졸레어는 한 번 맞는데 25만 원이고, 소론도는 한 알 하나에 30원 정도이므로 거의 3,000배나 저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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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뿐만이 아닙니다. 스테로이드는 비만세포가 분화되는 과정을 막아, 비만세포(폭탄)의 수를 줄이므로, 천식이나 알레르기성 비염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합니다. 스테로이드를 두고 '잠시 증상만 억제해 주는 미봉책 아니냐'라고 불신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알레르기 질환에서 스테로이드는 여전히 가장 중요하고 일차적인 치료제로 분류됩니다.


6. 상황을 악화시키는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자폭 특공대, 호산구에 대해서도 스테로이드는 독보적인 위력을 발휘합니다. 알레르기 질환 중에서도 호산구가 증식하고 침윤되는 질환들은 치료가 더욱 까다로운 편인데요. 그 이유 중 하나가 호산구라는 세포 자체가 매우 독하게, 웬만한 공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기생충의 벽을 파고들어 가 자폭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느니 그럴 만도 하다 싶기는 합니다만, 그 호산구가 적이 되어 버리니 참 치료가 쉽지 않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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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행히 최근에는 호산구가 성숙하는 데 필요한 신호(사이토카인) IL-5를 억제하는 누칼라라고 하는 신약이 개발되어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한데 가격이 굉장합니다. 무려 한 병당 128만 원에 이릅니다. 하지만 스테로이드는 이 호산구마저 ‘수명’을 감소시키고 면역 작용에 제약을 가함으로써 그 위력을 약화시키는 데 독보적으로 효과적입니다. 가격은 거의 몇 만 분의 1 수준인데 말이죠! 역시 누칼라도 스테로이드를 절대 대신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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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지금에야 몇십 원이면 쉽게 처방받을 수 있는 스테로이드도 처음부터 이렇게 값싸고 아무나 받을 수 있는 치료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최초의 스테로이드(코르티손)는 소의 부신에서 추출되었는데 환자 한 명을 치료하려면 소 3만여 마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효과는 너무 혁명적이었습니다. 최초로 치료제로서 스테로이드를 투여된 환자는, 통증으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평생을 휠체어에서만 생활해야 했던 류마티스 환자였는데 며칠 뒤 그 환자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상상이 가십니까? 환자는 벌떡 일어나 그 길로 바로 백화점에 들러 쇼핑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충격적인 효과를 목도한 당시 과학자들과 학계의 관심은 요즘 GLP-1 RA나 키트루다 등의 신약과는 (단연코) 비교할 수준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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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알레르기 질환에 있어) 스테로이드가 가진 단점을 굳이 하나 꼽아 본다면 유전자에 작용해 판을 바꾸는 방식으로 작용하다 보니 환자분이 속 시원한 효과를 느끼기가 힘들고 치료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입니다. 코에 뿌리는 스테로이드 분무제나 천식에 쓰는 흡입제는 효과가 느리다 보니 답답하게 느껴져 환자들이 결국 치료를 포기하고 구석에서 먼지만 쌓게 만드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도 대부분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 히스타민제나, 류코트리엔 조절제나, 교감신경 작용제나 부교감신경 차단제(항콜린제) 등을 함께 써야하고, 글에서도 먼저 다룬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10. 맞습니다. 스테로이드는 이미 난리가 난 상황을 당장 수습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IgE 두 개가 연결되어 펑하고 터진 비만세포에서 분출한 히스타민이라던지, 이미 자폭이 시작된 호산구를 진정시키는 일은 아무리 스테로이드라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 또한 ‘일반적인 용량에서,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안전한 용량에서’라는 조건에서나 그렇지, 당장 불을 꺼야 하는 긴급한 상황에서 의사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최후의 보루 또한 역설적으로 스테로이드뿐입니다.


11. 스테로이드는 고용량으로 투여될 경우 (이른바 Pulse요법) 그 어떤 약제보다도 소화수 역할을 잘 해냅니다. 일반적인 복용량의 수십 배까지도 투여되는 이 치료법은 면역계를 말 그대로 "꺼" 버리는 무지막지한 효과를 보여 줍니다. (진정한 네오의 힘) ‘지금 당장 불을 끄지 않으면 장기가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거나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이러한 전략은 그 빛을 발합니다.


SENTINEL.png 비유전체적 반응은 현실세계에서 네오의 힘이 발휘되는 것과 비슷하다.


12. 예를 들면 자가면역질환 루푸스가 급격히 활성화되어 신장 기능 손상을 일으킬 때나, 천식의 악화로 의식을 잃을 정도로 호흡곤란이 유발될 때, 백혈병으로 혈구세포가 무한정 증식할 때, 뇌압이 오르거나 시신경의 부종으로 시력의 손상이 우려될 때 등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고용량 스테로이드는 그저 한가롭게 유전자 발현을 조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세포막을 말 그대로 ‘얼려’ 버립니다. 어떤 염증 작용도 세포 밖으로 나오지 못함으로써 면역 작용이 리셋되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 것을 스테로이드의 비유전체적 작용(non‑genomic)이라고 부릅니다. 이 또한 스테로이드가 기름 성분이라는 점이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스테로이드는 마치 방수 코팅제처럼 세포막 사이사이에 끼어들어가 세포를 물리적으로 단단하게(안정화) 만들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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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스테로이드 고용량 요법을 대신할 수 있는 치료법은 제가 장담하건대 없습니다. 왜냐면 우리 몸에서 자연적으로 나오는 호르몬, 코티솔이 바로 그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준비된 호르몬이기 때문입니다.




14. 여담입니다만 이토록 뛰어난 효과에, 범용적인 쓰임새에, 오랜 기간을 통해 검증받은 안정성까지 두루 갖췄음에도 억울하게 괄시받는 스테로이드를 변호할 일이 생길 때마다 어쩐지 내과의사인 제 신세가 종종 오버랩되어서 적잖이 안쓰럽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스타틴에 대한 오해나, 고혈압약이나 당뇨약을 권하는 의사들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시는 것과 그렇다더라, 식의 소문만 듣고 스테로이드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시는 것은 어쩐지 맥락이 비슷하다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15. 물론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알고,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실 써야 할 때는 써야 합니다. 스테로이드 치료가 아니면 큰일 날 순간인데도 '스테로이드 그거, 부작용 심하지 않나요?'라며 주저하시는 분들께 의사들은 난감함과 자괴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물론 개원 후에야 그 정도로 급박한 상황은 잘 없지만, 코에 뿌리는 분무 스테로이드를 10분여간 설명드린 뒤에 '잘 알겠는데 스테로이드는 부작용이 심하다고 들었으니 지난 번에 잘 듣던 그 슈다페드나 한 이 주치(강조) 주세요.'라는 경우는 생각보다 잦습니다.


16. 더불어 이 글을 읽으시는 분 들 중, "혹시 지금 나도 30원짜리 소론도로 막을 수 있는 병을 150만 원을 쓰며 치료받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보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훨씬 값싸고, 근본적으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 그래서 보험의 영역으로 포함해 준 치료법이 있는데 굳이 큰돈을 들여가며 보험도 안 되는 치료를 받느라 전전긍긍하실 필요는 정말 없습니다.


17. 이것으로 편파적인 스테로이드 옹호글을 마칩니다. 내일은 좀 더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을, 자연 호르몬 코티솔의 기전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더불어 예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보디빌더들의 노하루를 참고해 살펴본 뒤, 왜 먹는 약이나 주사는 피하되 분무기나 스프레이를 애용해야 하는 지에 대해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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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ye-jae-o/99

https://www.threads.com/@care.about_your.health/post/DPLjeDfARM_?xmt=AQF0LVwQZAQTHUj_V1YwzOQ_1LONRoxG6XspaSuHyjbH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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