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 스프레이와 천식 흡입기, 아토피 연고에 들어가는 스테로이드는 3세대 스테로이드로, 전신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개선되어 걱정 없이 오래오래 쓸 수 있습니다.
2. 1949년 최초의 합성 스테로이드가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에게 투여되었고, 통증으로 걷지 못하던 환자는 벌떡 일어나 제 발로 걸었습니다. 이런 극적인 치료 효과에 고무된 많은 과학자들은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졌던 수많은 질병에 너나 할 것 없이 스테로이드 치료를 시도했습니다. 1950년 한 해에만 코르티손 치료 효과에 관한 논문이 300편 이상 발표되었고, 그해 노벨 의학상은 당연히 스테로이드를 발견한 Kendall, Reichstein, Hench에게 수여되었습니다.
3. 하지만 예상치 못한 심각한 부작용이 잇따라 보고됩니다. 스테로이드를 투여받은 환자들은 가장 먼저 정서적 변화를 호소했습니다. 처음에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아서 그런 줄 알았더니, 그러기에는 너무 심하게 들뜬 상태가 유지되다가 점점 공격성과 적대성이 심해지고 곧 반대로 우울증이 나타났습니다. 투여를 3주 정도 할 경우 난데없이 환자들의 외양이 변하기 시작했는데, 얼굴은 붓고 여드름과 털이 났습니다. 1년을 넘게 쓴 환자의 경우 부신은 위축되어 코티솔이 거의 나오지 않게 되어 버렸고, 면역력이 억제된 탓에 심각한 감염으로 생명을 위협받았습니다. 중단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말로만 들어도 무시무시합니다.
4. 과학자들은 이런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을 보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원인을 알아내고 대책을 세우는데 부단한 노력과 연구가 이어졌습니다. 그만큼 스테로이드의 치료 효과는 대단했고, 냉정하게 들리실지 몰라도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써야 할 상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5. 그런데 말이죠. 이게 다 1950년대 있었던 일 들이니 실은 벌써 80년이나 지난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입니다. 그 사이에 스테로이드라고 발전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사실 요즈음 많이 쓰이는 것은 3세대 (soft drug) 스테로이드로 이런 부작용들과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최소한 '먹거나 주사로 맞지 않는 스테로이드' 만큼은 환자들도 웬만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6. 3세대 스테로이드는 전신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소적으로만 작용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주요 방법을 간단하게 소개해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신체 내로 흡수되면 빠르게 분해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흡입기나 연고 등 국소 스테로이드 제제로 많이 쓰이는 부데소나이드(Budesonide)나 모메타손(Mometasone), 플루티카손(fluticasone) 은 몸에 흡수될 경우 간에서 금세 분해됩니다. 당뇨나 골다공증, 문페이즈와 완전히 관련이 없다고는 못하겠습니다만 먹어서 그런 부작용이 일어나려면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 들어가야 합니다.
7. 두 번째, 시클레소나이드(ciclesonide)와 같이 아예 표적 장기에만 작용하게 하려고 만든 스테로이드도 있습니다. 시클레소나이드는 호흡기의 특수한 효소 에스테라제에 의해 활성 대사체로 전환되기 전까지는 스테로이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합니다. 즉, 흡입기의 분말을 먹었다 해도 효소가 없으므로 큰 역할을 못합니다.
8. 세 번째, 알도스테론 수용체에 붙지 않도록 개량했습니다. 알도스테론 수용체에 스테로이드가 붙으면 몸이 붓고, 혈압이 오르고, 짠 것을 갈구하게 되어 (salt craving) 살이 찌는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원래 우리 몸에서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코티솔은 11β-HSD2라는 분해 효소에 금세 제거되어 신장의 알도스테론 수용체에 결합하지 않는데, 구세대 합성 스테로이드는 분해 효소에 유달리 강해 부작용이 심했습니다.
9. 이러한 3세대 스테로이드는 ‘먹거나 주사로 맞는’ 스테로이드가 아닌 제형에 대부분에 쓰입니다. 나조넥스나, 아바미스나, 옴나리스와 같은 코 스프레이는 물론, 심비코트, 렐바 등은 모두 전신 흡수나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아도 될 화학적으로 안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루지는 않았지만 안약이나 선생님들이 처방해 주시는 아토피 연고 등도 그렇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곳에서만 작용하지 몸에는 걱정하시는 만큼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국소 스테로이드 제제는 (의사들이 처방한 기간 동안은) 정말 안심하고 쓰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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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렇다면 ‘먹거나 주사로 맞는’ 스테로이드 중에서는 3세대 스테로이드가 없다는 말일까요? 네, 아쉽지만 아직은 개발이 되지 않았습니다. 안타깝지만 사실 ‘간 등에서 빠르게 분해되는 것’과 ‘먹어서 전신에 작용하는 효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극과 극의 목표라서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스테로이드의 항염 작용만 남기고 유전자적 발현은 제거한 SEGRA (Selective Glucocorticoid Receptor Agonists) 등을 개발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의사들이 스테로이드에 바라는 기능은 항염증이지만 근본적으로 스테로이드는 위기에 대응하는 용도로 생성된 호르몬이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DNA 수준에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11.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되도록 3세대 스테로이드로 만들어진 국소 스테로이드로 알레르기 질환을 관리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스테로이드로 된 스프레이는 몸에 안 좋데’, ‘스테로이드 연고는 당뇨를 일으키니까 쓰지 말자’라는 오해로 부작용이 덜한 3세대 스테로이드 사용을 피하다가는 되려 정말 부작용이 심한 2세대, 1세대 스테로이드를 먹거나 주사로 넣어줘야 하는 일이 왕왕 벌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별일 없으면 참 다행입니다만, 사람 일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12. 그럼 먹는 스테로이드나 맞는 스테로이드는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고 예전에 다룬 내용을 불러오는 탓에 조금 복잡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13. 첫째. 이화작용의 항진과 유발되는 지방간과 고혈당 현상입니다. 앞서 코티솔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몸에서 분비하는 '지배인'과 같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풍족한 에너지(혹은 돈)입니다. 우리 몸에서 에너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바로 포도당이지요. 코르티솔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그동안 저장해 놓은 저축을 헐어 포도당으로 만들어 내게 작동합니다. 이것을 이화작용이라고 합니다. 반대말은 동화작용으로 다름 아닌 김여사, 인슐린이 그렇게 신경 쓰던 근육을 키우고 지방에 에너지를 저장하는 것을 뜻합니다.
14. 코르티솔은 간에서는 글리코겐을 분해하게 만들고, 근육을 분해해 나온 아미노산을 포도당으로 변환하게 합니다. 지방세포도 분해해서 중성지방을 내어 놓게는 하는데, 아쉽게도 분해한 지방이 고스란히 다른 지방에 가서 들러붙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게 문제입니다. (그저 부서지기만 하면 코르티솔이나 스테로이드가 비만약으로도 쓸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지방세포에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지방 분해 효소인 LPL과 앞서 다루었던 코르티솔 충전효소 11β-HSD1의 활성이 부위별로 다른 것이 이유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15. 이런 지방 재배치의 결과로 달덩이 얼굴(moon face)과 버펄로 험프(뒷목과 어깨 사이에 지방이 둑처럼 쌓이는 현상),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배만 나오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이를 부르는 명칭도 있습니다. 바로 쿠싱(Cushing) 현상이라고 합니다.
16. 늘어난 중성지방은 간으로 들어가 지방간을 만들고, 근육으로 들어가면 근육 내 중성지방(IMCL)이 되어 인슐린 저항성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결국 변화가 누적되면 당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골다공증과 피부가 얇아지는 현상, 튼살이 생기는 이유도 다 코티솔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에너지(돈)를 꺼내 쓰느라 생기는 일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17. 두 번째로, 스테로이드 약제가 코티솔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알도스테론의 역할을 해버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스테로이드라는 것은 지용성 호르몬을 일컫는 말이고 그중 글루코-코르티코이드라고 하는 포도당과 관련된 부신 호르몬이 바로 코티솔이라는 이야기를 드렸는데요. 우리 몸에는 코티솔 외에도 지용성 호르몬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알도스테론과 테스토스테론, 에스트로겐과 같은 성호르몬, 안드로겐입니다.
18. 물론 우리 몸의 콜레스테롤이 충분히 많기 때문에, 한정된 재료를 두고 싸우는 관계는 아닙니다만 세 가지 호르몬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디빌더들이 코티솔 수준을 낮추는데 엄청난 신경을 쓰는 까닭과 다낭성난소증후군(PCOS)에서 드물지만 스테로이드를 치료로 쓰는 것도 이런 관계 때문입니다.
19. 외부에서 들어온 합성 스테로이드가 알도스테론 수용체에 결합하게 되면 신장에서는 나트륨과 수분을 재 흡수하고 이 탓에 혈압이 오르며 몸이 붓습니다. 뇌에서는 염분이 필요하다 생각이 들어 짠 음식을 갈구 (salt craving)하는 현상이 생기고 식욕도 돋웁니다. 살도 찔 수 있습니다.
20. 뇌에도 코티솔과 알도스테론 수용체가 있습니다. 특히 뇌혈관장벽을 잘 통과하는 제형, 대표적으로 근육주사로 맞는 덱사메타손은 그래서 뇌부종에 쓰입니다. 합성 스테로이드가 주입될 경우 뇌의 코티솔과 알도스테론 수용체에 결합할 수 있고 그 결과 약하게는 흥분과 불면증이 생기고, 길게는 기억력의 감퇴나 감정 기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코르티솔을 충전하는 데 쓰이는 11β-HSD1을 억제하는 약을 치매나 인지저하 치료제로 개발하려는 연구가 있는 것도 이와 연관됩니다.
21. 스테로이드를 먹으면 속도 쓰립니다. 위 벽을 보호하는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이 염증 물질과 재료를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스테로이드는 포스포라파아제 A2를 억제해 세포막을 분해해서 나오는 아라키돈산 생산을 막습니다. 아라키돈산은 이후 트롬복세인 (아스피린에서 나왔던)이나, 류코트리엔 (싱귤레어에서 나왔던)을 만드는 데 쓰이는데, 여기서 곁다리로 위벽을 보호하는 프로스타글란딘도 만들어냅니다. 염증 물질이 줄어드니 천식 증상은 줄어들고 통증은 나아졌지만 속은 쓰릴 수 있는 원인입니다.
22. 장기간 쓸 경우 기존 항상성 혼란도 문제가 됩니다. 코티솔은 원래 우리 몸에서 나오는 호르몬이라는 이야기드렸었지요? 이 코티솔은 시상하부(기획)-뇌하수체(총무)-부신(공장)이라는 위계질서를 가지고 운용되는데요. 부신에서 나온 코티솔이 시장에서 팔리는 상황을 감지한 뒤 시상하부가 생산 계획을 세워 하달하는 식입니다. 외부에서 넣어준 스테로이드가 코티솔 역할을 하다 보면 시상하부에서는 ’너무, 충분하군 ‘이라고 판단해 발주를 넣지 않은 채 지낼 수 있고, 결국 부신은 폐업할 수 있습니다.
23. 원래 생리적으로는 시상하부의 지시는 아침에 많이 나오는데요. 우리가 눈이 번쩍 뜨이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시상하부에서 부신에다 지시한 덕분에 코티솔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먹는 스테로이드는 되도록 아침 일찍 먹으면 부작용이 덜합니다.
24. 부작용 이야기를 드리다 보니 코티솔이 뭔가 천덕꾸러기, 말썽쟁이 같은 이미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전부 코티솔 수치를 낮추자, 스트레스를 줄이자, 코티솔은 노화의 원인이다 같은 이야기만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몸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호르몬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코티솔은 위기에 대응하는 '지배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25. 원래는 오늘 보디빌더들의 이야기까지 꼭 드리고 싶었는데요. 분량이 너무 많이 나와서 힘들 것 같습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코티솔이 우리 몸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디빌더의 인대 손상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보디빌더에게는 코티솔을 낮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요. 최근 주목을 받았던 아쉬와간다 등은 사실 코티솔을 낮추는 역할을 위해 보디빌더들에게서 쓰이는 약물로 알고 있습니다.
26.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번에 하기로 하고 보디빌더들이 너무 코티솔을 극단적으로 낮출 경우에 인대의 염증이 누적되어 결국 인대가 끊어져 버리는 충격적인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 몸에서 엄연히 나오는 호르몬이니 너무 적게 만들게 조정하는 안 되고, 너무 많이 돌아다니게 구형 스테로이드를 자주 먹거나 주사 맞는 것도 피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오늘부터 스프레이, 분무기, 연고를 잘 쓰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