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문어 Mar 24. 2022

저의 인내력은 하위 1%입니다.

괜히 시작이 끝이겠어요?

약 2년 전, 졸업 설계를 하고 있던 저는 한층 더 심해진 우울과 무기력 증세로 고생하다 드디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고 그곳에서 다양한 검사를 받았더랬습니다. 그중 TCI (기질 및 성격검사) 결과가 정말 인상적이었는데요, 저는 기질의 4가지 척도 중 인내력이 하위 1%였습니다. (거기다 이제 사회적 민감성을 12% 정도 곁들인...)


인내력은 단순히 참고 견디는 힘이라기 보단, 지속적 강화가 없더라도 한 번 보상된 행동을 일정한 시간 동안 꾸준히 지속하려는 성향을 말합니다.


낮은 점수:

보상이 안정적으로 기대되는 상황에서도 게으르고 비활동적, 일관성과 끈기 부족, 노력 X, 꼭 해야 할 일만 함, 어렵지 않은 일도 시작 더딤, 좌절 비판 피곤 장애물에 부딪치면 쉽게 포기, 현재 성취에만 만족, 개선을 위한 부가적 노력 X, 항상 타협 준비가 된 실용주의자, 변화가 빠른 상황에선 적응적이나 변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보상이 자주 있지 않아도 장시간 후 보상이 주어지는 상황에서는 부적응적.

(링크를 타고 가시면 TCI검사와 그 척도에 대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낮은 인내력은 저의 성격이 아닌, 받아들여야  저의 기질이었습니다. 부지런한 사람이고 싶었지만 그러기가 좀처럼 힘든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타고나기를 이렇다는  얼마나 억울하던지요. 조금만 불안하고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환경에 처하면 저는 방안에 가만히 누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되었고, 매일마다 저는  자신을 혐오했습니다. 높은 스트레스는 게으름을 낳았고, 게으름은 자기 책망으로 이어졌고, 자기 책망은 디시 불안과 스트레스로 돌아왔습니다. 인내력이 낮은 사람들은 너무 높은 목표를 잡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높은 이상을 바라봤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싫었습니다. 거기다 대학이라는 깊은 우물은 나와 다른 이들을 비교하기  쉬운 곳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자라나면서 책임감까지 갖다 버리진 않아서, 타인과 연관된 자리에서 맡은 일은 책임감을 가지고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책임감을 가지고 나의 일을 뒷전에 둔 덕분에 학점관리와 같은 제 개인적인 일은 거의 다 개판이었고, 저는 학교를 다니며 학사경고를 총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너무나 값진 인생의 훈장이죠... (눈물 멈춰)


공적인 일에 책임감만 잔뜩 가지고 살다 또다시 무너져 중도 휴학을 한 후, 문득 제 자신이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 누구도, 심지어는 내 부모도 나를 책임져 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저는 제 인생을 내가 책임지기보다 늘 누군가가 내밀어주는 손을 찾으며 의지하려고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 "하나님이 길을 예비하신다"와 같은 말을 저는 도깨비방망이 마냥 받아들이고, 나무 밑에 누워 감이 언제 떨어지나 쳐다보기만 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저는 "이건 혹시 주님의 뜻?"이라며 하던 궁예 짓을 다 접고 비우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제 인생을 책임지기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지금 저는 대학이라는 장소를 떠나 거의 완벽하다 싶은 회복의 시간을 거친 후 복학한 지 한 달 가까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게으릅니다.

그래도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 과제를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과 타협에 성공해서, 햇볕이 내리쬐는 카페 창가에 앉아 과제를 하다말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의미로요. 예전 같았으면 바로 집에 가서 누워서 자다가 눈뜨면 게임하고 자책하고를 반복했겠지만, 그 게으름을 이겨내고 카페에 앉아있는 제가 참 대견합니다. 비록 2달 전에 시작한 현대 건축사 시리즈는 고작 와 3편이나! 써냈지만요.


시작이 끝인 제 인생에 시작이 끝나지 않길 바라고, 또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우연히 제 글을 읽고 힘을 얻었으면 합니다. 높은 경쟁의식과 성공주의 사회 속에서 저와 같은 사람들은 너무 취약하거든요. 사람은 저마다의 속도가 있는데, 조금만 주의를 놓치면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춰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기가 너무 쉬운 사회입니다.


저의 성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아주 느리고 천천히. 업로드도 아주 느리고 천천히...

후에 또 풀 이야기가 많습니다. 과제하다가 막히면 또 쓰러 돌아와 보겠습니다.

"행복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발견해내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한 말입니다. 우연히 제 글을 보신 분들, 다들 행복을 발견해내는 하루 되길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