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 4) 헛헛한 마음을 달래며
작업실을 오픈하면서 로망이 있다면 작업실로 찾아와서 간식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길고양이들과의 만남이었다. 골목에 있었기에 당연히 한마리쯤은 방문해주실(?) 것으로 예상했는데 2년의 계약기간 동안 단 한번도 동네 고양이는 찾아 오지 않았다. 작업실 바로 앞에 있는 주차장 그늘에서 한가롭게 쉬고 있었던 치즈고양이가 첫 방문이었는데 미리 챙겨뒀던 츄르를 가질러 간 사이 고양이는 사라져버렸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며 동네 산책을 해봤지만 원룸과 상가가 가득한 캘리그라피 작업실 근처에 대낮에 쉽게 길고양이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내겐 길고양이를 챙겨주던 캣맘을 하다 그만뒀던 기억이 있다. 이십대 중반쯤 당시 내가 살던 원룸 근처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다. 학교 근처에는 고양이들이 많았고 나 뿐만 아니라 고양이를 챙기는 부지런한 챙기는 캣맘 캣파파들이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집에 있던 사료를 챙겨서 일정한 장소, 일정한 시간에 놓아뒀다. 꽤 긴 시간 내가 당연히 해야하는 일로 여겼고 챙겨주던 녀석 중 한마리는 아기고양이 4마리와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아가들은 엄마에게 교육을 잘 받았는지 사람이 오면 학교에 있었던 지하 구멍으로 늘 빠르게 숨었다.
몇일 뒤 찾아와보니 지하 구멍은 누군가가 막아둔 돌멩이로 입구가 막혀 있었다. 살이 조금 올랐던 아기 고양이들은 어디로 간건지 보이지 않았다. 밥을 챙겨주던 근처에 쥐약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캣맘들이 이유 없이 주변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는 기사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더 이상 길냥이들을 챙기지 않게 되었다.
그 후로 내가 고양이를 키우는 것을 알고 길에서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가 있다면서 뜬금없이 내게 전화를 하는 지인들이 늘었다. 조언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은 책임질 수 없으니 고양이를 키우는 내가 데라고 가라는 연락이었다. 두마리 정도 키우는데 아기 고양이 한마리 더하는 것은 일도 아니지 않냐는 뉘앙스였따. 본인도 하지 못하는 구조를 타인에게 떠넘기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고양이를 키운다고 안타까운 고양이 모두 책임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갈등이 두려웠던 비겁했던 나는 캣맘을 그만뒀지만 여전히 캣맘으로 길에 있는 생명들을 챙기고 있는 많은 이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SNS를 훔쳐 보곤 한다. 그들 역시 시간과 돈을 쓰면서 아이들을 챙기고 있는데 캣맘, 캣파파라는 이유로, 또 공개적으로 활동한다는 이유로 안타까운 아이들을 당연하다는 듯이 떠넘기고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책임지지 못할 냥줍은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만큼을 하기로 했다. 종종 사료와 간식을 후원하고 후원금을 보내면서 물질적인 지원을 하면서 직접적으로 챙기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다. 부디 길고양이들을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면서 누군가에게 떠넘기지 말자.
내가 캘리그라피 작업실에 2년만 있을 것을 알기라도 하듯 정을 붙여주지 않은 근처의 고양이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임신과 출산으로 더 이상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했지만 책임져야하는 생명이 있었다면 그때는 어땠을까? 의미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오늘도 소소한 후원금 이체를 한다.
<이미 지나간 어떤 날>
- 반려동물 에세이, 매주 목요일 만나요
* 캘리그라피작가 언니 예진 @iyj1120
* 수의테크니션 동생 수진 @__am.09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