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남긴 여운
꽃이 예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배웠기에 잘 알았다.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고, 추상적인 아름다움과 예쁨의 개념은 꽃을 통해 비유로 전해진다는 것을. 그렇기에 나에게 꽃이 예쁘다는 것은 느낌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지식에 가까웠다.
많은 시와 가사가 노래하는 꽃의 환한 웃음은 문학시간에 배운 의인법(擬人法)의 하나였다. 식물이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표현해 그 특성을 부각하는 일종의 기술이었다.
꽃이 향기롭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물론 꽃을 처음 본 것이 아니기에 꽃에서 향기가 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향긋함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내 이불과 베개에 흠뻑 스며 향기로운 꿈을 꾸게 할 수도 있음은 몰랐다.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꽃이 나에게 향기롭게 말을 거는 세계가 오늘 내게도 열렸을 뿐이다.
꽃봉오리가 피어나 꽃잎이 펼쳐지는 모습이 밝은 얼굴에 짓는 미소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꽃의 웃음'을 마주하고 너무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
처음 보는 꽃에게서 씨앗일 때부터의 여정의 노래를 들으며 가만히 젖어가는 저녁이 찾아온 것이다. 내게도.
꽃을 보는 일이, 마음을 듣는 일이 되었다.
향기와 빛과 마음이 한데 뒤섞여 언어로는 불리지 못할 감각으로 나를 두드릴 때,
나는 말로 표현해야 할 모든 필요를 포기했다.
사실 꽃은 나를 위해 피지 않았다. 나를 위해 웃지 않았다. 나를 위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대가를 바라지도, 그 웃음을 나의 웃음으로 거슬러 달라 따지지도 않았다.
꽃은 다만 스스로를 살고 있었다.
방향성 없는 그 고요한 존재가, 바람 없는 내 방 안에서 더없는 울림을 가져올 때,
그 존재의 일부를 빌려 마치 내 것처럼 마음껏 소유할 수 있도록,
침묵으로 허락해 주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