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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Sep 14. 2019

힘 빼기, 그리고 수영

그림이나 요리 등 어떤 분야든 내가 위치한 수준의 정도를 대충은 가늠할 수 있는데, 내게 운동만큼은 그게 쉽지 않다. 있는 그대로만 적어보자면 나는 운동신경이 뛰어나지 못하다. 특히나 순발력이 낮아 학창 시절 100미터 달리기 실력은 남들이 200미터도 거뜬히 달릴 만큼 넉넉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유연성이 조금 있어 요가와 같은 정적인 운동은 곧잘 따라한다는 것. 이렇게 중구난방의 운동실력을 갖췄지만, 나는 운동을 좋아한다. 여기서는 좋아한다는 것의 '타이밍'이 중요한데, 나는 운동을 통해 땀 흘리고 샤워를 마친 그 때의 기분을 좋아한다는 게 더욱 정확하겠다. 이렇듯 운동에 있어서만큼은 일관성을 가지지 못한 내가 유일하게 가장 좋아하는, 운동하는 그 '순간'을 즐기는 종목이 있다.


수영.


나도 몰랐지만 나는 수영을 꽤 잘하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수영을 잘한다는 건 영법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매우 빠르거나 굉장히 오래 수영할 수 있는 폐활량을 가진 정도가 될 텐데, 어이없게도 나에게는 두 가지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 나는 느리고 조용하게 수영하는 편이다. 아마 내게 수영을 잘한다라고 말한 이들은 힘 빼고 하는 수영이 진짜라는 걸 아는 사람들일 것이다. 수영은 힘을 줄수록 물속으로 가라앉고 쉽게 지치며, 결국 제자리에서 어푸거리기만 하고 있을 공산이 큰 운동이다. 겨우 떠 있을 정도의 힘만 주고 나면 나머지는 루틴처럼 박자에 맞춰 팔을 젓고 발차기를 하는 게 전부다. 심지어 수영이라는 종목은 장비에 구애받지 않는다. 다른 종목과 다르게 수영은 이렇다 할 장비의 도움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실력으로만 나아갈 수 있다.


처음부터 이 운동이 너무 좋아서 열심히 했던 기억은 없다. 대학시절 긴 방학마다 집에 내려가면 늘 수영을 하러 다녔다. 그 시간이 쌓이면서 나는 점차 힘 빼고 수영하는 법을 자연스레 익혔고, 내 몸에 딱 맞는 옷처럼 수영이 편했다. 편하니까 계속하게 되고, 계속하다보니 실력이 늘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수영은 배워두면 몸이 기억하는 터라 잘 까먹지 않는다. 지금도 물속에 들어가서 십여분 정도 몸을 풀면 금세 영법이 몸에 붙는다.


수영이 좋아지기 시작한 건 배우고 한참이 지나서였다. 내가 생각보다 승부욕이 강하다는 걸 알게 된 후, 승부가 명확히 나는 운동 종목은 피했다. 굳이 여가를 위해 운동하는 것에서 승패에 따른 스트레스까지 덤으로 얻는 것은 너무 피곤한 일이었으므로. 수영은 혼자 하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나와 찰떡이었다. 빨라도 느려도 내 속도가 운동의 전부인 것이 편했다. 그리고 물속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묘하게 기분 좋아지는 그 순간이 있다. 분명히 현실인데 물속과 밖은 느껴지는 움직임의 속도와 소리가 완전히 달라진다. 물속은 괜히 조금 더 여유롭고 느리며, 무엇보다도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음이 가장 편안했다. 그래서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수영이다.


무엇보다도 물이라는 것이 가진 물성 자체의 매력이 참 좋다. 물속에서 하는 운동을 일찍 배우고 몸에 익혀두길 잘했다는 생각을 수 없이 했다. 물 위든 물 속이든 물에는 어떠한 자유로움이 분명히 존재한다. 결국 현실이라는 땅에 발붙이고 살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가끔 물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꽤나 잘 해낼 수 있다는 건, 내게 비현실적이라 일컬어지는 일종의 낭만을 까맣게 잊고 지내지 않을 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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