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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Sep 19. 2019

내가 너를 좀 아는데

이해력은 빠른데 기억력이 나쁘다

지구력은 좋은데 순발력이 떨어진다

참을성은 많은데 성격이 급하다

말하는 건 느린데 쓰는 건 빠르다

일머리는 있지만 공부머리는 없다


나는 어떠어떠한 사람이다 라는 명제를 찾는 중에 적어본 일부분의 나는 대략 저렇다. 나를 구성하는 아주 단편적인 부분일 테지만, 써두고 보니 말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 특징이 대부분이다. 특히나 참을성은 많지만 성격이 급하다 에서는 잉? 이게 말이 돼?라고 자문하기도 했다. 그만큼 한 사람을 구성하는 부분집합은 흑백처럼 명확히 구분 지어지는 것이 없다고 보는 게 더욱 정확하지 않을까.


함께 보낸 시간이 길거나, 압축적이지만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고 나면 그 대상이 친구건 가족이 건을 막론하고 내가 상대방을 좀 안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저 그 시간 속의 그 대상을 기억하는 것일 뿐일 텐데, 사람은 참 간사하게도 내가 저 사람을 겪어봤는데~라며 은연중에 타인을 잘 알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도 당연히 지난 시간 속에서 그렇게 생각했던 지인들이 많았고, 그래서 그들이 내가 아는 범주를 넘어서는 무엇인가를 보이면 으레 당황해하고 내가 알던 걔가 맞나 혼자 생각하고 지난 시간을 뒤적이고를 열심히도 했었다.


이제는 알겠다. 사람이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알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 그래서 누군가 내게 "내가 너를 좀 아는데..."라며 아는'척'을 할라치면 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당신이 나를 안다고? 나도 모르는 나를 당신이 정말 정확히 안다고? 그게 가능해?라고 되묻고 싶지만 늘 마음속으로만 생각한다. 혼잣말은 절대 밖으로 들려서는 안 된다는 철칙을 지키고자. 그리고 나 역시 상대방의 마음을 절대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항상 제대로 들어야 하고, 관찰하고 지켜보며 조금씩 더 알아가는 수 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물론 저렇게 말하는 타인이 절대 나쁜 의도나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안다. 다만 타고나길 조금 삐딱한 성정이 이런 데서도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나를 잘 안다고 말해주는 이들이 나에 대해 갖는 관심 또는 애정의 한 표현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맞다는 것도 대충은 이해한다. 어쩌면 한 개인이 내뱉는 말이 그 사람의 사고를 규범 지어버리는 무의식의 세계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보다 정확하겠다. 내가 누군가를 안다고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은 그 명제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앞으로도 쭉 그렇게 생각할 공산이 크다.


결국에 나는 타인을 절대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다만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려 노력하거나 적어도 이해해보려는 어떠한 시도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며, 그러한 태도를 꾸준하게 유지한다면 언젠가 조금 더 많은 타인의 마음을 지금보다는 잘 읽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희미한 희망만 있을 뿐이다. 조금 더 알고자 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며, 듣는 귀를 잘 열어두고 지내는 습관이 꼭 내 것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일희일비하지 않고, 한쪽 이야기만을 듣고 쉽게 판단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답을 찾는 과정에 내가 쉽게 지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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