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하루 동안 지친 나를
아무 말 없이 안아 준다.
그녀의 촉감은 어디선가
느껴본 것 같은데.
기억을 더듬어 봐도 아득할 뿐이다.
그녀는 나를 감싸고
천상의 세계로 데려간다.
때로는 어둠 속으로 나를 인도한다.
내 정신은
온통 그녀의 살결에 압도당한다.
그녀가 나를 안고 있을 때는
현실로 나가기 힘들다.
그녀는 속삭인다.
나는 발버둥을 쳐본다.
여전히 거부할 수 없다.
내 몸은 그녀에게 점령당한다.
나는 눈을 떠 본다.
그녀가 말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말을 할 수 없으니.
원망도 없다.
나는 그녀를 가까스로 밀치고
현실로 뛰쳐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이불이 하나 있다. 누구나 애착이 가는 이불이 있을 것이다. 우연히 이불을 하나 샀다. 60수 아사천으로 된 차렵이불이다. 처음에 산 이불은 다 그저 그렇다. 냄새도 그렇고 느낌도 그렇다. 시간이 지나야 본연의 느낌을 알 수 있다. 최소 일 년은 지나야 한다. 빨래를 여러 번 하고 섬유유연제를 넣어 돌려도 세월과 견줄 수는 없다. 시간이 그만큼 지나야 그 촉감이 나온다. 처음에 이불을 사면 손이 가질 않는다. 찢어져서 버린 옛 이불이 그립다. 괜히 버렸나 싶다.
시간이 지나도 새로 산 이불은 예전 내 이불처럼 될 것 같지 않다. 지금 이불은 한 삼 년 정도 되었다.
아하. 지금이 딱이다.
보들보들.
춥지도 덮지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포근한 사랑이 느껴진다.
내가 이렇게 길을 들인 이불은 인기가 많다. 우리 집 식구들은 내 이불을 탐낸다. 내 이불을 자꾸 빼앗아간다. 다들 내 냄새(?)가 베어서 그런지. 본인들 것과는 뭔가 다르다고 한다.(푸하하)
내가 추측하건대, 나이가 들면 사물한테도 말을 건다.
사람처럼 대해서 그런가.
내 이불은 유독 느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