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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 Aug 11. 2021

커피머신 청소를 하면서 드는 생각

상념

익숙함


몇 달 전 에스프레소 머신을 샀다. 처음에 커피를 내려 마실 때마다 매번 청소를 했다. 몇 달이 지난 지금은 머신을 닦지도 않는다. 밥솥이나 냉장고처럼 변해버렸다. 감동도 사라졌다. 내가 변했다.


오늘 아침 커피를 내려 먹으려고 커피머신을 보았다. 여기저기 커피 자국이 보인다. 내 게으름을 맞이하는 순간은 이런 때다. 사람하고의 관계도 비슷하다. 상대방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변한 건지도 모르겠다. 내 관심과 마음이 변하면 사물과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것이 된다. 결국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변해야 할 것은 나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커피머신을 휴지로 닦았다. 미안한 마음은 있지만 그렇다고 다시 설레거나 기쁘거나 하지 않는다. 우리 집에  첫날 좋았던 기억만 남아 있다. 글이라도   남겨놔서 다행이다. 내가  글이지만 다시 읽어 보면 지금의 나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뇌는 망각하게 프로그램되어 있다. 사실 우리는 나이 들어 치매에 걸리는 것을 걱정하지만 우리는 매일 치매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병적인 것과는 다르겠지만. 일종의 선경험이다.


커피머신을 닦고 나니 보기가 나아졌다. 내 마음도 좋아진다. 이래서 조던 피터슨이 방 청소 부터하라고 하나보다. 마음과 정신은 환경을 지배하기도 지배당하기도 한다. 소림사에서 무예를 닦으려면 청소만 몇 년 한다는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사람도 커피머신처럼 가끔씩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주지만 무료함과 나태함으로 빠지기 쉽다. 익숙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일은 나를 되돌아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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