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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 Dec 17. 2021

삐삐머리로 수술하기 싫어

병원에서 #3

수술실 가는 날


수술 당일이다. 간호사들은 전날 밤에도 몇 번씩 체온과 맥박을 체크했다. 수술복과 고무줄 2개를 나에게 주었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는 양갈래로 묶으라고 했다. 왜 양갈래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미 간호사는 할 만을 하고 다른 환자에게로 가버린 후다. 머리카락이 흐트러지지 않게 묶으라는 게 아닐까. 신랑은 밤에 간이침대에서 코를 골며 잤다. 오른쪽 팔에 주삿바늘과 링거줄이 있어 혼자서는 머리를 묶을 수 없었다. 신랑에게 부탁했다. 신랑은 세심한 편이 아니다. 삐삐머리를 해줬다. 양쪽 비대칭으로 말이다.


“다시 묶어주면 안 돼?”

“에이, 지금 수술 들어가는데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한심하다는 말투다.

“중요하진 않은데, 보기 흉해서.”

“누구한테 잘 보여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됐어.” 짜증을 낸다.


신랑은 매몰차게 자리를 떠났다. 핸드폰으로 내 얼굴을 봤다. 미친 x의 모습이다. 양갈래 머리를 다시 해보려고 팔을 움적거려봤지만 큰바늘이 꽂혀있어 팔을 굽히기가 어려웠다. 나는 왜 이런 거에 신경이 쓰일까. 이십 대도 아닌데. 남에게 보이는 모습에 연연해서 그러는 건가. 아파도 바보 같은 모습이 신경 쓰인다. 이런 비대칭 삐삐머리를 하고 있으면 수술실 사람들이 웃지 않을까? 웃음을 참을까? 쓸데없는 생각의 가지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염치 불구하고 지나가는 간호사에게 머리를 묶어 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상식 없는 철면피 아줌마를 대하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보호자에게 해달라고 말해주겠다고. 나도 무리하고 예의 없는 부탁이라고 생각했지만. 여자라면 내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었다.


이번엔 수술복이다. 신랑이 수술복을 입혀줬다. 상의가 한쪽은 여미게 되어 있고 한쪽은 등판처럼 막혀있다. 병원 로고는 등판처럼 되어 있는 부분에 있었다. 앞뒤를 알 수 없다. 나는 로고가 앞쪽인 것 같다고 했고 신랑은 반대였다. 간호사에게 물어보고 오라고 했더니 자신의 말이 맞다고 우긴다. 비대칭 삐삐머리에 앞뒤 반대로 옷을 입은 환자가 될 순 없다고 신랑에게 말했다. 확인 한번 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냐고. 신랑은 다시 간호사에게 옷을 들고 가 확실히 앞뒤를 알려달라고 했다. 역시나 여자의 직감은 진리다.


나의 말이 맞았다는 승리의 쾌감도 잠시 고통이 밀려왔다. 수술실로 데려다 줄 의료진이 왔다. 내 다리를 내가 들어 몸을 옮겨 이동침대에 올라탔다. 누워서 이동하는 순간은 영화의 한 장면이다. 천장의 수많은 전등이 스쳐 지나간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수술실에 들어가는 장면에 자주 나오는 씬이다. 신랑이 같이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 눈앞에는 온통 전등뿐이다. 목소리도 신랑의 미운 뒤통수도 보이지 않는다. 수실실에 다다르자 신랑에게 의료진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면 안 된다고. 기다리라고. 영화랑 다른 게 하나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수술실에 들어갈 때 서로의 손을 꼭 잡거나 사랑한고 말을 하거나, 이따 보자고 하거나. 서로 간의 메시지를 남기는 게 인지상정인데.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그럴 타이밍도 없었다.


마취 주의사항을 들려준다. 그리고 하반신 마취와 전신마취 선택하라고 한다. 하반신 마취는 영화 “어웨이크”같은 기분일 것이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는 기분. 당연히 전신마취다. 안 깨어나면 어떻게 하지의 문제보다 내 몸을 째고 하는 적나라한 수술내용을 내 귀로 눈으로 듣고 봐야 하는 것은 더 큰 공포다. 내 침대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뭔가 해체를 기다리는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수술실에서의 마지막 기억은 산소호흡기를 몇 번 들이마시는 모습이다.


왜 양갈래 머리를 하라고 했는지 이유를 알았다. 수술실 들어가기 직전에 수술 모자를 씌어 준다. 여자들의 긴 머리가 많아서일까? 양갈래 머리를 표준화해서 환자들에게 적용시키는 것 같다. 내 양갈래 머리는 모자 속으로 감춰졌다. 다행이다. 그럼에도 신랑에 대한 나의 서운함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사랑은 상대가 이해되지 않아도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순간의 작은 일은 수많은 좋았던 일들을 휩싸 덮는다. 작은 일은 큰 파도가 되어 나의 마음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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