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2
응급실이다.
응급실은 처음이라 어떻게 가야 하는 건지 몰랐다. '119구급차를 타고 가야 하는 건가?' 이십여분을 달려 근처 대학병원으로 갔다. 부축만으로는 걸을 수 없어 휠체어를 빌렸다. 예약을 하고 온 게 아니라서 1층 응급실이라고 쓰여있는 곳으로 무작정 갔다. 문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표시가 있다. 응급실 반대편에 000과 직원에게 신랑이 응급실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물어봤다. 직원은 처음에 외래를 안내했다. 응급상황이라는 말을 건네자 나를 보더니 자신의 목에 걸린 사원증으로 응급실 문을 열어줬다. 구급차를 타고 오지 않아도 응급실을 갈 수 있다. 일단 직원에게 서류 제출하고 기다렸다.
응급실도 만원이다.
다른 병원에서 찍었던 것들(CD)은 무효다. 다시 엑스레이부터 시티까지 찍었다. 오른쪽 다리는 굽히기가 고통스러웠다. 자꾸 다리를 펴라고 한다. 그럴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질문에 답을 했다. 응급실로 들어와도 상황과 서류를 검토해서 응급상황인지를 판단하는 것 같다. 내가 누워있는 응급실 침대 맞은편으로 직원이 환자(?)에게 가더니 외래로 진료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드디어 의사가 왔다.
젊고 호감형의 외모를 가진 의사였다. 다시 질문은 반복되었다. 어떻게 다쳤냐고. 테니스를 치다가 다쳤다고. 의사는 자신도 테니스를 치고 있다고 했다. 근데 이렇게 다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한다. 똑같은 반응이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의사의 말투는 긍정적이고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좋지 않은 부위가 골절이 되었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괜히 인터넷 검색해 보고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도 잊지 않는다. 전형적이고 형식적인 멘트 같은데. 아픈 사람 입장이 되고 보니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병명을 듣는 순간 불현듯 한 사람이 생각이 났다.
사고가 나기 일주일 전쯤이었다. 복지 쪽에는 주민제보가 종종 들어온다. 위독한 어르신이 있다고 해서 사례관리 선생님과 함께 가정방문을 했다. 주소를 보니 내가 사는 동네다. 내가 사는 곳은 산 쪽에 있는 아파트다. 도로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빌라들이 있다. 내가 사는 동네지만 가 본 적이 없는 낯선 곳처럼 느껴진다. 간신히 주차를 하고 우리 둘은 그 어르신 집으로 향했다. 문이 열려있다. 그 어르신은 침대에 똑바로 누워계셨다. 대퇴골 골절이라고 했다. 어르신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하소연을 쏟아냈다. 우리는 어르신을 진정시키고 이야기를 들었다. 골절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경제적 이유로 집에 있다고 했다. 자녀에게 연락을 취하고 상황을 전달했지만 통화 넘어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냉랭하다. 병원비와 수술비는 우리 쪽에서 알아봐 줄 수 있으니 걱정은 하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어르신의 칭얼대는 목소리가 계속되었다. 그녀의 아픔보다는 칭얼대는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불평불만의 소음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고통을 짐작도 못했다. 타인의 고통은 짐작하기 어렵다. 아니 알 수 없다. 나는 그녀를 위로했지만 사실 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 고통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위로를 할 수 있겠는가.
그 아픔이 비로소 나의 것이 되고 나서야 그녀가 떠올랐다.
얼마나 아팠을까. 육체의 고통에 더해 가족에 대한 서운함도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얼마나 아팠을까.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의 눈물도 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