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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 Dec 22. 2021

각양각색이지만 본질은 같다.

병원에서 #4

병실이다.


일어나라는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나를 흔들었다. 나의 시간은 수술실에서 멈췄는데 벌써 일어나란다. 다리가 펴져있다. 병실은 5인실로 창가 자리다. 수술이 끝나고 바로 무통주사를 맞았다. 나중에 들을 이야기지만 마약성분(?) 주사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수술을   통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소변줄을 달고 다리 하나를 붕대로 감고 계속 누워있어야 했다. 식사가 배달이 되면 먹고 맥박과 체온을 잰다. 병원에 입원한  출산  처음이다. 5인실은 더욱 그렇다. 커튼으로 각자의 공간이 나눠진다. 다리는 아파도 귀는 멀쩡했다. 커튼 너머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은 다른것 같아도 비슷하다. 5인실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어느 노부부

 침대 옆에 밤늦게 노부부가 들어왔다. 할머니가 환자이며 할아버지가 보호자다. 얼굴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귀가  안들 리시는  목청이 컸다.

간병인이 필요한데, 당장   있는 분을 부탁합니다.”

“우리 마누라가 수술을 할 꺼라 빨리 알아봐 주세요.”

할아버지의 말에서 애정이 느껴졌다.

할머님이 옆에서 계속 말씀을 하신다.

“수술 아니고 시술이에요. 간병인은 필요 없어요.”

할아버지는 귀가 안 들리시나 보다.

계속되는 통화에 할머님이 드디어 목소리를 높였다.

“필요 없다고요. 그리고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라고 몇 번을 말해요. 네 참.”

할어버지가 이제야 눈치를 챘다.

“우리 마누라가 필요 없다고 하네요. 필요하면 다시 전화할게요.”

할아버지는 이후에도 시술이어도 간병인이 필요하다고 우기셨다.

할머니는 시술은 간단한 수술이라 금방 퇴원할 거라서 필요 없다고 딱 잘라 말씀하셨다. 왠지 내가 승리한 기분이다.(풋)

밤에 병원에서 자고 가겠다고 할아버지가 할머니께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안된다고. 집에 가서 자라고 하셨다.

“집에 가서 주무세요.”

“에이, 이제 남편을 쫓겨 내는 거야?” 허허허 웃으신다.

여기서 주무시면   자니까. 집에 가서 자고 대신 아침 일지 오면 된다고 조용히 설득하셨다.

할아버지는 아까처럼  그렇게 얼마간 할머니에게 떼를 쓰다 쫒겨(?)나셨다.

할머님이 은근 멋지시다. 할머님의  완승이다.


엄마와 딸

노부부 침대 맞은편에 딸이 엄마의 간병을 들고 있었다. 엄마는 치매다. 가끔 정신이 돌아오시긴 하는데 딸을 못 알아볼 때가 있다. 딸은 그런 엄마를 돌본다. 귀엽다고 예쁜 사람이라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르신은 맛있는 거를 달라고 했다. 딸은 알았다고. 자신이 누군지 맞추면 맛있는 걸 주겠다고 한다. 커튼에 가려있어 나는 그들의 모양새를 볼 순 없었다. 치매 걸린 엄마는 그녀가 누구인지 입을 뗀다. 답이 틀리면 틀리는 대로 맞으면 맞는 대로 딸의 목소리는 정겹다. 딸은 예쁜 자식을 어르듯 치매 걸린 노모를 대했다. 그들의 대화는 사랑스럽고도 슬펐다.


간병인과 어르신

내 침대 맞은편에는 백발의 어르신과 간병인이 있었다. 어르신의 목소리는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다. 사람의 말을 듣고 행동을 하긴 하는데 목소리는 없다. 간병인은 그녀를 깨우고 밥을 먹게 하고 소변과 대변 상태를 체크했다. 저녁에는 자녀들 전화가 오는 모양이었다. 식사를 어떻게 했는지 건강상태는 어떤지 전화기에 대고 보고를 한다. 커튼이 반쯤 제쳐져 있을 때 밥을 먹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휑한 눈은 의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간병인은 그녀에게 밥을 떠 먹여 주었다. 간병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적어도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 할머니에게 밥을 떠 먹이며 하는 말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간병인의 말투에는 답답함과 안쓰러움이 담겨있었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어긋나기 일쑤다. 이럴 때 보면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우린 서로에게 외계인이다. 소통이라는 말의 무게가 무겁게만 느껴지고 생경하기까지 하다. 인간의 소통은 가능은 한 걸까? 인간은 모순 덩이에 불완전한 존재다. 상대의 호의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어도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내 마음을 백 프로 알아줄 이는 온 우주에 없으니까. 어차피 내 맘 나도 모른다. 병실에 있었던 노부부와 치매 걸린 노모와 딸, 간병인과 할머님 모두 서로에게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사람은 그렇게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미련하다. 그러니 상대에게 칼 같은 잣대로 비난하는 건 애당초 옳지 않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에 삐삐머리에 대해 신랑에게 물었다. 이해가지 않아도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면 그냥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그게 배려고 사랑이라고. 미안하다고 한다. 다음부터는 안 그러겠다고. 항상 듣던 말이다. 사람은 잘 안 바뀐다. 나는 신랑이 완전히 바뀌리라 생각지 않는다. 다만 난 내 마음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신랑 입장에서도 조금은 억울할 것 같다. 입원시키고 시중들고 집에 가서 막내 돌보고 이렇게 저렇게 다했는데. 고작 머리 묶는 거 못나게 묶어줬다고 혼나야 하나 싶을 것이다. 그래도 내 감정을 말하지 않으면 서로를 알 수 없다. 말로 해도 소통이 안되는데. 말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내 마음을 전달했고. 용서해주겠다고 했더니. 고맙단다. 이렇게 우리는 이걸 몇십 년 반복해야 해야 할 수도 있다.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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