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방구석 생활
목발을 짚고 생활한 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통증 때문에 누워서 생활하는 일이 전부였다. 삼시세끼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는 일을 제외하면 누워있었다. 앉아서 뭔가를 하고 싶어도 다리와 발이 아파서 오랫동안 앉아 있기 힘들었다. 통증은 많이 줄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일어나지 않는다. 몸에 기력이 생길 때까지 팔을 뻗고 다리에 힘을 주고 스트레칭을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침대 옆에 세워둔 목발을 옆구리에 끼고 화장실로 간다. 화장실의 물기는 아침에는 없어져서 다행이다. 집안에 있다고 해서 백 프로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목발을 짚고 다녀도 중심을 잡지 못해 식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은 조심해야 하는 시기여서 집에서도 주문을 외우곤 한다. 몸이 이러니 사람이 한없이 작아진다. 그 후에는 식탁으로 가서 커피포트를 켠다. 요즘은 커피머신으로 내린 커피도 나에게 사치다. 믹스로 된 원두커피로 대신한다. 생각보다 편하고 맛도 좋다.
커피와 고구마로 아침을 먹으면서 아침 일기를 노션에 쓴다. 미라클 모닝 하면서 몇 달 하다가 망했지만 아침 일기 쓰는 일은 습관이 되었다. 일기는 나에게 리츄얼(의식)이 되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어떤 일에 집중할 것인지 생각해보고 그날의 다짐을 해 본다. 일기를 쓴다고 인생이 단기적으로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는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단단해지는 것 같다. 글 쓰는 일이 그렇다. 식탁에는 내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움직이는 것이 불편하다 보니 물건들이 잔뜩 식탁에 널브러져 있다. 아이패드, 공책 몇 권 필기도구, 로션, 군것질거리, 약봉지 등등이다. 보기가 좋지는 않지만 현재로써는 최선이다.
가방을 여러 개 꺼내 놓았다. 침대 옆에 하나, 거실 책상에 하나, 식탁에 하나. 이 가방들로 물건을 갖고 다닌다. 물건이라고 해 봐야 책이랑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이다. 이제 적응하고 있는 내 모습이 장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그렇다. 먹고 살려니 이렇게라도 해야 하는 게 맞는데… 폼이 안 난다.(풋)
바퀴 달린 의자가 집에 여러 개 있는데 그중 시디즈 의자가 단연 일등이다. 바튀가 거의 롤러스케이트 수준이다. 그 의자를 타고 집 안을 돌아 다닌다. 거의 주방에서 요리(?)를 할 때 사용하지만 거실을 가로질러 베란다에 있는 나의 책상 쪽으로 갈 때로 사용한다. 나는 이제 밥도 하고, 계란 프라이도 할 수 있다.
장보기는 이제 온라인으로 바꿨다. 그 전에도 온라인 주문을 하긴 했지만, 장보기는 주로 회사 끝나고 마트를 이용하는 편이었다. 온라인 주문은 편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며칠 전 고추장을 시켰는데 내가 생각한 크기보다 훨씬 작았다. 인터넷상으로 보는 크기는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또 한 번은 양파를 시켰는데 2.8kg 양파가 2개나 왔다. 주문서를 확인해 보니 내가 잘못 주문한 것이 맞다. 살림을 하는 사람이 야무져야 하는데, 참 안된다.(풋)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적응하면서 진화(?)를 거친다.
나는 진화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푸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