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 일기 #1
월요일 병원을 다녀왔다.
신랑이 회사에서 집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시간은 짧아졌다. 신랑이 회사 출근한 지가 금방 것 같은데. 집에 도착하기까지 이십여분의 여유시간이 있어 부랴부랴 막내 점심을 차렸다. 나도 밥에 물을 말아 한 끼를 때웠다. 신랑이 집에 도착해서야 나갈 채비를 한다. 준비는 별게 없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다시 묶었다. 엑스레이 찍을 때 편한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아파트 주차장은 2층까지 있다. 우리는 대개 지하 2층에 차를 세운다. 나는 목발을 짚고 신랑을 뒤따랐다. 우리 신랑은 좋은 사람이다. 설거지도 해주고 장도 봐주고 병원도 같이 가준다. 좋은 사람이긴 한데 세세한 배려심은 없다. 지하 2층 주차장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출구가 양쪽으로 2곳으로 나뉜다. 한쪽은 평탄한 길이고 다른 한쪽은 경사가 좀 있다. 경사가 있는 길로 가야 한다고 했다. 평상시 같으면 경사가 높든 낮든 상관이 없을 텐데. 지금의 나로서는 영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집에만 있어도 목발로 다니는 일은 쉽지 않다. 아무튼 그렇게 높은 경사는 아니어서 목발을 짚고 올라섰다. 역시나 겁을 먹으면 몸이 알아챈다. 마지막 오르막 구간에서 균형을 잃었다. 다행히 난관이 옆에 있어서 난관을 잡고 올라갔다. 신랑은 핀잔을 준다. 신랑 눈에는 별것도 아닌 경사에 왜 저러나 싶었을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굳이 이쪽에다 차를 세우지 않아도 되는데. 왜 저럴까 싶다. 객관적으로 사실 내가 겁쟁이긴 하다. 신랑의 잣대가 아주 이상한 건 아닌데, 어차피 사람이 객관적인 잣대가 필요할 때가 있고 주관적이 잣대가 필요할 때가 있지 않은가? 부부 사이는 그냥 불법이 아닌 이상 맞춰주면 된다. 쉽지 않은 말인 건 나도 안다. 나도 상대방에게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그래도 다음부터는 경사길은 피해달라고 말해야겠다. 결혼을 하고 수십 년을 같이 살아도 아직도 이렇다.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
병원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입구 쪽에 차를 세워 나를 바로 내려주었다. 입구에는 휠체어들이 즐비하다. 이전에도 다녔던 병원인데 휠체어가 그때도 있었나 싶다. 필요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것은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물건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인간관계의 비극의 시작은 이것 때문이 아닐까? 휠체어에 몸을 싣고 목발도 같이 실었다. 병원이 넓어서 목발을 짚고 다니기엔 힘들다. 엑스레이를 찍으러 1층으로 갔다. 병원에 오면 우리는 여태까지 쓰지 못했던 스타벅스 커피 쿠폰을 쓴다. 선물로 받은 쿠폰들이다. 방사선과에 접수를 하고 대기를 하고 있었다. 신랑은 커피를 사 오겠다고 한다. 나는 병원 볼 일을 다 보고 나중에 커피를 먹자고 했다. 우리 신랑은 고집쟁이다. 진짜 말 안 듣는다. 휠체어에 나를 내버려 두고 휑하니 가버렸다. 결국 필요할 때 신랑은 사라진다. 나만 그렇진 않을 것이다. 결혼한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나는 목발을 짚고 일어서려고 했다. 직원이 나오더니 휠체어에 그대로 나를 태우고 들어갔다. 직원 얼굴은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이십 대의 앳된 얼굴이다. 그 직원은 조심해서 천천히 움직이라고 했다. 휠체어도 붙잡아 준다. 온 세상이 신랑 빼고 다 친절한 것 같다. 여러 포즈로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나를 휠체어에 태워 밖으로 내보내 줬다. 신랑은 커피를 들고 앉아 있다. 병원만 오면 밉상이다. 이제 정형외과로 가야 한다. 신랑이 휠체어를 밀어야 해서 커피는 내가 들었다. 휠체어 발받침대에 목발을 올리고 팔로 목발을 감싼 채로 커피를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흘릴까 봐 신경이 쓰였다. 신랑은 참 눈치가 없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정형외과로 가 접수를 하고 차례를 기다렸다.
의사는 우리가 들어서자 인사를 먼저 한다. 잘 지냈냐고 어떻게 지냈냐고 묻는다. 형식적인 멘트지만 사람 특유의 밝음과 자상함이 묻어난다. 요즘 병원 사람들이 다 친절한 건가 싶다. 의사는 내가 ‘요상한’ 부위를 다쳤다고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다. 수술 자체는 간단하지만 징후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의사는 나쁜 경우의 수는 아직 생각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미리 걱정해 봐야 스트레스만 받을 것이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아직은 병가 상태이다. 휴직서를 내야 해서 진단서를 끊었다. 완치까지는 대략 일 년 정도 걸릴 거라고 한다. 회사에서는 6개월 이상의 진단 서면 된다고 해서 신랑에게 의견을 물었다. 신랑은 6개월로 진단서를 받으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완치 판정을 받고 일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원래 잘 넘어지기도 하고, 현재로서는 많이 불안하다. 신랑은 그때 가서 필요하면 다시 추가로 받으면 된다고 했다. 의사도 그렇게 해도 된다고 해서, 결국 6개월짜리 진단서를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부부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서로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본인이 해야 한다. 그리고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나는 아직 어른이 못되었다. 가끔은 결정하기 힘들고 책임지기 두렵다. 병원을 다녀온 후로 요 며칠 기분이 우울했다.
몸이 안 좋아질 수 있다는 것과 진단서 때문이다. 몸이 좋아지고 안 좋아지고는 이제 신의 영역이다. 그러니 이건 내가 마음을 잘 다스리는 수밖에는 없다. 진단서 문제로 나는 처음에는 신랑 탓을 했다. 두발로 걷기만 하면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건지. 나를 걱정하기는 하는 건지. 야박한 사람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병원 다녀 온 이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신랑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몸이 다 나을 때까지 회사 일은 생각하지 말고 마음 편히 쉬라고.’ 이런 건 드라마 주인공이나 하는 대사인 건가?
‘그래, 이런 말 듣기를 기다리지 말자’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드라마 여주인공도 아닌데. 정신을 차려야 해!!’
지금은 그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임을 깨닫는다. 그 상황에서 나는 나의 생각과 의견을 말하면 되는 거였는데 그러질 못했다. 자꾸 남의 눈치를 본다. 남의 눈치, 신랑 눈치. 어찌 되었든 이 결과에 대해서도 나의 결정이었으니 받아들여야 한다. 수많은 결정들을 매번 완벽하게 할 순 없다. 신랑도 용서하고 나도 용서한다. 우린 모두 실수쟁이들이니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 어렵다.
자신의 생각의 중심을 잡고 지혜로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온 우주의 중심이 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있어야 우주도 있고, 하늘도 있고, 자식도 있고, 부모도 있다. 나를 사랑하고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