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온다.

불안

by 성희

그는 그림자처럼 나를 평생 따라다녔다. 그는 언제든지 그가 원하는 곳, 원하는 시간에 나에게 온다. 나는 그를 피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았다. 아니 그가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외면하려고 부단히 몸부림을 쳤다. 술을 마셨다. 영화를 봤다. 책을 읽었다. 폭식을 했다. 여행을 갔다.


하지만 그는 술잔 속으로, 화면 속으로, 글자 속으로, 음식 속으로, 풍경 속으로 들어와 나의 심장을 짓누른다. 이미 그는 나의 뇌 속에 평생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숨어 있다가 내가 약해지면 어김없이 찾아와 나를 지옥으로 이끈다. 그의 모습이 한번 보이기 시작하면 끝장이다. 더 자주 보이고 더 다양한 모습으로 조금씩 내 정신을 좀 먹는다. 나는 그로 인해 피폐 해진 곤 한다. 그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나는 그를 통제할 수 없다. 내 의지력은 매 순간 시험대에 놓인다.


그는 주로 미래에서 온다. 과거에서 올 때는 그래도 괜찮다. 상대할 수 있다. 미래에서 올 때는 속수무책이다. 그는 나에게 매번 경고를 한다. 내가 한 일들이 잘 못 될 거라고 경고한다. 그는 나에게 겁을 주는 데는 이골이 나 있다. 내가 겁쟁이인지 이미 그는 알고 있다. 컨디션이 괜찮은 날에는 그에게 대들어 보기도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이제 나에게서 떨어지라고. 하지만 그의 말이 대부분이 맞을 거라는 걸 난 알고 있다. 재수가 좋으면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일이 틀어지거나 잘못된다.


내 인생이 나는 완벽해지길 바랬다. 실수를 줄이려고 노력해도 엉뚱한 곳에서 일이 터진다. 변수는 늘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은 통제할 수 없다. 알면서도 통제하려고 발버둥 치는 내가 바보다. 그는 내 약점을 안다.


그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없겠지.

그와 그럭저저럭 지내는 방법을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일이 잘못되면 수습하면 된다. 책임 지면 된다. 최악의 시나리오도 마음속으로 그려 본다. 창피함과 굴욕감도 받아들이기로 한다.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 하지만 너무 자책하지는 말자. 방법을 찾는 거야. 변수는 통제할 수 없지만 반복되는 실수는 막을 수 있어. 죽음을 떠올려. 이건 아무것도 아닐 거야. 지나갈 거야.’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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