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학생
공부방을 하면서 만난 아이
주부가 아이들을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어느 날 지인이 공부방 하는 것을 추천했다. 과외를 했었기 때문에 자신감도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300세대 밖에 되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가 작아서 많은 아이들이 올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경험을 쌓는다 생각하기로 하고 프랜차이즈 수학 공부방을 열었다. 돌아다니며 전단지도 붙였다. 처음에는 사업하는 기분에 설렜다.
일주일 정도 지나고 드디어 1호 학생이 들어왔다. 차분한 말투의 엄마가 상담을 하러 왔다. 나는 학생이 하나도 없어서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있던 중이었다. 그 엄마는 아파트에 공부방이 생겨서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돼서 좋다고 했다.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다음날 그 엄마는 아이와 함께 다시 왔다.
그 아이는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첫눈에 똘똘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한 번은 아이들이랑 방학을 앞두고 자신이 꿈꾸는 것들을 함께 쓴 적이 있다. 1호 그 아이가 갑자기 울었다. 그때 그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왜 우냐고 물으니 꿈을 적을 수 없다는 거다. 다시 물었다. 꿈이 없어도 괜찮으니 먹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써도 된다고 했다. 그 아이는 훌쩍거리며 그런 게 아니고 자신은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데 엄마랑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자신에게 의사가 되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속상해서 울음이 나왔다고 하면서 그 똘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해도 귀엽다. 어른의 눈으로 보면 귀엽기 그지없지만 그때 그 아이의 마음은 진짜 속상했을 것이다.
나는 그 아이 엄마에게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고 야구선수의 꿈을 응원해 주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어차피 꿈은 수십 번 바뀔 테니 말이다. 나의 초등학교 때 꿈은 과학자였다.(풋) 그 아이 엄마는 집에서 의사가 되면 좋겠다고 말하긴 했으나 강요한 적은 없는데 아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에 그 엄마도 놀랐다고 했다.
그다음 날 그 똘똘이는 공부방에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왔다.
"선생님 제 꿈은 전투함을 설계하는 거예요! 엄마가 해도 된대요!"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 거 아니었어?’"
“아하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선수가 될까 했는데, 좀 더 생각해 보니 전투함 설계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요!"
하루 만에 꿈이 바뀌었다.(ㅎㅎ) 나는 그 아이에게 멋진 꿈이라고.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었다. 아이의 얼굴에 꽃이 핀다. 그렇게 그 아이는 오랫동안 나와 함께 했다. 그 아이는 우리 큰 아이와 절친이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거리도 멀어지고 삶의 방향이 달라지다 보니 지금은 각자의 절친들이 있다.
나는 그 아이 엄마와 친구가 되었다.
지금도 만나고 있다.
사람의 인연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살면서 이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