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을 가다.

가출 소녀

by 성희

그 아이(2)

커피숍에서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을 뽑는 날이었다. 남자아이들은 예쁜 친구가 들어왔으면 하고 바랬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매니저라는 사람도 이십 대였으니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녀가 나타났다. 쫙 달라붙는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 한껏 몸매를 드러냈다. 염색머리에 짙은 화장을 했다. 남자아이들은 환호했다. 아르바이트를 지원한 친구들이 몇 명 더 있었지만 그녀가 뽑혔다. 남자아이들은 그녀에게 앞 다투어 마실 것을 대령했다. 반면 여자 아이들은 시큰둥했다.


그녀는 대범하고 유쾌했다. 일도 잘했다. 여자 아이들도 더 이상 그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았다. 낯선 무리의 일원이 되는 일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 아이가 어느 날 자기를 좀 도와 달라고 했다. 집에서 짐을 가져와야 하는데 혼자는 벅차다고 했다. 일을 마치고 우리 둘은 버스를 타고 그 아이 집을 향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이제부터 혼자 사는 거냐고 물어봤다. 그 아이는 그렇다고 했다. 왜 그러냐 고 했더니 독립할 거라고 했다. 나는 그 아이가 자취방을 구한 줄 알았다. 그때까지 그랬다. ‘독립’이란 말을 잘못 이해했다. 그 아이는 평상시에 옷을 잘 입었다. 다른 친구들은 아마 집이 부자인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녀의 동네도 집도 예상 밖이었다.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있었다. 그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난다. 옷장에서 그녀는 옷을 꺼내며 나에게 말을 건넨다. 빨리 짐을 챙기고 나가야 된다고. 아빠가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아이의 얼굴은 긴장되어 보였다. 생각보다 많은 옷을 챙기지는 않았다. 여행 가는 사람이 챙기는 정도였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커피숍 근처로 갔다. 그 아이는 집을 구해 두었다고 했다. 나는 짐을 들고 그 아이 뒤를 따랐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그런 곳이 아니었다. 자취방이 아니라 여관이었다.

‘아 그 독립이 자취가 아니라 가출이었구나.’ 나는 그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아이를 걱정하기보다는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이런 생각만 들었다. ‘내가 그 아이 가출하는 걸 돕다니!’ 머리속은 오만가지 생각으로 미칠것 같았다. '그 아이가 잘못되면 난 경찰서에 불려 가는 건가? 내 인생에 여관이라니. '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난 태연한 척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달아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녀 뒤를 따랐다. 그녀는 익숙해 보였다. 00호 방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에 나는 이 아이가 혹시 나를 유인한 건가. 저 방안에 무서운 사람들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도 했다. 다행히 그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아이의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다. 짐을 풀고 그녀와 나는 슈퍼에서 컵라면을 사 와 먹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에게 왜 ‘가출’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너무나 순수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의 집은 운전사가 있을 정도로 부자였는데 아빠가 사업이 망해 여기까지 왔다고. 그런데 아빠가 이상해졌다고 했다. 사업이 실패하고 빚더미에 앉자 가족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맞기도 몇 번 했다고 그 아이는 말했다. 드라마에서 많이 나오는 이야기다. 싸구려 삼류 소설에 나오는 짜증 나는 이야기이다. 난 또 물었다. 왜 하필 여관이냐고 물었다. 자취방을 구해보는 게 어떻냐고 말이다. 그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보증금이 없다는 거다. 이 곳도 어렵게 얻었다고 했다. 아르바이트해서 일주 일씩 돈을 내기로 했다는 거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또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아하 보증금….’ 마리 앙트와네트가 폭동을 일으킨 백성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냐는 말이 떠오른다.


그 아이는 고맙다며 또 놀러 오라고 했다. 나는 그 이후로 한번 정도 더 갔던 것 같다. 그 아이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굳이 찾아가지 않았다.


그 아이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강력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때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하지. 그 아이를 돕지 않았어야 하는 건지. 말렸어야 하는 건지. 그냥 스쳐 지나간 아이인데 도 여전히 내 기억에 있다.


그 아이를 보고 싶지 않다.

두려워서...

그 아이가 조금은 좋은 선택을 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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