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
―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
오늘은 동광리 무등이왓으로 사람들이 몰려가는 날
3년째 오늘은 정방폭포 수박령(水縛霊)들 고향 가는 날
나도 따라서 육거리 헛묘 지나 무등이왓으로 가는 날
무등 타고 놀던 아이들 대신 지박령(地縛霊)들만 사는 곳
아랫마을 간장리 사람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드는 날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 빈 집터에 조를 함께 심는 날
영귀소리에 불려 나온 조릿대밭 영혼들 술 한 잔 받는 날
오메기떡 만들어서 빚은 고소리술 한 잔 하는 날
그때의 사람들처럼 큰넓궤에서 50일 동안 살다 나온 술
3만 명의 영령들이 함께 맛을 본 고소리술 얻어 마시는 날
잃어버린 마을에 사람들이 찾아와서
해원과 상생과 평화의 바람이 되어 스스로 부는 날
75년 동안 한 곳에서만 붙들려 살았던
수박령(水縛霊)과 지박령(地縛霊)이 만나는 날
정방폭포의 물소리도 바람으로 함께 따라서 오는 날
75년 만에 마련한 정방폭포 4.3위령 공간에 모였던
억울한 영령들이 무등이왓으로 한꺼번에 따라서 몰려오는 날
수박령(水縛霊)의 몸에서는 아직도 너무 많은 비가 내리는 날
안덕을 따라서 대정, 중문, 서귀, 남원, 표선이 따라오는 날
지박령(地縛霊)과 수박령(水縛霊)이 견우직녀처럼 만나는 날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을 만들려면 오늘은 조 모종을 옮겨 심어야만 한다 새벽부터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 지난 5월에 만들어진 정방폭포 4.3위령 공간 때문이다 물의 영혼으로 살았던 수박령들이 불로초 공원으로 한꺼번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정방폭포 수박령들이 동광리 지박령을 만나려고 한꺼번에 귀향하여 얼싸안고 울기 때문이다
동광리 무등이왓 땅살림 코사를 복지회관 실내에서 지낸다
안개비로 가득한 조 밭으로 가서 영귀소리로 원혼들을 불러 모아 모시고 온다
함박 가득 담긴 생메 위의 청댓잎은 더욱 푸르고
156개의 술잔이 더욱 빛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비는 문 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다
조 밭에서 해야 할 땅울림도 안에서 하고 말과 소도 안에서 울고
김매기와 갈치잡이와 멜잡이도 안에서 하고 안개비는 멀뚱하게 쳐다만 본다
사람들은 점심으로 떡과 국수를 먹고 돌아가고
나는 홀로 헛묘와 무등이왓으로 젖으며 걸어간다
헛묘와 충혼묘지 사이에 있던 검문소는 오래전에 떠났다 출입을 통제하던 검문소는 사라졌다 동광육거리는 이제 세월처럼 돌아간다 회전식 로터리로 바뀌어 차들도 돌아간다 나도 따라서 돌아간다 이제는 이곳도 거치지 않고 평화로를 달릴 수 있다 육신을 찾지 못한 헛묘와 영혼을 찾지 못한 충혼묘지의 배롱나무꽃은 짙은 안개비로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니 발자국소리를 듣고 깨어난다 헛묘에서 깨어난 영혼들은 삼밧구석마을로 집을 찾아가고 나는 홀로 무등이왓으로 간다 양잠단지 가는 길가에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 검은 표지석이 있다 무등이왓은 입구부터 조릿대들의 세상이다 강귀봉 우영팟의 최초학살터에는 더덕 덩굴이 가득하다 더덕꽃은 아직 피지 않았고 푸른 조릿대들만 볕뉘라도 건져보려는 듯 뜨물 같은 안개비를 조리질하고 있다 최초 학살터 바로 곁에 광신사숙이 있다 아직도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는 지름길보다 에움길로 간다 말방에(연자방아)터를 지나 잠복학살터로 간다 말방아는 보이지 않고 태양광 패널들만 안개비를 맞고 있다 무너진 돌담과 조릿대들만 길을 비켜준다 아마도 이 오래된 팽나무가 있는 밭에서 마을 이름이 정해졌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 팽나무를 오르며 열매도 따먹고 놀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밭을 매었을 것이다 이 팽나무 그늘에서 자치기 하며 놀았던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 대신 송악덩굴이 올라가 저물도록 내려오질 않는다 별아이비도 뒤늦게 따라서 올라간다 잠복학살터에서 짚더미와 멍석에 쌓여 불태워졌던 사람들은 지금도 뜨거워서 안개비 속에서도 훌떡훌떡 뛰어오르고 있다 뒤늦게라도 불을 끄려는 듯 이곳에는 물탱크가 만들어져 있다 이제는 샘물 대신에 농업용수를 퍼올리고 있다 이 물탱크 뒤쪽에 조밭이 있다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을 파종하고 키우는 오메기밭이 있다 오늘은 오메게밭 가득 안개비가 흘러넘친다 첫해에는 온통 돌밭이었다 오메기를 심을 수 있는 조 밭은 반도 안 되던 밭이 이제는 흙을 돋아서 오메기밭을 두 배로 늘렸다 갈수록 더 늘어날 것만 같다
오래도록 젖으며 홀로 걷다 보니 바람을 조리질하는 무등이왓 조릿대길에 볕뉘가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 제주 4·3 당시 130여 가구가 거주한 무등이왓은 ‘잃어버린 마을’ 122곳 가운데 가장 큰 마을로, 조와 메밀, 콩 등을 재배했다. 1948년 11월 15일 토벌대가 무등이왓 마을을 진입해 주민 10명을 총살했으며, 21일에는 주민 3명을 총살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동광리는 무등이왓(130여 가구)과 조수궤(10여 가구), 시장밧(3 가구), 간장리(10여 가구), 삼밧구석(45 가구) 등 5개 자연마을로 이뤄진 중산간 마을로 4·3 당시 최소한 172명이 희생됐으며, 인근에는 주민들이 피신 생활을 했던 큰넓궤가 있다.
====== 1차 수정 20230710 ======
―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
오늘은 동광리 무등이왓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가는 날
3년째 오늘은 정방폭포 수박령(水縛霊)들 고향 가는 날
나도 따라서 육거리 헛묘를 지나 무등이왓으로 가는 날
무등 타고 놀던 아이들 대신 지박령(地縛霊)들만 사는 곳
아랫마을 간장리 사람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드는 날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 빈 집터에 조를 함께 심는 날
영귀소리에 불려 나온 조릿대밭 영혼들 술 한 잔 받는 날
조로 오메기떡을 만들어서 빚은 고소리술 한 잔 하는 날
그때의 사람들처럼 큰넓궤에서 50일 동안 살다 나온 술
3만 명의 영령들이 함께 맛을 본 고소리술 얻어 마시는 날
잃어버린 마을에 사람들이 찾아와서
해원과 상생과 평화의 바람이 되어 스스로 부는 날
75년 동안 한 곳에서만 붙들려 살았던
수박령(水縛霊)과 지박령(地縛霊)이 만나는 날
정방폭포의 물소리도 바람으로 함께 따라서 오는 날
그러나 아, 오늘은 너무 많은 비와 안개가 함께 오는 날
아직도 젖어있는 정방폭포의 영령들이 한꺼번에 오는 날
75년 만에 겨우 마련한 정방폭포 4.3위령 공간에 모였던
억울한 영령들이 무등이왓으로 한꺼번에 따라서 몰려오는 날
수박령(水縛霊)의 몸에서는 아직도 너무 많은 비가 내리는 날
안덕을 따라서 대정, 중문, 서귀, 남원, 표선이 따라오는 날
지박령(地縛霊)과 수박령(水縛霊)이 견우직녀처럼 만나는 날
무등이왓에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을 만들려면 오늘은 조 모종을 옮겨 심어야만 한다 새벽부터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 올해 5월에 만들어진 정방폭포 4.3위령 공간 때문이다 물의 영혼으로 살았던 수박령들이 불로초 공원으로 한꺼번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모인 김에 오늘은 모두 이곳으로 따라왔기 때문이다 정방폭포 수박령들이 동광리 지박령을 만나려고 한꺼번에 귀향하여 얼싸안고 울기 때문이다
동광리 무등이왓 땅살림 코사를 복지회관 실내에서 지낸다
안개비로 가득한 조 밭으로 가서 영귀소리로 원혼들을 불러 모아 모시고 온다
함박 가득 담긴 생메 위의 청댓잎은 더욱 푸르고
156개의 술잔이 더욱 빛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비는 문 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다
조 밭에서 해야 할 땅울림도 안에서 하고 말과 소도 안에서 울고
김매기와 갈치잡이와 멜잡이도 안에서 하고 안개비는 멀뚱하게 쳐다만 본다
덕분에 나는 큰넓궤와 단추공장에서 생존하신 홍춘호 할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들은 점심으로 떡과 국수를 먹고 돌아가고
나는 홀로 헛묘와 무등이왓으로 젖으며 걸어간다
헛묘와 충혼묘지 사이에 있던 검문소는 오래전에 떠났다 출입을 통제하던 검문소는 사라졌다 동광육거리는 이제 세월처럼 돌아간다 회전식 로터리로 바뀌어 차들도 돌아간다 나도 따라서 돌아간다 이제는 이곳도 거치지 않고 평화로를 달릴 수 있다 육신을 찾지 못한 헛묘와 영혼을 찾지 못한 충혼묘지의 배롱나무꽃은 짙은 안개비로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니 발자국소리를 듣고 깨어난다 헛묘에서 깨어난 영혼들은 삼밧구석마을로 집을 찾아가고 나는 홀로 무등이왓으로 간다 양잠단지 가는 길가에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 검은 표지석이 있다 무등이왓은 입구부터 온통 조릿대들의 세상이다 강귀봉 우영팟의 최초학살터에는 더덕 덩굴이 가득하다 더덕꽃은 아직 피지 않았고 푸른 조릿대들만 볕뉘라도 건져보려는 듯 뜨물 같은 안개비를 조리질하고 있다 최초 학살터 바로 곁에 광신사숙이 있다 아직도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는 지름길보다 에움길로 간다 말방에(연자방아)터를 지나 잠복학살터로 간다 말방아는 보이지 않고 태양광패널들만 안개비를 맞고 있다 무너진 돌담과 조릿대들만 길을 비켜준다 아마도 이 오래된 팽나무가 있는 밭에서 마을 이름이 정해졌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 팽나무를 오르며 열매도 따먹고 놀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밭을 매었을 것이다 이 팽나무 그늘에서 자치기 하며 놀았던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 대신 송악덩굴이 올라가 저물도록 내려오질 않는다 별아이비도 뒤늦게 따라서 올라간다 잠복학살터에서 짚더미와 멍석에 쌓여 불태워졌던 사람들은 지금도 뜨거워서 안개비 속에서도 훌떡훌떡 뛰어오르고 있다 뒤늦게라도 불을 끄려는 듯 이곳에는 물탱크가 만들어져 있다 이제는 샘물 대신에 농업용수를 퍼올리고 있다 이 물탱크 뒤쪽에 바로 조밭이 있다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을 파종하고 키우는 오메기밭이 있다 오늘은 오메게밭 가득 안개비가 흘러넘친다 첫해에는 온통 돌밭이었다 오메기를 심을 수 있는 조 밭은 반도 안 되던 밭이 이제는 흙을 돋아서 오메기밭을 두 배로 늘렸다 갈수록 늘어날 더 것만 같다
오래도록 젖으며 홀로 걷다 보니 바람을 조리질하는 무등이왓 조릿대길에 볕뉘가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 제주 4·3 당시 130여 가구가 거주한 무등이왓은 ‘잃어버린 마을’ 122곳 가운데 가장 큰 마을로, 조와 메밀, 콩 등을 재배했다. 1948년 11월 15일 토벌대가 무등이왓 마을을 진입해 주민 10명을 총살했으며, 21일에는 주민 3명을 총살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동광리는 무등이왓(130여 가구)과 조수궤(10여 가구), 시장밧(3 가구), 간장리(10여 가구), 삼 밧 구석(45 가구) 등 5개 자연마을로 이뤄진 중산간 마을로 4·3 당시 최소한 172명이 희생됐으며, 인근에는 주민들이 피신 생활을 했던 큰넓궤가 있다.
[포토]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에서 보내는 선물 < 문화/예술 < 기사본문 - 제주투데이 (ijejutoday.com)
등록 2022-06-30 16:16
허호준 기자 사진
4·3 희생자 넋 위로하는 서귀포시 무등이왓서 행사
제주민예총과 동광리 주민들이 지난해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에서 조농사를 짓기에 앞서 땅살림 코사(고사)를 지내고 있다. 제주민예총 제공
제주4·3 당시 초토화 돼 지금은 주민이 살지 않는 이른바 ‘잃어버린 마을’인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무등이왓에서 눈물의 위령주를 빚는다. 제주민예총(이사장 김동현)은 ‘2022 예술로 제주 탐닉’ 프로그램의 하나로 무등이왓에서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 을 기획했다고 30일 밝혔다. 제주민예총은 지난해 처음으로 무등이왓에서 직접 조를 심어 키워 술을 빚었다. 농사를 해 본 적이 없는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4·3 때 불타 없어진 집터에 씨를 뿌리고 검질(김)을 매는 작업 끝에 조를 수확해 동광리 주민들과 민예총이 함께 지난 3월 제주4·3평화재단에 추념식 때 위령주로 사용하도록 전달했다.
제주민예총과 동광리 주민들이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에서 재배해 빚은 고소리술로 4·3 당시 피신처였던 큰넓궤에 술들이기를 하고 있다. 제주민예총 제공
올해의 조 농사는 다음달 16일 땅살림코사(고사)와 파종을 시작으로 검질매기, 조와 당신을 위한 작은음악회(10월7일), 추수, 고소리술 만들기(11월11일), 큰넓궤 술들이기(12월3일) 등 12월까지 동광리 무등이왓 일대에서 이뤄진다. 집터에 조를 파종하고 재배해 거둬들이고, 술을 빚는 과정을 제주민예총과 이 마을 주민들이 함께 한다.
제주4·3 당시 130여가구가 거주한 무등이왓은 ‘잃어버린 마을’ 122곳 가운데 가장 큰 마을로, 조와 메밀, 콩 등을 재배했다. 1948년 11월15일 토벌대가 무등이왓 마을을 진입해 주민 10명을 총살했으며, 21일에는 주민 3명을 총살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동광리는 무등이왓(130여가구)과 조수궤(10여가구), 사장밧(3가구), 간장리(10여가구), 삼밧구석(45가구) 등 5개 자연마을로 이뤄진 중산간 마을로 4·3 당시 최소한 172명이 희생됐으며, 인근에는 주민들이 피신 생활을 했던 큰넓궤가 있다.
제주민예총과 동광리 주민들이 지난해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에서 재배한 조를 수확하고 있다. 제주민예총 제공
김동현 이사장은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은 아픈 역사의 사실을 과거의 일로 놓아두지 않고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희망을 만들어가기 위한 예술행동이자 공동체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참가를 원하면 제주민예총(064-758-0331)에 문의하면 된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https://www.hani.co.kr/arti/area/jeju/1049151.html
https://blog.naver.com/tkfkd72/223142145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