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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l 14. 2023

정방폭포 9

― 용암수형(熔岩樹型)이 있는 풍경




정방폭포 9

― 용암수형(熔岩樹型)이 있는 풍경



 

오늘도 야간근무 마치고 동광리로 간다

복지회관 4.3길 센터에 자귀꽃이 환하다

마당 앞에는 용암수형(熔岩樹型)이 있다

멍석말이처럼 생긴 굴에 폭포소리가 산다

용암이 태워버린 나무의 아우성소리 산다

뻥 뚫린, 긴 동굴 속으로 산방산이 보인다

잠복 학살터의 비명소리도 용암처럼 들린다


(1948년 12월 12일 토벌대에 의해 죽은 사람들을 가족들이 수습하러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잠복해 있던 토벌대는 가족의 시신을 수습하러 온 19명에게, 전날 죽은 가족의 시신 위에 누우라고 한 뒤, 멍석과 지푸라기를 덮고 석유를 뿌려서 생화장을 했다고 한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불태워서 죽였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죽창으로 찔러도 죽지 않으니 멍석말이를 해서 불을 붙였다고 한다 그날의 비명소리와 울부짖음이 오늘도 가슴속에 용암수형으로 남아있다)


암수 소철꽃이 하늘을 향해 나란히 피어나고 있다

고구마도 뿌리를 내리고 콩잎 가족도 많이 늘었다

생강보도 훨씬 커버린 양하가 담장아래 모여있다

길가에 유독 봉숭아꽃들이 많고 해바라기도 많다 

더덕 많은 밭담에 능소화꽃이 호박꽃에 떨어진다


90년 이상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침을 뽑고 있다

팽나무 아래 연자방아 곁에서 말처럼 일을 한다

할머니유모차 세워두고 풀을 뽑기 시작한다

이만칠천 원 받는데 삼만 원 받으면 원도 없단다

그래도 이렇게 만나서 함께 이야기하니 좋단다

일을 하지 않는 할머니 한 분도 이야기를 보탠다

연자방아 아랫돌은 큰 물그릇 되어 하늘을 품는다

죽은 사람들은 말이 없고 산 사람들은 말로 산다


동광분교 있던 자리에 카페가 들어서고 운동장에는

잔디보다도 토끼풀꽃과 질경이꽃들이 더 많다

당시 작은 마을이었던 간장리는 중심이 되었고

육거리부터 신화역사로를 따라 건물이 늘어난다

크고 멋진 카페들과 고급주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들어가 보았던 무로이 카페는 그야말로 천국이다

무등이왓에도 10년 전에 거대한 교회가 들어섰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훈련하는 꿈의 교회였다

세상은 언제나 머물지 않고 중심이 바뀔 뿐이다

삼밧구석은 유난히 목장들이 많고 트랙터가 많다

삼굿이 있었던 나의 어린 시절이 소환되어 환하다

깨꽃이 서둘러 피고 더덕꽃이 서둘러서 피어난다

빈 밭에는 트랙터가 비료를 뿌리고 로터리를 친다

이 동네는 아침부터 트랙터들이 무섭게 달린다


오늘 나의 목적지는 임씨올레와 위령비 부근이다

헛묘를 만들었던 임문숙 씨 집도 보이지 않는다

올레는 이미 온갖 풀들이 점령하여 곶자왈이 되었다

위령비 왼쪽에는 수국과 산수국과 팽나무가 있고

위령비 오른쪽에는 잎과 열매가 풍성한 동백나무가 있다

그 동백나무 가슴에는 사연 많은 리본들이 많이 산다

동백꽃들은 다 지고 동백 열매들은 아직 익지 않았다


나는 오래도록 불구가 되어버린 팽나무를 끌어안고 운다

어느 해 큰 바람과 벼락에 밑동까지 쩍 벌어져서 쓰러졌다

490년을 살았다는 팽나무는 풍치목에서 상징목이 되었다

490년을 산 밑동과 올봄에 태어난 가지가 함께 사는 마을

삼분의 이쯤 없어지고 삼분의 일만 살아남은 팽나무 한 동네

벼락의 큰 칼로 수직으로 밑동까지 잘려버린 나무는 처음 본다

상가리 천년폭낭과 또 다른 모습, 나의 마음까지 쩍 벌어진다

나이테까지 속을 다 잃고도 껍질의 힘으로 자식을 낳아 기른다

우리들은 속을 다 내어주고라도 끝까지 살아남아야만 한다

껍데기라도 살아남아서 끝끝내 마을을 재건하고 꽃을 피운다

시멘트로 잃어버린 속을 채우고 쇠기둥을 지팡이 삼아서라도

우리들은 끝까지 땅과 하늘을 경작하며 푸르게 살아야만 한다

군용 트럭보다 무서운 트랙터가 달려도 나뭇잎은 호미질을 한다  


속이 훤히 다 타버린 용암수형들이 마을마다 정자나무로 서 있다

오래된 나무에 귀를 대어 보면 정방폭포 소리가 와글와글 하다

풍치목으로 살지 못하고 반신불수가 되어서라도 꼭 살아야 한다

용암수형의 뻥 뚫린 가슴속으로 하늘의 정방폭포 소리가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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