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방폭포 31
― 사랑할 시간이 확 줄었다
오랜만에 세상에 나갔는데
내가 많이 늙었구나
나를 찍은 사진을 보니
얼굴에 검버섯이 가득하고
백발이 성성하게 늙었구나
지상의 숟가락 하나 읽는데
처음부터 아버지가 부르는구나
아버지의 성기도 무덤도 보이고
내가 곧 묻혀야 할 유택도 보이는구나
아니, 나는 아직도 집을 정하지 못했구나
출근하려고 문을 열어보니 열리지 않는다
물론 시동도 걸리지 않는다
배터리가 바닥이 나서 죽었다
에너지를 쓸데없는 곳에 너무 많이 썼구나
나에게는 이제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구나
출동서비스를 불러서 충전하여 출근을 한다
출근을 하면서 생각하니 나의 모습이 보인다
밤새 꺼서 재워야 할 불을 켜 놓은 것일까
차를 세우고 사무실에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불이 켜져 있다고 한다 돌아가보니
브레이크 등이 켜져 있다 브레이크가 주범
이었구나 브레이크 고장이 더욱 문제로구나
나는 이제 수시로 내 몸의 불도 꺼야만 하고
브레이크도 수시로 점검을 해야만 하겠구나
부실한 몸 잘 끌고 가다가 멈추어야 할 때를
잘 알아서 잘 멈추는 것이 이제는 마지막 소망이구나
오늘도 정방폭포는 젊고 힘차게 살아가는데
나의 몸은 이제 예전같이 않고 바닥이 보이는구나
나도 언제나 새롭게 태어나는 저 정방폭포처럼
하늘에서 비님이 오시며 더욱 젊어지는 정방폭포처럼
하늘에서 그대가 오시면 나도 더욱 젊어질 것만 같은데
하늘에는 빈 비행기만 돌아올 뿐 그대는 보이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