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013

― 이어도가 보이는 풍경

서귀포 013

― 이어도가 보이는 풍경

한 삼십 년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 보인다

한 삼십 년 같은 사람을 바라보면 보인다

마라도 너머에 있다는 이어도가 잘 보인다

이어도에 살고 있다는 당신의 마음도 보인다

푸른 바다와 산, 같은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보니

그 풍경 속으로 걸어갔던 시간의 발자국이 보이고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도 풍경으로 보인다

마라도와 가파도와 송악산과 산방산이 나를 감싼다

키 큰 워싱턴야자수를 카나리아야자수들이 감싸고

배롱나무의 분홍빛꽃과 하얀색꽃을 나비가 감싼다

호랑나비는 나비의 등 위의 시간을 접었다가 편다

가을로 막 접어드는 하늘의 시간을 구름이 감싼다

같은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

같은 사람을 오래도록 바라보면 말하지 않아도 다 보인다

같은 세상을 오래도록 살아보면 어디로 가는지 다 보인다

같은 꿈속을 오래도록 걸어가면 어디가 길인지 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