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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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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an 29. 2024

너에게 나를 보낸다 (11-20)




너에게 나를 보낸다 (11-20)




11. 모래 한 알의 꿈




작은 모래알들이 모여 물과 함께 화양연화를 이루었다

우리들의 작은 꿈들이 모여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었다

모래 한 알의 꿈들이 모여 더욱 의미 있게 바꾸어 간다


째깍째깍째깍 시계소리가 들린다. 꿀렁꿀렁꿀렁 물소리도 들린다. 바닷가 모래밭에서 빈 조개가 물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집주인은 집을 비우고 어디로 떠나갔을까? 빈 물소리만 빈 시계를 들여다본다. 껍데기의 삶과 알맹이의 삶을 생각한다. 하늘을 보니, 하늘 바다에 벌써 초승달 하나, 별을 따라서 소리도 없이 노를 젓는다.


나는 수평선으로 누워 길게 하늘을 들이마신다. 하늘 바다가 잠시 출렁거린다. 초승달 배도 잠시 흔들린다. 빛나는 별빛도 잠시 눈을 껌벅거린다. 내 가슴속으로 들어온 하늘이 물소리를 따라간다. 내 가슴속에서도 시계소리 들린다. 시간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하늘의 소식을 내 가슴속에 전해주고 나오는 하늘은 다시 초승달을 밀어준다. 내 가슴속에서 하늘의 소식을 전해 들은 물소리는 내 몸 구석구석 골짜기로 떠난다. 그늘이 깊은 골짜기에 쪼그려 앉아 울고 있는 한 아이가 있다.


모래알 하나에  온 세상이 있다.  나는 모래알 하나가 된다. 너도 모래알 하나가 된다. 우리는 그렇게 온 세상이 된다. 그런 세상들이 반짝이고 있다. 그런 세상들이 젖어서도 빛나고 있다. 어쩌면 나의 오랜 꿈이 기어이 이루어질 것만 같다. 나의 먼 태아의 꿈이 드디어 인연을 만나 꽃을 피울 것만 같다. 나의 태아가 어머니 배 바깥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뇌가 생기고 심장이 생기고 손과 발이 생기더니 뇌 속에서 더욱 바빠지는 뉴런과 시냅스가 보인다.  


밤새 잠이 오지 않는다. 밤새 반월산이 떠오르고 낮에도 종석산이 나를 품어주고 있다. 어쩌면 1만 3천 평의 아름다움 숲이 생길 것만 같다. 전망이 아주 좋은 아름다운 숲에 이어도공화국 무료쉼터와 명상센터를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래도록 꿈꾸어온 꿈이 이루어질 것만 같다.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꿈꾸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꿈의 동반자를 만나고 꿈의 동지들을 만나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말 것이다. 꿈은 이루어지라고 있는 것이다. 꿈은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나는 오래전에 이런 글을 썼고 늘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꿈이 꿈처럼 조금은 이루어질 것 같다.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나는 아름다운 산을 하나 가꾸고 싶다
그 산에 나무를 심고 나무를 가꾸며
나무처럼 살고 싶다
그 숲 속에 조촐한 집을 하나 짓고 싶다 
삶에 지친 영혼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고 싶다
그 쉼터에는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가끔 찾아오면 좋겠다
절망이 너무 깊어서
스스로 죽고 싶은 사람들이 
아주 가끔 찾아오면 좋겠다 
아무런 부담 없이 
누구라도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그러면 나는 그들과 함께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들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세상에 대하여
너무나 분노한 사람들과 
한 때의 실수 때문에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나는 그들과 함께
그들의 나무를 심어주고 싶다
산에 나무를 함께 심으면서
그들의 아픈 가슴에도 
또 다른 희망의 나무를 심고
사랑의 씨앗을 뿌려주고 싶다 

산 혹은 자연의 큰 거울 앞에서
희망을 되찾은 그들이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나는
그들과 내가 함께 심었던
그들의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안부 편지와 함께 가끔 보내주고 싶다
세상으로 돌아간 그들은
언제라도
자신의 자라나는 나무를
보기 위하여 올 수 있으면 좋겠다
직접 올 수 없더라도
늘 가슴속에서 함께 자라나는
자신의 나무 때문에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가 끝끝내
함께 가야 할 길
겨울이 깊을수록
더 잘 보이는 길
실패한 사람을
함께 이끌어주고
넘어진 사람을
함께 일으켜 세워주고
억울한 사람의 억울함을
우리들이 함께 풀어주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나는 정말 좋겠다



나의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산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산을 갖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하여 나는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려고 한다. 먼 훗날 또 다른 내가 나타나서 아름다운 산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상을 꼭 만들어주길 기도한다. 나는 그 아름다운 세상의 작은 씨앗이라도 되고 싶다. 요즘 내가 만들고 있는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는 그 작은 씨앗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혹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각자의 처지에 맞도록 작지만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 연합하는 방법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씨앗들이 모여 아름다운 숲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종의 <무료쉼터연합>을 만들면 어떨까 혼자 생각해 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서두르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 나는 다만 내가 가진 아름다운 씨앗을 잘 심고 아름답게 가꾸고 싶을 뿐이다. 먼 훗날 그 아름다운 씨앗이 아름다운 숲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에 나는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12. 이어도공화국을 아시나요



꿈의 섬 이어도에서 부활하여

30년 넘게 꿈속에서 살았다

나는 이제 

30년 넘게 꿈꿔왔던 꿈을

이 땅 위에 만들기 시작한다  

   

나는 30년 넘게 이어도에서 살았다. 붉은여우에게 물려 죽은 나는, 대부도 황금산 아래서 태어난 붉은여우에게 물려가던 나는, 인천 월미도 앞바다에 던져졌던 나는, 흐르고 흘러서 내려가다 수중 바위섬에 걸려 겨우 다시 살아난 나는, 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 철탑을 붙잡고 겨우 기어서 올라왔던 나는, 그런 나는, 꿈속에서 보았던 이어도를, 이 지상으로 옮겨오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이어도공화국을 30년 넘게 준비하였다. 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준비하였다.      


세상 사람들과 나의 속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나의 속도에 맞는 세상을 만들기 시작한다.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의미 있는 세상 하나를 만들기 시작한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꾼다. 우리들의 삶과 죽음을 연결할 수 있는 것은 나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살아서 자신의 나무를 심고 가꿀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살아서 함께 자란 나무가 죽어서는 한 몸이 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람이 죽으면 나무로 다시 부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삶과 죽음의 중간쯤에 아름다운 세상 하나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사람들과 죽어있는 사람들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부탄이라는 나라를 좀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탄이라는 나라는 국민총생산지수보다 국민총행복지수를 먼저 생각하는 나라이다. 나는 생각한다. 성공한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부탄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이고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BS세계테마기행’ 은둔의 땅 부탄 1~4부를 유튜브로 다시 한번 본다. 동국대학교 양승규 교수를 따라가며 부탄불교의 둥첸 소리를 듣는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지상낙원을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화면에 나오는 동국대학교라는 글자가 자꾸만 나의 가슴을 찌른다. 동국대학교 대학원 중퇴는 내 꿈의 좌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중퇴’라는 의미는 자신의 꿈을 끝까지 밀고가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회한과 좌절과 절망이 묻어있는 말이어서 더욱 슬픈 말일 것이다. 아무리 긴 기도문이 들어있는 기도 통 마니차를 오래도록 돌려도 맺혀있는 마음은 잘 풀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꿈꾸는 아름다운 나라는, 행복이 국가 정책인 은둔의 나라 부탄이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한다. 행복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행복은 어쩌면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꿈과 나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린 붉은여우를 잊을 수 없다. 그날 이후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그 붉은여우를 나는 죽일 수가 없다. 바바리코트 허리띠에 매달려 허공에서 돌고 있는 그 붉은여우를 나는 어쩔 수가 없다. 그 붉은여우를 내가 안고 바바리코트 허리띠를 잘라주면 그 붉은여우는 틀림없이 그 칼로 나를 찔러 죽일 것이다. 바로 그 외상후스트레스는 나를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찾아온 배영옥 시인의 사진이 바로 그 붉은여우를 닮았다. 나의 사촌 옥심이 누나도 닮았지만 그 붉은여우를 너무 많이 닮았다.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배영옥 시인이 바로 그녀를 닮았다. 어쩌면 나에게 행복의 조건을 알려주기 위해서 찾아왔는지 모른다. 행복할 자격은 용서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만 찾아올 것이다. 감사할 줄 아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행복은 찾아올 것이다.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행복은 찾아올 것이다. 그것을 가슴 깊이 깨닫게 하려고 배영옥 시인은 나를 찾아온 것이라 나는 믿는다.      


부탄 기행의 마지막은 굴렁쇠를 굴리며 환하게 웃는 어린 목동을 보여준다. 나의 어린 시절과 참 많이 닮아있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어린 목동이 나를 다시 어린 나로 돌아가게 만든다. 높은 산에서 야크를 기르며 살아가는 어린 목동은 가난해도 환하게 웃을 줄 안다. 야크 젖을 짜는 일도, 야크 젖을 2시간 이상 저어서 고체 버터를 만드는 일도, 버터를 만들고 남은 젖을 끓여서 치즈를 만드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어렵게 만든 버터는 야크 주인인 ‘종’의 소유가 되고 나머지 치즈만이 목동의 소유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동은 불행하지 않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 너무나 가난했지만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았다. 나는 산에서 토끼를 방목하여 기르는 것이 꿈이었다. 겨울이면 산에서 산토끼를 잡아서 시장에 내다 팔았던 나는 산에 울타리를 치고 토끼를 대량으로 풀어서 방목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때는 산에서 산토끼를 잡고 고라니를 잡는 것이 불법인지도 몰랐고 또한 동물학대라는 인식도 갖지 못하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어리석은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불행하지만은 않았다.     


꽃은 큰 기둥에서 피지 않고 여린 가지에서 피어난다. 꽃들은 해마다 새로 뻗어 나온 가지 끝에서 피어난다. 하지만,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기둥의 역할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예수를 팔아서 예수를 영원히 살린 유다처럼, 나를 죽여서 나를 새롭게 다시 살린 붉은여우처럼, 가지를 낳아준 기둥은 기둥의 할 일이 있듯이, 나의 아픈 상처와 흉터들도, 모두가 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소중하고 꼭 필요한 은혜인 것이다.      


제주도에는 신구간(新舊間)이라는 것이 있다. 보통 제주도 사람들의 이사하는 기간을 말한다. 제주도에서는 지금도 육지와 달리 일정한 기간에 이사를 한다.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 사이로 보통 일주일이 된다. 이 기간에 이사나 집수리 등 여러 가지 금지된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 기간은 이른바 신구세관(新舊歲官)이 교대하는 과도기간으로 지상의 모든 신격(神格)이 천상에 올라가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아 내려오기까지의 공백 기간이다. 따라서 이 기간에는 지상에 신령이 없는 것으로 관념 되고 있다. 그러기에 이 기간에는 이사나 집수리를 비롯한 평소에 금기되었던 일들을 하여도 아무런 탈이 없다고 한다. 이 기간에 하는 일은 이사를 비롯하여 부엌·문·변소, 외양간 고치기, 집 중창(집의 일부분을 고침)·울타리 안에서의 흙 파는 일, 울타리 돌담 고침, 나무 베기, 묘소 수축 등 다양하다. 만일 아무 때나 이러한 일을 하면 동티가 나서 화를 입는다고 한다. 신구간은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마음 놓고 하는 기간인데, 근래 도시지역에서는 이사하는 일이 강조되어 주로 이사하는 기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셋방살이하는 사람들은 이 기간에 일제히 이사를 하므로 거리마다 가고 오는 이삿짐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신구간에 이어도공화국으로 이사 갈 준비를 한다. 어쩌면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행복을 찾아서 망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어도공화국 헌법 전문을 읽으며 준비를 한다.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 공동체, 아름다운 나라 [이어도공화국]은 지금까지 배우고 익혀온 모든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몸과 새로운 마음으로 부활하여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와서, 우리 모두가 최대한 행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공동체, 세상에서 가장 사랑이 많이 흘러넘치는 이상향(낙원, 유토피아, 파라다이스) 건설과 실천을 목표로, 아름다운 나라 [이어도공화국]을 건국하고 이어도공화국 헌법을 1990년 1월 1일에 제정하고 2020년 1월 1일에 제3차 개정하여 공포한다.’



13. 연어의 종착역에서 다시 만나자


 

고향집 바로 앞에

연어의 종착역 표지석이 있다

나는 연어가 되어

참으로 먼 길을 거슬러 돌아왔다

나도 이제 너를 만나

붉은 알을 낳아야만 한다  

   

시집 한 권이 왔다. 검은 관 하나가 도착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서 나에게 왔다. 생전에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 왔다.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왔다.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왔음이 분명하다. 아직은 따뜻한 어느 시인이 왔다. 비석 같은 시집이 왔다. 나를 갑자기 찾아온 사람, 처음으로 나를 만나려고 온 사람,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온 사람, 죽어서 겨우 인연이 된 사람, 죽음의 길을 가다가 다시 살아온 사람, 나는 이제야 비로소 시인을 만난다. 운명처럼 만난 그 시인의 따뜻한 숨결을 통하여 그와 나를 함께 읽기 시작한다.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는 그는 나에게 ‘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며 쿠바도 보여주고 애인도 보여준다. ‘뭇별이 총총’한 밤하늘까지 모두 보여준다. 나는 그가 보여주는 것들을 차례대로 보면서 나 자신을 다시 한번 깊이 뒤돌아본다. 그리고 나는 그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시인의 길을 찾아서 새롭게 출발한다. 그의 종착역은 이제 나의 출발역이 된다.     


나는 오래전부터 달의 뒷면을 보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뒷면이 늘 궁금했다. 그리하여 나는 산문(山門)을 드나들 듯 달문을 드나들고 싶었다. 내가 그런 달문 이야기를 하니 존경하는 김종순 박사님께서 나에게 달문moon을 열어주셨다. 직접 작명을 하셨다는 <달문moon>이란 이름을 나에게 주셨다. 명상카페 이름으로 쓰라며 하사 하셨다. 내가 늘 사용하던 ‘달문’ 옆에 ‘moon’이 나란히 앉으니 의미가 더 깊어지고 확장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달문moon>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다.     


달문moon은 ‘달’ 하나를 의미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달은 달이고 문은 moon을 한글로 표현한 말이고 moon 또한 우리말로는 달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달문moon’은 그냥 ‘달’이라고만 써도 된다. 하지만 나는 그 의미를 좀 더 확장하고 싶다. 그리하여 나는 달문을 한자로 바꾸어서 생각해 본다.     


‘달’이라는 글자는 한자로 여러 얼굴이 있다. ‘달’을 생각하면 나는 개인적으로 달마대사와 ‘도달하다’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達’이라는 글자의 뜻은 통달하다, 통하다, 이르다, 달하다, 전하다, 통용되다, 현달하다, 이루다, 갖추다, 대범하다, 정하다, 능숙하다, 드러나다, 드러내다, 마땅하다, 방자하다, 촐싹거리는 모양, 어린양, 등의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문’이라는 글자는 한자로 더 여러 얼굴이 있다. ‘문’을 생각하면 나는 개인적으로 門, 文, 問, 聞, 紋, 蚊, 吻, 등이 먼저 떠오른다. 문과 글과 입과 귀와 문양과 모기와 입술이 먼저 떠오른다. 사람마다 그 의미는 각자의 처지에 따라서 많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moon’이라는 글자는 나에게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상형문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어쩐지 문과 달을 형상해 놓은 듯,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세상의 모든 문자는 직선과 곡선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도 좋아하지 않고 영어도 좋아하지 않지만, ‘moon’이라는 글자만은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달문’은 달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될 수도 있고 달이 드나드는 문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날마다 월라봉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본다. 사람들은 날마다 다른 모양의 달을 보지만 달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날마다 보고 있는 달의 모습은 어쩌면 달의 문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달이 조금씩 더 많이 열었다가 날마다 다시 조금씩 닫고 있는 달의 문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떠오르는 달을 보고 월문(月門)으로 읽지 않고 달문(達門)으로 읽거나 달문(達文)으로 읽는다. 그리고 나는 보름달보다 반달을 더 특별하게 생각한다. 내 고향 뒷산 이름이 반월산이다. 그 반월산 아래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나란히 누워계신다. 나도 어쩌면 언젠가는 그 곁에 누워 긴 잠을 잘 것이다. 나도 그렇게 반달 아래서 반월산이 될 것이다.  

   

나는 이제 문 앞에 서 있다. 나는 지금 글 앞에 앉아 있다. 내 몸 안에서 반달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들의 심장 속에도 반달이 있다. 대동맥판막은 반달 세 개로 이루어져 있다. 신께서 조직으로 만든 반달 세 개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 금속으로 만든 반달 두 개에서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구조적으로 완전히 열릴 수 없는 반달문에서는 피가 엉긴다. 째깍째깍째깍 반달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나를 깨운다. 아무리 항응고제인 와파린을 잘 먹어도 피가 자꾸만 엉겨 핏줄을 막는다. 아직은 확실히 신이 인간보다 한 수 위다.    

 

나는 이제 문이 가장 무섭다. 어느 날 갑자기 닫혀버릴 문이 무섭다. 길의 문이 무섭다. 핏줄의 문이 무섭다. 달의 문이 무섭다. 달이 열고 닫아주는 달문이 무섭다. 나는 아마 뇌졸중으로 나의 문을 닫을 것만 같다. 어머니의 문을 열고 나오면서 함께 간직했던, 선천성 비후성 심근증 때문에, 돌연사를 염려했던 나는 이제 뇌졸중을 더 걱정하게 되었다. 인간이 금속으로 만든 반월판막이 나의 목숨을 겨우 살렸지만, 덕분에 나는 앞으로 평생 묽게 살아야만 한다. 성형수술을 한 승모판막까지 염려하면서 더욱 묽게 살아야만 한다.   

  

나는 이 지상에서 떠나기 전에 발자국 몇 개 남기려고 한다. 내가 명명한 <꿈삶글>을 쓰려고 한다. 내가 잠시 머물렀던 이 지상의 세상을 읽고 내가 늘 생각했던, 작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 하나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쓰는 글들은, 달문moon처럼 사람들마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기를 바란다.



14. 평생학교 서천꽃밭 달문moon



평이란 무엇일까

생이란 무엇일까

학이란 무엇일까

교란 무엇일까

그리하여

평생학교가 있다     


나는 아직 본격적으로 이어도공화국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내가 꿈꾸는 이어도공화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산이나 아름다운 섬이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산이나 섬을 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우선 이어도공화국을 만들기 위한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를 만든다. 그 전초기지를 나는 <평생학교> 혹은 <달문moon> 혹은 <이어도서천꽃밭>이라고 부른다. 평생학교는 평화학교와 생명학교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를 그냥 <이어도공화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는 오랜만에 산책을 나갔다. 일곱 시가 되어도 조금 어두웠다. ‘퍼물’ 바로 옆 민박집 주차장에 버스가 서 있었다. 버스 안에는 불도 켜져 있었다. 가방을 등에 진 사람들이 보였다. 민박집 단체 손님들이 일찍부터 어디론가 출발하려고 준비하는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민박집 손님들이 아니었다. 좀 더 지켜보니, 그들은 오늘 ‘퍼물논’의 유채 나물을 수확하려고 온 일꾼들이었다. 그들은 김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밭으로 사용되고 있는 논 입구에 모닥불을 피우고 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생학교 ‘꿈숲’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평생학교 ‘꿈섬’이 나온다. 화순은 강정과 함께 물이 많고 논이 많기로 유명하다. 옛날부터 ‘일 강정 이 화순’이라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다. 제주도는 평소에는 물이 없는 건천이 많은데 화순은 물이 마르지 않는 안덕계곡과 용천수들이 많다. 그리하여 물소리를 좋아하는 나는 물길을 따라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소리를 들으며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 언제나 마음속 깊은 곳까지 깨끗하게 씻겨진 나를 발견할 수 있다.      


‘퍼물논’으로 알려진 평생학교 ‘꿈섬’을 나는 연꽃단지로 만들고 싶은데 약 5천 평 되는 논 중에 이제 겨우 5백 평 확보하여 연꽃을 심고 관찰을 하는 중에 있다. 연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늘 연꽃 같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연꽃단지 논을 지나면 개끄리민교가 나온다. 다리 아래 개끄리민소가 있어서 붙여진 다리 이름이다. 바위 속으로 개를 끌고 들어가는 것처럼 깊이 파여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물길이 약간 꺾어지는 부분인데 아마도 바위 중에서 비교적 약한 부분이 물의 힘으로 파인 듯하다.     


개끄리민교를 건너가면 월라봉이 나오고 올레길 9코스가 나온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지 않고 왼쪽으로 올라가면 도채비빌레와 보막은소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황개천과 월라봉 단애 앞바다가 나온다. 박수기정에서 바라보는 마라도 풍경도 좋고 더 멀리 보일 것 같은 이어도 바다도 아름답다.     


나는 우선 왼쪽으로 올라간다. 이 길은 원래 수로가 있었던 곳인데 몇 년 전에 관에서 데크 공사를 하여 새로 만든 길이다. 데크 공사를 하기 전에 나는 보막은소에서 퍼물논까지 이어지는 수로를 정비하기 위해 가시덤불을 헤치고 다니던 길이었다. 이 수로는 김광종이라는 사람이 바위를 뚫고 만든 인공 수로였다. 지금은 논보다 밭이 더 인기가 있어서 밭으로 되돌아가는 추세에 있지만, 논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참으로 위대한 공사였던 것이다. 최근까지 퍼물논 주인들은 퍼물논에서 벼농사를 지어 제사상에 곤밥(쌀밥) 올리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지만 이제 퍼물논에서 벼농사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도채비빌레 바위 언덕에 안내판도 있고, 퍼물논 답회에서 오래전에 세웠다는 공덕비도 세워져 있는데, 데크 공사를 한 이후에 오히려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지고 말았다. 옛날에는 이 공덕비를 찾아오는 문화유산답사팀 사람들이 가끔 보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아예 발길이 뚝 끊어지고 말았다.     


나는 이 길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참 많이 아프다. 길 만드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에 이 데크 길은 만들어졌다. 계곡이 깊고 위험하여 1년 넘게 난공사를 하였다. 공사비도 엄청나게 들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 길은 개통도 하지 못하고 벌써 길이 망가지고 말았다. 공사 진행 중에 세워진 출입금지 간판은 지금도 그대로 있다. 글씨 색깔이 다 닳아 없어진 채로 버려져 있다. 우리 국민들의 혈세가 아무렇지 않게 낭비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길 말고도 내가 아는 많은 길들이 이와 비슷한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지금도 어디선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것저것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든 이후에 잘 관리하고 잘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김광종영세불망비’는 나란히 두 개가 서 있다. 1938년 5월에 세운 것과 1968년 4월에 세운 것이 길을 마주 보고 나란히 서 있다. 이 비석들이 있는 곳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면 당시 수로 공사를 했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길은 이제 나 혼자만의 전용 산책길이 되고 말았다. 가끔 낫을 들고 가서 가시덩굴을 쳐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나는 이 길이 참 좋다. 물소리도 좋고 김광종 선생님의 뜨거운 가슴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바위를 쪼아대는 정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처음에는 세금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깊이 감사하고 있다. 안덕계곡의 거센 급물살로 망가진 구간도 새로 개선하였다. 물길보다 높이를 더 높여 수리를 하여서 지금은 아주 좋아졌다. 덕분에,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이 길을 찾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듯하다.      


나는 오늘 아침 ‘불가능을 넘어선 사람 김광종’ 안내판을 다시 한번 자세히 읽는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생각한다. 그러면서 나는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는 중에 있다.    


이 안내판에는 12장의 만화가 그려져 있다. 여행을 온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동네 어르신이 등장하여 김광종 선생님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아들과 아버지가 ‘김광종영세불망비’에 적혀있는 내용을 본다. ‘穿山引水(천산인수) 漢西開始(한서개시) 多費己財(다비기재) 以裕後世(이유후세) 食我香稻(식아향칭) 賴公德基(송공덕기) 功擬召父(공의소부) 歲祈田祖(세기전조)’ ― 산을 뚫고 물을 당겨 한라산 서쪽에 논을 개척하는데 자신의 재산을 많이 털어 후세를 넉넉하게 하였다. 우리에게 향기로운 쌀을 먹게 한 것은 공의 덕기에 기인했으니 그 공이 소부에 비길 만하여 해마다 전조로 제사를 지낸다 ―   

   

이 비석을 보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으니, 아버지가 아들에게 설명을 한다. ‘김광종(金光宗)이 관개농업을 할 목적으로 사재를 털어 수리시설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서기 1938년 5월 화순답회(和順畓會)에서 건립한 기념비지’ 라고 대답한다. ‘비문에 의하면 순조 32년 착수하여 10년 만인 헌종 7년에 완공하였고 수로 길이는 안덕계곡에서부터 1,100m로 되어 있다는구나’라고 말하자 아들이 ‘와, 10년 동안 수로공사를 했다는 거예요?’ 라며 되묻는다.      


그러자 동네 어르신이 등장하여 설명을 덧붙인다. ‘김광종은 본디 화순 사람이 아닌데도 볼 일이 있어 이곳에 왔다가 이 지역의 농지가 넓고, 가까이에 수량이 풍부한 안덕계곡이 있음에도 전부 밭인 것을 안타깝게 여겼지’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모든 가산을 정리하고 안덕계곡의 지류인 황개천 암반하상(巖盤河床)에 흐르는 냇물을 밭으로 끌어댈 수로공사에 착수했어’ ‘처음에 그의 계획을 지역주민에게 설명하고 동참할 것을 호소했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아 겨우 석수(石手) 두어 명을 구하여 황개천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암벽을 뚫기 시작했지’ ‘이를 보고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다. 몇 년이 지나도 수로공사는 그리 진척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끈질기게 암벽에 달라붙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철매로 암반을 깨어나갔어’ ‘애초에 이를 수 없는 역사(役事)를 한다고 비웃던 사람들이 그를 측은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의 집념이 그 누구도 비웃게 놔두지 않았던 것이었지’ ‘그가 약 700m나 되는 암반을 뚫고 마침내 물길을 내니 사람들은 감복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밭에 물을 대려고 보에다 물꼬를 이으니 도착하기도 전에 전부 새어버리는 게 아닌가’ ‘그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도수로(道水路)를 수정하여 재정비하고 봇물이 새는 것을 방지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다시 몇 년이 흘렀다. 드디어 봇물이 새는 걸 막는 데 성공했다.’ ‘이를 지켜보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마지막 공정을 거들었다. 암반에 첫 철 매질을 한 지 꼭 십 년이 되는 해 9월에 드디어 1만여 평에 이르는 밭에 물을 대니 땅이 생긴 이래 늘 메말랐던 농토가 순식간에 논으로 바뀌었지’ ‘이후 밭을 논으로 눈 깜짝할 새에 바꿨다는 뜻으로 이 수로 끝에 해당하는 황개천언덕 위 암반지대를 도채비빌레라 불렀다고 하지’  

    

그러자 이 이야기를 다 들은 아들이 ‘우와~ 김광종이라는 분은 끈기가 정말 대단한 분이시군요’ 라며 감탄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안내판이다.      


내가 좀 살아보니 정말로 그런 것 같다. 무슨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은 꾸준히 해야만 이룰 수 있을 것만 같다. 10년이라는 세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이다. 정말 좋은 시인이 되기 위해서도 한 10년은 공부를 해야만 하리라. 하물며, 이어도공화국을 만드는 일이야 적어도 100년은 걸리지 않을까? 그런 장기전을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아침이다.      



물길



나는 하나의 물방울

아버지가 흘리신 물방울

물은 오늘도 흐른다


강은 흐르지 않고

물이 흐를 수 있도록

가슴을 비워준다


물이 강의 가슴을 두드린다

귀를 기울이면 들린다

망치소리도 들리고

정으로 쪼아대는 소리도 들린다


물은 그렇게 스스로

물길을 만들며 흐른다

내가 흘린 물 한 방울

아들의 땀방울이 흐른다


물길은 그렇게 바다로 흐른다

푸른 지구를 따라

둥그런 수평선을 만든다           




15. 작은 은자는 산이나 수풀에 숨고

       은자의 꿈



작은 은자는 산이나 수풀에 숨고

큰 은자는 조정과 시장에 숨는다


무서운 꿈을 꾸었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부위별로 팔듯이 사람의 장기를 부위별로 팔고 있었다. 장기마다 바코드가 찍혀 있었다. 심장이 망가지면 심장을 사서 갈아 끼우고, 간이 망가지면 간을 사서 갈아 끼우고 사는 그런 세상이었다.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새로운 장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유전자를 조작하여 아예 병에 걸리지 않도록 완벽하게 태어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자연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인공으로 살아가는 시대에도 끝까지 자연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살아있는 다른 사람들의 장기로 갈아 끼우고 살고자 하였다. 문제는 돈이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장기를 떼어 팔고, 대신 값이 싼 인공장기로 대체하여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돈이 많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젊고 아름다운 몸으로 갈아 끼우고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나의 몸을 끝까지 팔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꾸만 나의 장기와 몸통을 노리는 밀거래자들이 있었다. 결국, 무서운 그들에게 붙잡힌 나는, 나의 팔을 잘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운이 좋게 겨우 잠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꿈이 하나 있었다. 깊은 산속에서 숲을 가꾸며 조용히 살고 싶었다. 깊고도 깊은 숲 속에서 나무를 가꾸며 나무처럼 살다가 나무로 다시 한번 태어나 살고 싶었다. 옹달샘 곁에 오두막을 짓고 옹달샘처럼 살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오래전에 이런 글을 써서 붙여놓고 자주 읽어보곤 하였다. 오래된 그 글을 떠올리고 있는 동안에도 자꾸만 손과 발이 저렸다. 잠 밖에서도 나는 자꾸만 손과 팔이 저렸다.

      

나는 오래된 꿈이 하나 있다. 나는 아름다운 산을 하나 가꾸고 싶다. 그 산에 나무를 심고 나무를 가꾸며, 나무처럼 살고 싶다. 그 숲 속에 조촐한 집을 하나 짓고 싶다. 삶에 지친 영혼들을 위한, 작은 쉼터를 만들고 싶다. 그 쉼터에는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가끔 찾아오면 좋겠다. 절망이 너무 깊어서, 스스로 죽고 싶은 사람들이, 아주 가끔 찾아오면 좋겠다. 아무런 부담 없이, 누구라도,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그러면 나는 그들과 함께,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들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세상에 대하여, 너무나 분노한 사람들과, 한 때의 실수 때문에,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나는 그들과 함께, 그들의 나무를 심어주고 싶다. 산에 나무를 함께 심으면서, 그들의 아픈 가슴에도, 또 다른 희망의 나무를 심고, 사랑의 씨앗을 뿌려주고 싶다. 산 혹은 자연의 큰 거울 앞에서, 희망을 되찾은 그들이,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나는, 그들과 내가 함께 심었던, 그들의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안부 편지와 함께 가끔 보내주고 싶다. 세상으로 돌아간 그들은, 언제라도, 자신의 자라나는 나무를, 보기 위하여 올 수 있으면 좋겠다. 직접 올 수 없더라도, 늘 가슴속에서 함께 자라나는, 자신의 그 나무 때문에,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가 끝끝내, 함께 가야 할 길, 겨울이 깊을수록, 더 잘 보이는 길, 실패한 사람을, 함께 이끌어주고, 넘어진 사람을, 함께 일으켜 세워주고, 억울한 사람의 억울함을, 우리들이 함께 풀어주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나는 정말 좋겠다.     


나는 지금 그런 꿈의 실천을 위하여 연습을 하고 있다. 방 문을 열고 나오니 안개가 가득하다. 오늘 아침에는 하늘이 거대한 그릇처럼 느껴진다. 그릇 가득 안개가 흘러넘친다. 나도 안개 그릇에 담겨 안개에 젖는다. 안개를 보면 알 수 있다. 안개에 젖어보면 알 수 있다. 검은 것만 어둠이 아니라 흰 것들도 어둠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알고 다시 보면 우리들의 눈이 어둠을 본다. 어둠 속에서도 새소리는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사람은 확실히 눈 보다 귀가 더 밝다. 밖으로 나오면서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한다.


쩨쩨하게 살지 말고 통 크게 살아보자.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살아보자. 목숨을 걸어볼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무엇에 목숨을 걸어볼 것인가. 내 평생의 소망에 목숨을 한 번 걸어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이어도공화국]을 기필코 내 필생에 만들어보자.  

   

자꾸만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살고 싶다. 옹달샘의 샘물이 되고 싶다. 그 옹달샘에는 가끔 병든 새들이 찾아오면 좋겠다. 그 병든 새들이 옹달샘에서 나를 마시고, 기력을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기력을 회복한 새들이 다시 창공으로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리하여 이미, 그 새의 몸이 된 나 또한, 그와 함께 깊은 궁창이 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나는 먼저 아름다운 산을 하나 확보하여 더욱 아름답고 의미 있게 가꾸고 싶다. 그 산에 나무를 심고 나무를 가꾸며 나무처럼 살고 싶다. 그 숲 속에 조촐한 오두막을 하나 짓고 싶다. 삶에 지친 영혼들을 위한 작은 쉼터를 만들고 싶다. 그 쉼터에는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가끔 찾아오면 좋겠다. 절망이 너무 깊어서 스스로 죽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 아주 가끔 찾아오면 좋겠다.     


나무와 함께 살다가 나무로 부활하고 싶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무덤 대신에 나무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은 죽어서도 서로 사랑하는 나무로 다시 태어나면 좋겠다. 죽어서도 서로 곁에서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바람 부는 날은 가끔 손이라도 잡아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달문moon'을 둘러본다. '꿈숲'을 둘러본다. 감귤꽃에 둘러싸인 아기 감귤이 막 눈을 뜨고 있다. 아주 작은 푸른 감귤이 다섯 장의 흰 꽃잎에 싸여 눈을 깜박거리고 있다. 올해는 복숭아가 많이 열렸다. 올해는 모과와 살구가 그리 많이 열리지는 않았다. 장미꽃도 곧 환하게 웃을 것만 같다. 노랑 창포꽃이 볼터치를 하고 있다. 나는 안갯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안개 때문에 어두워진 길을 건너간다. 꿈섬에서 연근을 뽑아서 쪼아 먹던 백조와 재두루미와 청둥오리들이 놀라서 날아오른다. 꿈섬과 안덕계곡과 월라봉에는 새들이 너무 많다. 안개 가득한 산길에서 몸과 마음이 젖은 은자가 내려올 것만 같다. 


진(晉) 나라의 왕강거(王康琚)가 《반초은시(反招隱詩)》에서 “小隱隱陵藪 大隱隱朝市(소은은릉수 대은은 조시)”라 하여 “작은 은자는 산이나 수풀에 숨고, 큰 은자는 조정과 시장에 숨는다.”라고 하였다.     


한편, 《진서(晉書)》 등찬전(鄧粲傳)에서는 “무릇 숨어서 도를 행함에 조정에도 숨을 수 있고 저잣거리에 숨을 수도 있는 것이니, 숨는 것은 애초 나에게 있는 것이지 외물(外物)에 있는 것이 아니다. (夫隱之爲道 朝亦可隱 市亦可隱 隱初在我 不在於物)”라고도 하였다. 

    

사마천의 사기 골계 열전 제66에 한 무제 때의 기인(奇人) 동방삭(東方朔) 이야기가 나온다. 무제 곁에서 벼슬을 하며 대단한 문장과 달변으로 유명했지만 그의 행동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동방삭 주변의 동료들은 동방삭의 행태에 대해 선비로서 품위가 없다는 등 미친 사람(狂人)이라고 수군거렸다고 한다. 한 번은 궁중에서 동료들과 술을 마시는데 누가 “사람들이 자네를 미친 자라고 한다네.”라고 하자 동방삭은 이에 “나는 말하자면 궁중 가운데에서 한가로이 숨어있는 사람이지(所謂避世於朝廷閒者也), 옛날의 은둔자들은 깊은 산속에서 세상을 피했지만(古之人, 乃避世於深山中)!”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또한 동방삭은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땅에 벌러덩 드러누워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곤 했다고 한다. 

    

陸沈於俗(육침어속) 避世金馬門(피세금마문) 宮殿中可以避世全身(궁전중가이피세전신) 何必深山之中(하필심산지중) 蒿廬之下(호려지하)


- 속세에 푹 파묻혀, 궁궐 문 안에서 세상을 피한다네, 궁전 안에서도 세상을 피하고 몸을 온전히 할 수 있는데, 하필 깊은 산속, 쑥으로 엮은 초막 아래서만 피할까!     


나는 또한 길게 접은 우산을 들고 가면서 강태공 이야기를 생각한다. 강태공의 빈 낚싯대를 생각하고 엎질러진 물에 대한 일화도 함께 생각한다. 


은자라 함은 세속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깊은 산속에서 살 수도 있고, 밖의 세계로 나오지 않고 자기만의 공간에서 살 수도 있다. 그래서 은자는 좋은 의미보다는 자기중심적인 인물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하기도 한다.      


공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타나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 출세는 세상에 나아가는 것인데, 그러한 세상에 도가 있어 순리대로 돌아간다면 세상에 나와 자신의 뜻을 펼 것이고, 도가 없어 모순된 사회나 앞뒤가 바뀐 세상이라면 그 뜻을 펼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옛말에 ‘작은 은자는 산이나 수풀에 숨고, 큰 은자는 조정과 시장에 숨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냥 보통 은자들은 사람들을 피하는 방법으로 살아가지만, 큰 은자들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자를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큰 은자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산으로 들어가 작은 은자로 살아갈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앞에서 말했던, 내가 존경하는 당 태종 때 동방삭은 조정의 관료이지만 권력을 비웃고 자신의 뜻을 펼치며 살아갔다. 동박삭은 운이 좋아 당시 사회분위기는 이러한 동방삭의 기행을 관대하게 인정했다. 동방삭은 자신이 똑똑함을 드러내지 않고 광대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였으나 그는 진정 큰 은자였다. 

    

유방의 부하였던 장량은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고 능력을 과신하지 않으며 공을 이루었으면 언제든지 깨끗하게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장량이 이런 사람이었기에 논공행상에서 빠지고 조정을 떠나 은자로 살아서 자신의 자연적 수명을 다 누렸다. 은자라 함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서 사는 사람 이라기보다는 세상의 흐름을 알고 뜻을 펼칠 때에는 뜻을 펼치지만 그렇지 못하면 자신의 분수에 맞게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굴원의 어부사의 어부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든다. ‘창낭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내 발을 씻으리라.’  나는 안갯속에서도 맑은 노래를 부르며 흐르는 계곡 물소리에 내 귀를 씻으며 아침 산책을 계속한다.   

    

그런데 아, 이것은 무엇인가? 안갯속 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광경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동양 달팽이와  육상 플라나리아의 이 땀나는 행위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인가 전쟁인가 아니, 오늘 아침 동양 달팽이의 저 처절한 죽음은 복상사인가 전사인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알 수가 없다. 나는 다만 내가 오늘 아침에 한 시간 넘게 직접 지켜본 광경을 기록하고 두고두고 더 깊이 생각을 해 보아야만 하리라.


'김광종영세불망비' 앞에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길을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잠시 그 자리에 앉아 쉬려고 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 길에서 문제의 동양 달팽이와 육상 플라나리아를 발견하였다. 형태가 완전히 다른 그들의 자세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어떻게 만났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이 어떤 인연으로 만나 얼마나 긴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언뜻 보기에 그들은 이미 지쳐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위의 나뭇잎들이 얼크러져 있고 분비물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꽤 많은 시간을 그렇게 함께 지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나는 그동안 같은 종류의 동양 달팽이와 육상 플라나리아를 따로따로 지내는 모습은 많이 보았지만 오늘처럼 함께 붙어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 달팽이의 정확한 이름과 육상 플라나리아의 이름도 사실은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정확한 이름도 모르는 처지였으니 그들의 생활양식에 대한 정보도 아는 것이 없었다. 달팽이가 암수 한 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성생활에 대한 지식은 없었다. 민달팽이의 사랑하는 장면은 많이 보았지만 오늘처럼 달팽이와 다른 동물과의 성생활에 대한 정보는 아는 것이 없었다.


나는 처음에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행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성행위가 아닐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넘게 지켜본 결과 달팽이의 발을 비롯한 모든 하체가 검은 육상 플라나리아의 몸속에 들어가 있었다. 육상 플라나리아의 배 중간쯤에 구멍이 있었는데 그 구멍이 성기인지 아니면 입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팽이의 넓은 발이 그렇게 뾰족하고 둥그렇게 말려서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난 다음에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난 후에 육상 플라나리아는 달팽이의 하체를 토하고, 달팽이 주위를 한 바퀴 돌고는 낙엽이 쌓여있는 계단 구석으로 떠나가 버렸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공연은 그것으로 끝나는 줄로 알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고 하였다. 그런데 아,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던 달팽이 껍데기가 뒤집어지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달팽이집 안에서 또 다른 한 마리의 검은 육상 플라나리아가 기어 나오고 있었다. 동양달팽이의 또 다른 무엇인가가 그 육상 플라나리아 몸속에 들어가 있었다. 달팽이가 먼저 밀어 넣은 것인지 육상 플라나리아가 빨아들인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달팽이집 속에 또 다른 한 마리의 육상 플라나리아가 숨어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의 사랑이라면 한꺼번에 둘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일이겠고, 그것이 전쟁이라면 동양달팽이는 오늘 아침 무서운 안팎의 적과 싸우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 처절한 사랑 혹은 전투가 끝난 다음에 달팽이는 끝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육상 플라나리아는 다시 만나서 계단 구석 나뭇잎 아래서 함께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오늘 아침에 꿈보다 더 꿈같은 광경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사랑과 전쟁은 동전의 앞뒤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16. 정읍 종석산에 좋은 친구가 있다



전망이 아주 좋은 정읍 종석산에

이어도공화국 연합 무료 쉼터가

< 정읍 종석산 무료 쉼터 >

들어 설 예정입니다

많은 응원과 성원을 바랍니다

아직은 허술하지만

섬진강 옥정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하우스는 이미 완성이 되었습니다



종석산 정읍사



종석산에서 정읍사(井邑詞) 

노랫소리 들린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종석산 정읍사(井邑寺)에서

범종소리 들린다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

모든 것이 선(禪) 아닌 것이 없다

내 가슴속으로 들려오는

달빛 종소리, 요것은 도대체 뭣이다냐


옥정호에서 올라오는 물안개 발자국소리다냐

참나무 숲으로 숨어드는 밤의 숨소리다냐

참나무 그늘을 덮고 잠든 산삼들의 잠꼬대다냐

홀로 달아오른 산삼 열매들의 후끈거림이다냐

아. 나는 너무 오래도록 떠돌았던 장돌뱅이였구나

아, 나는 너무 오래도록 보지 못한 청맹과니였구나


제주공항에서 여수공항은 바로 코 앞이었구나

이륙하고 추자도가 보이더니 바로 착륙이구나

여수에 도착한 나비는 연어의 종착역을 지나

옥정호가 있는 숲으로 날아가는구나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아, 참으로 먼 세월이 한순간이구나

종석산에서는 정읍사(井邑詞) 후렴소리 들리고

종석산 정읍사(井邑寺)에서는 운판소리 들려오는데

나의 지친 가슴속에서 환하게,

꿈꾸던 숲에서 드디어 산삼 꽃이 함께 영그는구나


세상에는 참나무 같은 사람이 있다. 소나무 같은 사람이 있다. 참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함께 살기를 꿈꾸는 나무다. 그에 비하여 소나무는 독립심이 강한 나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참나무는 독이 없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어서 온갖 생명을 키우는 나무이다. 그에 비하여 소나무는 독이 있는 나무다. 한 마디로 독한 나무다. 소나무 잎에는 다른 식물을 죽이는 독이 들어있다. 그래서 소나무 주위에는 다른 식물들이 잘 자라지 못한다. 하지만 참나무는 잎뿐만 아니라 열매며 나무 자체에도 독이 없다. 그래서 참나무는 다람쥐뿐만 아니라 온갖 생명을 키우는 자연의 밥상이다. 그리하여 소나무 숲보다 참나무 숲이 더욱 건강하고 더욱 풍요롭다.


대부분의 숲이 참나무인 산이 있다. 정읍에 있는 종석산이 그렇다. 그래서 종석산은 우리나라 약초꾼들이 가장 좋아하는 산이다. 그 아름다운 종석산에서 산양삼을 비롯한 여러 약초 농사를 짓는 친구가 있다. 잠시 소풍 나온 이 세상에서 떠나기 전에 나도 이 세상에 참나무 한 그루 심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아름다운 공간 하나 만들어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떠나고 싶은 것이다.


이 아름다운 땅에 아름다운 사람들의 공동 약초밭을 만들고 감나무와 밤나무도 심고 그 종석산에서 나오는 참나무와 황토로 황토방을 만들어 무료 쉼터를 만들어볼 예정이다. 그 종석산에서 나오는 자재로 집을 지을 수 있으니 건축비 또한 그렇게 많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 이미 두 채의 황토집을 지은 친구가 있으니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제 시작이니만큼 서둘지 않고 천천히 꿈의 동지들과 함께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내가 꿈꾸던 이어도공화국이 이제야 비로소 주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듯하다.

  

나는 이제 겨우 꿈의 동지를 만났다. 꿈의 동반자를 만났다. 내가 잘 아는 아주 좋은 친구를 만났다. 정읍의 종석산, 그곳에 아름다운 명상센터와 의미 있는 무료쉼터를 함께 만들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남기지 않고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들의 유토피아를 남기기로 합의하였다. 앞으로 더욱 의미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가장 적당한 후계자들에게 공동으로 넘겨주기로 하였다.  

   

나는 30년 전에 이어도공화국 헌법을 만들었다. 내가 꿈꾸는 이어도공화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산이나 아름다운 섬이 필요한데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우선 작은 밭과 작은 논을 구입해서 숲으로 만들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숲을 밭이나 논으로 개간을 하는데 나는 거꾸로 비싼 밭을 사서 아름다운 숲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중에 숲이나 섬을 구하면 이어도공화국을 만들 수 있도록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본격적인 이어도공화국이 아니라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를 만들고 있었다.   

   

물론 이번에 함께 만들기로 한 종석산 땅도 내 꿈을 실현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작다. 하지만 우선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로 하였다. 우선은 작게 시작하여 주위의 산들을 기회가 되면 추가 매입을 할 생각이다. 또한 또 다른 꿈의 동지들을 만날 수 있다면 정읍뿐만 아니라 곡성의 반월산 등 전국 어디라도 함께 추진할 생각이다. 내가 꿈꾸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나는 쉬지 않고 꾸준히 확산시킬 예정이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좋은 씨앗 하나 남길 수 있기를 오늘도 꿈꾸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정읍사의 고향 정읍을 생각하니

나는 어쩌면

정읍사 여인의 지아비가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나는 너무 오래 시장에서 살았구나

너무나 오랫동안 장사에만 몰두하였구나

이제는 지어미가 기다리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하겠구나

달아 높이곰 도다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밝혀다오

어긔야 어강도리 아으 다롱디리


*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를 드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졈그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17. 이어도연합국 종석산 임두령



내가 꿈꾸는 <이어도공화국>은

꼭,

단일민족국가일 필요는 없겠다

우리들의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꿈과 아름다운 터전을 

물려주기 위함이니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만들고 있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나라들의 연합국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좋을 것만 같다

정읍 종석산에는 친구 임두령이 있고

여수 돌산에는 좋은 임호상 시인이 있고

임실 진뫼마을에는 김도수 시인이 있고

구례 섬진강에는 김인호 시인이 있고

지리산 진달래산천에는 조하성봉님이 있고

울산 두북수련원에는 법륜스님이 있고

원주 송정암에는 혜범스님이 있고

금산 보석사에는 석장곡스님이 있고...,

우리나라 방방곡곡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 많네

아직도 내가 모르는 더 많은 사람들을 찾아서

아름다운 연합국가를 만들어보아야만 하겠다



종석산이 나에게로 왔다. 아니, 나는 어쩌면 먼 옛날부터 종석산으로 가고 있었을 것이다. 인연이 있는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고 인연이 있는 공간 또한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 있다. 나는 아직 종석산을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종석산과 깊은 인연이 있음을 느낀다. 나의 인생은 지금껏 소탐대실의 삶이었다. 이제는 좀 변해야만 한다. 변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살 수 없다.


종석산은 전라북도 정읍에 있는 산이다. 나는 아직 정읍도 잘 모른다. 내가 종석산과 만나고 정읍을 만나면서 자꾸만 정읍사(井邑詞) 노랫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아직은 보이지 않는 정읍사(井邑寺)의 범종소리도 들린다. 나의 오랜 꿈과 현실이 이렇게 종석산에서 만나고 있다. 백 년 동안의 꿈과 천 년 동안의 희망이 종소리를 울리며 피어나기 시작한다. 


세상에는 참나무 같은 사람들이 있다. 소나무 같은 사람들도 있다. 참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함께 살기를 꿈꾸는 나무이다. 그에 비하여 소나무는 독립심이 강한 나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참나무는 독이 없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온갖 생명을 키우는 나무이다. 그에 비하여 소나무는 독이 있는 나무다. 한 마디로 독한 나무다. 소나무 잎에는 다른 식물을 죽이는 독이 들어있다. 그래서 소나무 주위에는 다른 식물들이 잘 자라지 못한다. 하지만 참나무는 잎뿐만 아니라 열매며 나무 자체에도 독이 없다. 그래서 참나무는 다람쥐뿐만 아니라 온갖 생명을 키우는 자연의 밥상이다. 그리하여 소나무 숲보다 참나무 숲이 더욱 건강하고 더욱 풍요로운 세상을 만든다.


대부분의 숲이 참나무인 산이 있다. 정읍에 있는 종석산이 그렇다. 그래서 종석산은 우리나라 약초꾼들이 가장 좋아하는 산이다. 그 아름다운 종석산에서 산양삼을 비롯한 여러 가지 약초 농사를 짓는 친구가 있다. 나는 이제 겨우 꿈의 동지를 만났다. 꿈의 동반자를 만났다. 내가 잘 아는 아주 좋은 친구를 만났다. 정읍의 종석산, 그곳에 아름다운 명상센터와 의미 있는 무료 쉼터를 함께 만들기로 하였다. <자연 치유 문화공원>을 만들기로 하였다.

   

나는 30년 전에 이미 이어도공화국 헌법을 만들었다. 내가 꿈꾸는 이어도공화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산이나 아름다운 섬이 필요한데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우선 작은 밭과 작은 논을 구입해서 숲으로 만들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숲을 밭이나 논으로 개간을 하는데 나는 거꾸로 비싼 밭을 사서 아름다운 숲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중에 숲이나 섬을 구하면 이어도공화국을 만들 수 있도록 미리 숲농법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본격적인 이어도공화국이 아니라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를 만들고 있었다. 달문moon을 먼저 만들고 있었다.   

   

물론, 이번에 함께 가꾸기로 한 종석산 땅은 내 꿈을 실현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작다. 하지만 우선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로 하였다. 또한, 또 다른 꿈의 동지들을 만날 수 있다면 정읍뿐만 아니라 곡성의 반월산 등 전국 어디라도 함께 추진할 생각이다. 내가 꿈꾸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나는 쉬지 않고 꾸준히 확산시킬 예정이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좋은 씨앗 하나 남길 수 있기를 오늘도 꿈꾸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꿈꾸는 종석산에서 달빛 종소리가 들린다. 꿈의 새싹이 돋아나는 아름다운 종석산에서 햇빛 범종소리가 들린다. 운판 소리도 들린다.      

   

https://brunch.co.kr/@yeardo/909

                   


18. 작은 황토방 만들기 예습과 실습



나는 우선 종석산을

이어도공화국 가족들의 소풍 장소로

약초 농장으로, 쉼터로, 창작촌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나는 아직 종석산에서 살 수 없으니

해마다 함께 약초를 심고

해마다 함께 감나무를 심고

해마다 함께 밤나무를 심을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시인들의 창작촌으로

.................................................,



종석산에는 참나무도 많고 황토도 많으므로 황토방을 만들면 좋겠다. 2012년에 종석산에서 종석산 흙과 종석산 나무와 종석산 돌을 이용하여 황토방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아직도 그곳에 있으니 그때 경험을 살려서 조금 더 보강하고 개선해서 황토방을 만들면 좋겠다. 그때 기록이 있으니 참고하기 위하여 여기에 옮겨놓는다. 


https://brunch.co.kr/@yeardo/1157



19. 참나무숲 종석산을 아시나요



종석산은 전북 정읍시 산내면 

능교리와 장금리와 매죽리가 함께 모여있다

531.8 미터 높이의 종석산 정상에서

북쪽은 능교리

동쪽은 장금리

서쪽은 매죽리로 나누어진다
남쪽은 매죽리와 장금리가
나란히 다리를 뻗고 있다
내가 우선 장만한 땅은
종석산 정상 부분의 능교리에 조금 있고
종석산 정상에서 약간 아래쪽 장금리에
대부분의 땅이 있다
그러니까 종석산 동쪽에 있는데
옥정호와 여러 산들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 종석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모습에 반해서
나는 이 종석산을 선택했고
많은 참나무와 많은 산삼들과 많은 약초들과
함께 나의 꿈을 심고 가꾸기로 하였다






나는 지금껏 종석산이 오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방송투데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오지기행'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하였다. 2020년 6월 4일에 방송을 하였는데 종석산 정상에 살고 있는 임영규 씨와 그의 쌍둥이 아들 둘 그렇게 셋이 함께 출연을 하였다. 해발 450미터에서 500미터 사이에서 사는 그들은 정읍에서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였다. 약초꾼 임영규 씨의 말에 의하면 1920년대는 화전민들이 살았고 그전에는 절이 있어서 우물물도 잘 나온다고 하였다. 아들이 아버지를 위하여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그의 깨달은 모습이 참 안정적이고 깊어 보였다. 그는 종석산 아래 마을에서 살다가 잠시 서울에서 살았는데 12년 전에 홀로 다시 종석산으로 내려와 산양삼 농사를 지었고 7년 전부터는 아들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하였다.


   




앞으로 내 삶의 중요한 공간이 될 종석산에서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종석산에는 이미 임영규 씨와 그의 쌍둥이 아들들이 살고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나는 어쩌면 이방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꿈과 그들의 삶과 그들의 성향을 미리 알아야만 할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고민을 하다가 나는 며칠 후 조심히 그리고 신중하게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정읍시 산내면 청정로 1228

(산내면 능교리 338-5 번지)



20. 이런 집은 어떨까요, 좋을까요




    





오른쪽 뒤에 보이는 집이 나의 고향집입니다 표지석 왼쪽으로 섬진강으로 이어지는 삼기천이 흐르고 징검다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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