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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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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Feb 11. 2024

고향집 ― 만주에서 부른

윤동주 시인과 함께, 너에게 나를 보낸다 07




(동시) 고향집

― 만주에서 부른


 

헌 짚신짝 끄을고

  나 여기 왜 왔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남쪽 하늘 저 밑엔

    따뜻한 내 고향

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집


_ (1936.1.6. 윤동주 20세) 



윤동주 시인의 출생과 유년시절의 성장지는 만주다. 북간도 명동에서 태어나서 명동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동주 시인은 자신의 고향을 남쪽이라고 생각한다. 시적 화자는 남쪽 하늘 아래 따뜻한 내고향을 노래하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어머니 또한 명동에 계신다. 윤동주의 고향은 만주다. 그럼에도 윤동주 시인은 자신의 고향을 남쪽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진짜 고향과 작품 속의 고향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시적 장치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민족의식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잘 형성되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부모와 할아버지 등의 교육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북간도의 명동이란 동네가 어떤 마을인가? 민족 의식이 투철한 선조들이 작정하고 만든 마을이 아니던가? '명동'이란 동네 이름부터가 동쪽을 밝게 하는 마을, 즉 조선을 되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동네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민족의식이 강했던 사람들이 마을을 만들고 후손들을 위하여 교육에 전념했던 마을이기에 윤동주, 송몽규, 문익환 같은 민족의식이 강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날 수 있었으리라.


윤동주 시인의 동시 <고향집>은 실제 자신의 고향집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 입장이 되어서 고향집을 노래하고 있다. 명동촌에 대하여는 송우혜 선생님의 <윤동주평전>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윤동주 평전은 송우혜 선생님의 평전이 아주 좋다. 송우혜 선생님은 북간도의 전문가이며 또한 송몽규의 친척으로 <윤동주평전>에 많은 공을 들여서 꾸준하게 개정판을 내시고 계신다. 그런 분들 때문에 우리들의 문학이 더욱 풍부해지고 있어서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     


송우혜 선생님의 <윤동주평전>을 읽는다. 윤동주 시인을 만나려면 먼저 간도로 가야 한다. 간도는 좀 특별한 곳이다. 간도를 한문으로는, 간도(間島)라고 쓰기도 하고 간도(墾島)라고 쓰기도 한다. 청나라는 병자호란 뒤 간도를  봉금(封禁) 지역으로 정하고 조선 사람이든 청나라 사람이든 아무도 들어가 살 수 없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간도라는 지명은 조선과 청나라 사이(間)에 놓인 섬(島)과 같은 땅이라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선 후기에 우리 농민들이 이 지역에 이주하여 땅을 새로 개간하였다는 뜻에서 ‘간도(墾島)’라고 적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윤동주 시인을 만나려고 사이섬으로 가야 한다. 개간한 섬으로 가야 한다.


"처음엔 두만강 위쪽 땅을 그냥 '간도'라고 했다. 그러나 후에 압록강 이북을 '서간도'라 하면서, 두만강 이북은 '북간도'로 구분해서 불렀다" 윤동주 시인은 북간도에서 태어났다.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명동촌이 또한 특별한 곳이다. 명동촌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마을이 아니다. 1899년 2월 18일에 생겨난 마을이라고 한다. "두만강변의 도시인 회령과 종성에 거주하던 네 명의 학자들 가문에 속한 22개 집안 식솔들로 이루어진 총 141명의 이민단이 그날 일제히 고향을 떠나 두만강을 건넜다"라고 한다. 그러니까 북간도 명동촌은 학자들 가문이 두만강을 건너 이국땅에 세운 개척마을이다. 윤동주 시인은 그런 특별한 마을에서 1917년 12월 30일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이 신사참배문제로 고민할 때 즈음인 1936년 1월 6일, 20세에 쓴 동시로 고향을 떠난 개인적인 외로움과 민족적인 어려움이 교차된다. 부조리한 식민지 현실을 두고 시인의 민족의식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해 낸 장치로 동시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윤동주 시인은 경성에 가기 전까지 만주가 아닌 만주의 남쪽에 위치한 한반도를 고향으로 보았다. 윤동주 시인의 다른 시 <오줌싸개 지도>에서도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윤동주 시인이 태어난 실제 고향집은  중국 길림성 용정 시내에서 약 사십여리 거리의 지신진 명동촌 산골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윤동주 시인은 저항시인으로, 특히 1938년부터 1941년까지의 작품을 통해 불안, 고독, 절망을 극복하고자 하는 용기와 희망을 담아냈다. 이 시기의 시에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강인한 정신이 엿보인다. 또한 윤동주 시인은 러시아 작가들인 푸쉬킨과 투르게네프를 매우 좋아했다. 따라서 윤동주는 그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윤동주 시인의 시 <고향집>에서 '고향집'은 사실 그의 실제 고향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만주에서 살던 윤동주가 "두만강을 건너서" 온 곳은 평양이었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화자가 반도에서 "두만강을 건너서" 만주로 간 것처럼 그려진다. 그의 할아버지가 그랬다. 또한 '나 여기 왜 왔노'라는 표현에서 시의 화자는 경상도 방언을 사용하는데, 이는 윤동주 시인과 시의 화자가 동일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시에서 표현된 감정은 시인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다. 고향의 북쪽에서 지내는 화자는 불안을 느끼며 그에게 안정을 줄 수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데, 고향은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이 있는 곳으로 묘사된다. 이를 통해 고향은 춥고 힘든 곳에서에도 화자를 따뜻하게 감싸 주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그리하여 <고향집>이라는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 속에서 그의 불안한 감정을 담은 작품이다. 이는 그의 실제 경험이 아닌, 화자의 상상 속 고향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 시에서 표현된 감정은 윤동주 시인의 개인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 아니라, 시 속 화자의 삶과 경험을 담은 것이다. 고향의 북쪽에서 지내는 화자는 불안을 느끼며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그리워하는데, 이를 통해 고향은 어머니의 안정과 따뜻함이 있는 곳으로 묘사된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불안정한 시기에도 어머니의 존재가 주는 안정과 위안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이후로 대부분의 고향은 남쪽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뜻한 남쪽나라 따뜻한 고향, 강남으로 날아가는 제비 등으로 묘사하게 되었다. 



* 이 시는 의도적으로 앞줄이 아니고 뒷줄에 맞추어서 썼다 

'남쪽 하늘'은 본국땅인 한반도를 말한다.

* 원문표기

- '헌짚신짝 끄을고' -> '헌집신짝 끟을고'

- '나여기 왜왔노' -> '나여긔 웨왓노'

- '계신 곳' ->'게신곧'       




https://youtu.be/b0tV7SkD95s?si=qtukEZpRceHuhqPZ


https://youtu.be/8qk6YVpw0gk?si=218eqAAwUlv1BwFd

https://youtu.be/mcThwx02hz4?si=9CaaywhyyEOB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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