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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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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Feb 14. 2024

기왓장 내외

윤동주 시인과 함께, 너에게 나를 보낸다 12




기왓장 내외



비 오는 날 저녁에 기왓장 내외

잃어버린 외아들 생각 나선 지

꼬부라진 잔등을 어루만지며

쭈룩쭈룩 구슬피 울음 웁니다.


대궐 지붕 위에서 기왓장 내외

아름답던 옛날이 그리워선지

주름 잡힌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끄러미 하늘만 쳐다봅니다.


_ (1936년 추정. 윤동주 20세) 


 

이 시는 1936년에 쓰여진 시로 지붕의 건축 자재인 '기와'를 의인화한 시다. 서로 나란히 포개어져 있는 두 기와를 서로 어루만지며 위로하고 있다고 표현한 시인의 놀라운 상상력이 녹아든 시다. 시에서 표현되는 기왓장 내외는 외아들을 잃어버리고 아름답던 옛날을 그리워하는 노부부로 표현되는데, 이는 가장 소중했던 독립된 조국을 잃어버린 과거를 향수하는 시인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쭈글쭈글한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소곤소곤 대화하는 모습이 잘 그려져서 참 좋다. 그러면서도 어려운 시절을 함께 손 잡고 건너올 수 있었던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서로를 향하는 감사하는 마음과 쓸쓸한 정서가 잘 그려져 있다. 또한 대궐 지붕의 기왓장 내외를 함께 불러내서 권력과 인생의 무상함까지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준 면에서 이 시는 틀림없는 수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와는 볼록한 둥근 모양이 하늘을 향하는 '수키와'와 반대로 둥근 모양이 아래를 향하는 '암키와'로 구분된다. 그런데 내가 본 대부분의 기와는 자웅동체로 되어 있어서 한쪽은 수키와이고 다른 쪽은 암키와로 되어있어 파도무늬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기와지붕은 바다가 출렁이는 모습으로 하늘 바다를 이루고 있다. 어쩌면 기와지붕 때문에 푸른 하늘이 더욱 아름답고 물결소리 들리는 듯 구름도 춤을 추며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암키와와 수카와가 따로인 기와는 주로 부잣집에 사용되고 물결무늬모양의 기와는 서민들의 집에 사용되는 듯 하다. 그러니까 같은 기와를 계속 연결해서 지붕을 만드는 서민들의 기와집을 많이 보고 자란 나의 상상력은 더욱 외설스러운 쪽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를 동시로 분류하지만 동심을 잃어버린 나는 시를 동시가 아니라 그냥 시로 분류를 하고 싶다. 읽기에 따라서 너무나 성적으로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은 동심을 잃지 않고 맑고 투명한 마음으로 외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습을 따뜻하게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심을 잃어버린 나는 자꾸만 아직도 너무나 외설적인 모습으로 보여서 더욱 부끄럽다. 기왓장 내외는 언제나 여성 상위 체형을 유지한 채 밤낮없이 성생활만 하는 면에서 낯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물론 성생활이 아니라 서로 손을 잡아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모습으로 수도 있지만 기왓장 내외는 아무래도 고요 곁에서도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비가 오는 날은 온몸이 젖도록 땀을 뻘뻘 흘리며 들썩거리는 것이 자주 목격되기 때문에 눈에는 너무 외설스럽다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나로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이렇게 따뜻하게 잘 쓴 이 시가 좋은 이유는 단순히 기와를 내외로 의인화에 그치지 않고 외아들을 잃은 서민들의 부부와 대궐에서 살았던 권력자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참으로 놀랍다.



* '잔등'이라는 표현은 현재는 표준어가 아닌 북한어로 분류되며 신체 부위인 '등'을 뜻한다. 현재는 '등'만 표준어로 삼는다.

* 원문표기

- '기왓장 내외' -> '기와장내외'

- '기왓장내외' -> '긔와장내외'

- '울음 웁니다' -> '울음움니다'

- '대궐지붕' -> '대궐집웅'

- '위에서' -> '우에서'

- '아름답던' -> '아름답든'

- '옛날이' -> '넷날이'

- '얼굴을' -> '얼골을'

- '물끄러미' -> '물끄럼이'

- '쳐다봅니다.' -> '처다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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