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과 함께, 너에게 나를 보낸다 16
앙당한 솔나무 가지에
훈훈한 바람의 날개가 스치고
얼음 섞인 대동강물에
한나절 햇발이 미끄러지다.
허물어진 성터에서
철 모르는 여아들이
저도 모를 이국말로
재질대며 뜀을 뛰고.
난데없는 자동차가 밉다.
_ (1936.3.24. 윤동주 20세)
윤동주 시인이 79년 전 오늘 별이 되었다. 79년 전인 1945년 오늘 광복을 6개월 남겨놓고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별나라로 떠났다. 스물여덟 젊은 시인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감방에서 들려오는 송몽규의 울부짖음을 들었고 송몽규도 스무날 뒤에 시인을 따라 별나라로 따라서 갔다. 아름다운 두 청년의 죽음은 바닷물을 이용한 생체실험 마루타였다는 소문이 많지만 정확한 사인을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너무나 억울하고 슬픈 진실을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자기 실천으로 큰 고요를 이룩한 윤동주 시인은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시신은 가족들에게 인도 되어 화장된 뒤 그 해 3월 장례식을 치른 후 지린성 룽징시에 유해가 묻혔다. 그의 조부 윤하현의 비석으로 마련한 흰 돌을 그의 비석으로 사용하였다.
같은 해 2월 26일, '2월 16일 동주 사망, 시체를 가지러 오라'는 전보가 고향집에 배달되었다. 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이 시신을 인수, 수습하러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뒤늦게 '동주 위독하니 보석할 수 있음. 만일 사망 시에는 시체를 가져가거나 아니면 규슈제대(九州帝大) 의학부에 해부용으로 제공할 것임. 속답 바람'이라는 우편 통지서가 고향집에 배달되었다. 후일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는 이를 두고 "사망 전보보다 10일이나 늦게 온 이것을 본 집안사람들의 원통함은 이를 갈고도 남음이 있었다."라고 회고하였다.
한편,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옥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은 결과이며, 이는 일제의 생체실험의 일환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모란봉에서> 이 작품은 1936년 3월 24일 작품으로 평양에 소재한 모란봉에서 일본어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쓴 시라고 한다. 이국말로 노래하는 조선의 아이들의 모습과 허물어진 성터의 모습은 식민지화된 조선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느낀 시인의 의분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조국의 숨통을 조여 오는 일제의 침략 행위를 상징하는 자동차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모란봉(牡丹峰)은 평양의 기림리 금수산(錦繡山)에 있는 봉우리를 말한다. 모란봉의 높이는 96m에 이르며 절벽을 이루고 있는 모란봉 아래 대동강이 위치해 있다. 원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최승대(最勝臺)의 생김새가 마치 피어나는 모란꽃과 같다고 하여 모란봉이라 하던 것이 점차 산 전체의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예로부터 천하제일강산으로 이름이 높아 '평양팔경'으로 불렸다.
'앙당한'은 춥거나 겁이 나서 근육을 옴츠리는 모습을 의미하므로 '앙상한'에 가까운 말로 보면 된다.
'햇발'은 사방으로 뻗친 햇살을 의미한다.
* 원문표기
- '얼음 섞인' -> '얼음석긴'
- '미끄러지다.' -> '밋그러지다.'
https://youtu.be/axztsgXi_00?si=PxoU_8R4iCuP9LD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