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윤동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산 Feb 17. 2024

황혼(黃昏)

윤동주 시인과 함께, 너에게 나를 보낸다 17




황혼(黃昏)



햇살은 미닫이 틈으로

길쭉한 일자를 쓰고...... 지우고......


까마귀 떼 지붕 위로

둘, 둘, 셋, 넷, 자꾸 날아 지난다.

쑥쑥, 꿈틀꿈틀 북쪽 하늘로,


내사......

북쪽 하늘에 나래를 펴고 싶다.

 

_ (1936.3.25. 평양에서, 윤동주 20세) 



서울 노원구에 백사마을이 있는 모양이다

특별시 중계동에 산 104번지가 있다 한다

금속판막 삽입 이후로 와파린을 먹는 나는

뇌졸중 예방 위해 각별히 주의하라고 한다

눈이 침침해지는 것이 전조 증상이라 한다

눈이 어두워지니 헛것들이 보이는 것일까

우리나라 서울에 아직도 그런 동네가 있다

백석과 나타샤가 숨어서 살 것만 같은 동네

천사들이 내려와 텃밭을 일굴 것 같은 마을

나는 어찌 백사마을을 백석마을로 읽었을까

나는 왜 104 번지를 1004 번지로 읽었을까


2월 16일에 윤동주 시인이 백석을 찾아갔다

눈이 푹푹 나리고 당나귀 응앙 응앙 우는 곳

세상을 버리고 떠난 마구리에 군불 지피려고

천사들이 연탄 한 장씩 들고 춤추며 찾아갔다

연탄은 하루에 두 장씩만 불태워야 적당하다

불구멍 너무 많이 열면 달라붙어 뗄 수 없다

성급하게 타오르면 삶과 죽음이 달라붙는다

연탄집게로 함부로 떼어내면 둘 다 깨어진다

윤동주 시인의 전도사 김응교 시인은 천사다

어린 천사들과 함께 제사상에 연탄을 올린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연탄을 지고 오른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했던 윤동주 시인과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한 달동네가 환하다


그런데 이 소문은 또 어인 작태란 말이런가

선거철만 되면 불 꺼진 연탄재만 싣고 오는

얼굴에 검댕이로 화장하고 추는 망나니 춤

아, 아직도 저렇게 구태하게 정치를 하다니,


 1936년 3월 25일 평양에서 쓴 작품으로 해가 질 무렵 북쪽 하늘로 날아가는 까마귀 떼를 보며 느낀 바를 쓴 작품이다. 해가 지는 황혼의 모습은 마치 일제 치하로 정체성을 잃어가는 조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그 암담한 현실 속에서 까마귀와 같이 북쪽 하늘로 도피하고 싶은 시인의 심정을 노래한 것으로 보인다.


시인은 이 시를 쓴 날인 1936년 3월 25일 <가슴 1>과 <가슴 2>라는 두 편의 시를 더 남긴다.

'황혼'을 소재로 시인의 다른 작품으로는 <황혼이 바다가 되어>, <흰 그림자>가 있다.


'내사'의 '-사'자는 지정이나 강조를 나타내는 조사(토) '-야'의 방언이다. 즉 '내사'는 '나야'로 해석하여 '나야 북쪽 하늘에 나래(날개)를 펴고 싶다'로 이해하면 된다. '내사'라는 시어는 윤동주의 다른 시 <이적>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생명과 현실의 태반은 어둠이다. 나무에 잎새와 뿌리가 있듯이 사물의 인식에도 순수의식과 불확실한 감성이 작용하는 법이다. 때로는 잎새가 두드러지기도 하고, 뿌리가 돋보이기도 한다. 시인의 의식은 잎새보다 뿌리를 지향하는 게 바람직스럽다. 가변적인 현상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근원에 다가가야 하기 때문이다. 황혼과 까마귀 떼의 대비는 거기 걸맞은 음영을 드리운다. 하루의 노동과 의욕이 정지되고 밤을 맞게 되는 시간, 황혼을 가슴에 안고 못다 이룬 꿈의 나래를 펴 보이는 안쓰러운 영혼의 파닥임이 느껴진다.  


* 원문표기

- '햇살' -> '햇ㅅ살'

- '미닫이' -> '미다지'

- '지붕 위로' -> '집웅 우으로'   


* 나는 윤동주 시인의 모든 작품과 윤동주 시인의 삶에 관한 책을 쓰려고 자료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제주 4.3과 우리나라 해방정국에 관한 작품을 쓰기 위하여 고민하는 과정에서 융동주 시인을 다시 만나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시인으로 살지 못했다. 앞으로 남은 삶을 시인으로 살기 위하여 부활을 꿈꾸고 있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준비 기간이 필요할 것 같다. 최승호 시인의 말씀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윤동주 시인의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이 문장이 나의 앞길을 밝히는 등대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윤동주 시인을 다시 만나서 새롭게 배우고 있다.       



https://youtu.be/4I-PI4HcCb0?si=WPUGko04QDQPJjYY

https://youtu.be/hFGBYZUiqO4?si=JuLpNcE_AGugjjQK

https://youtu.be/-U4jp5LrUPQ?si=nh1OEvrR98W-3v1f





매거진의 이전글 모란봉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