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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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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Feb 20. 2024

공상(空想)

윤동주 시인과 함께, 너에게 나를 보낸다 22




공상(空想)



공상(空想) ―

내 마음의 탑(塔)

나는 말없이 이 탑(塔)을 쌓고 있다.

명예(名譽)와 허영(虛榮)의 천공(天空)에다

무너질 줄도 모르고

한 층 두 층 높이 쌓는다.


무한(無限)한 나의 공상(空想)―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自由)로이 헤엄친다.

황금(黃金) 지욕(知慾)의 수평선(水平線)을 향(向)하여.


 _ (1935. 추정. 윤동주 19세) 윤동주 시인의 첫 활자화된 시

 * 1935년 10월 숭실중학교 학생회에서 간행한 [숭실활천(崇實活泉), 제15호]에 게재



이 작품은 윤동주 시인이 평양숭실중학교에 편입한 후인 1935년에 쓴 작품이다. 명예와 허영으로 쌓는 바벨탑을 경계하며 지성의 끝에 도달하고자 하는 화자의 개인적 욕망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의 작품들 중 처음 활자화 된 작품으로 대중에게 공개된 최초의 시다. 1935년 10월 숭실중학교 학생회에서 간행한 <숭실활천(崇實活泉), 제15호>에 게재되었다.


나는 공상(空想), 상상(想像), 심상(心象/心像)에 대하여 생각을 한다.


은유법이 돋보이는 시로 더해지는 공상을 뜻하는 '마음의 탑'과 무한한 공상을 '마음의 바다'로 표현하였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수록 꿈과 상상 속에서 둥우리를 찾는다. 공상은 모든 사고의 원형질이다. 개방적이고 확대되어서 일정한 틀에 머물지 않는다. 마치 옛날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하늘 닿게!'를 소리치며 높은 탑을 쌓아 올렸듯이, 자유로운 시공을 넘나들며 맘껏 가능과 무의 세계에다 자신을 투영한다. 그것은 현실의 부조리와 욕구불만을 보완하거나 상쇄시키는 효험이 있다. 꿈이 아름다운 것은 현실이 그만치 가혹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좌절이나 불안도 공상을 통해 카타르시스가 된다. 그것은 곧 삶의 탄력성이다. 


1935년 9월 숭실중학교 3학년에 편입한 윤동주 시인은 1936년 3월까지 객지 생활 7개월 동안 시 10편, 동시 5편 등 무려 17편의 시를 쓴다. <공상> <꿈은 깨어지고> <남쪽 하늘> <조개껍질> <고향집> <병아리> <오줌싸개 지도> < 창구멍> <기왓장 내외> <비둘기> <이별> <식권> <모란봉에서> <황혼> <가슴 1> <종달새> <닭 1> 등의 시가 그것이다.


숭실중학교 학생청년회에서 발행하던 [숭실활천]에 실린 <공상>은 그의 시 가운데 최초로 활자화된 작품이었다. 이 무렵 윤동주 시인은 정지용의 시에 심취해 쉬운 말로 진솔한 감정을 표현하는 새로운 시 세계를 열어나간다. 윤동주 시인이 쓴 최초의 동시로 교과서에 실려 있는 <조개껍질>과 <오줌싸개 지도> 등이 바로 이때 쓴 작품들이다. 


<공상>을 쓸 때 윤동주 시인은 열여덟 살로 지금으로 말하면 고등학교 2학년 정도의 학생일 것이다. 1연은 명예와 허영으로 쌓는 바벨탑 이미지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2연에서는 황금과 지욕의 수평선을 향하여 자유롭게 공상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1연에서 허영에 대한 약간의 경계는 있으나 2연에서는 욕망과 공상을 바다에서 헤엄치는 이미지를 빌려 자유롭게 재현하고 있다. 꿈 많은 소년답게 황금과 지식의 수평선을 향하여 공상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는 화자, 만주 이주민으로 태어나 디아스포라로 살다가 처음으로 자신의 조국을 찾아온 소년의 패기가 잘 담겨있는 수작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요즘 윤동주 시인이 어떤 과정을 통하여 우리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 되었을까를 생각하며 처음부터 그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시인은 어떻게 살아야만 할까에 대하여도 생각하고 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전하여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많은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시를 쓰는 방법 등을 알려주는 사이트도 꽤 많다. 하지만 나는 근본적인 것들에 대하여 관심이 더 많다. 언어를 다루고 시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들은 많은데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하여는 관심이 덜 한 것 같다. 왜 시를 쓰려고 하는 것일까? 왜 시를 써야만 할까? 많은 사람들이 자기 피알(PR)의 수단으로 시를 쓰려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시를 쓰면 신분이 높아지고 뭔가 훈장이라도 다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그것은 어쩌면 조선시대의 양반들이 시를 짓고 과거시험 제도에서 시 쓰는 일이 필수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조선시대의 양반들이 생활 속에서 시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요즘에도 시를 쓰고 시를 즐기면 자신이 양반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시에 관심이 많은 것도 같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어쩌면 인격수양의 수단으로 시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예수라는 사람을 알고 싶어서 성경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성인의 청빈한 삶이 좋아서 세례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는 믿음이 부족하여 무조건적인 복종을 싫어하고 예수님의 삶도 객관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또한 나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도 존경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배우려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지 않아서 좋다. 또한 종교라기보다는 자기 수양에 가깝다는 생각에 참선 등을 따라서 해보려고 노력한다. 우리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살피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에 매우 과학적인 접근법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오늘은 무문관에 대한 영상을 보았는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출가자의 행자생활과 수계 과정에 대한 영상도 보았는데 자신의 참모습을 찾으려는 과정이 아름다웠다. 어쩌면 시인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운 구도자의 모습이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의 시들은 세상 읽기와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과정에서 좀 더 깊이 읽고 좀 더 근본적인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만 좀 더 아름답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 혼자만 행복하게 살지 않고 우리들 모두가 가장 행복하게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 인간들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와 무생물까지 우주 만물이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그 해결 방안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 시인들이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바닷가를 걸으며 깊이 생각을 한다. 검은 밤바다에서 끝없이 하얀 껍질을 벗기는 파도처럼 나도 나의 고정관념들의 껍질들을 벗긴다. 잠시도 쉬지 않고 호흡하는 바다의 숨결에 맞추어서 나의 숨결 또한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을 당신에게 따뜻하게 보내면서 아름다운 꽃과 아름다운 구름과 아름다운 별빛을 켠다. 우수가 지나니 밤바람도 한결 따뜻하고 정겨워진 것 같다. 바다에 뱀들이 기어 온다, 바다에서 숲의 바람소리가 들린다. 푸른 바다의 숲에서 뱀들이 하얗게 기어 온다. 뱀들이 허물을 벗는다. 나도 허물을 벗는다. 부드러운 살결이 드러난다. 시는 어쩌면 몰입과 집중에서 태어날 것이다. 바닷가의 나무들이 밤에도 집중과 몰입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수가 지나자 뿌리에 집중했던 시간을 깨운다. 뿌리에서 이불을 개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이불은 필요가 없다. 이제는 뿌리를 떠나야만 한다. 뿌리의 동굴에서 나가야만 한다. 문을 열고 나가서 길에서 살아야만 한다. 길 끝까지 달려가서 잎을 켜고 꽃을 피워야만 한다. 집중과 몰입의 영혼을 매달아야만 한다. 환한 별빛을 켜야만 한다. 햇빛도 달려오고 달빛도 달려오도록 종을 울려야만 한다. 하다못해 조등이라도 켜서 매달아야만 한다. 

 


* 원문표기

- '무너질 줄도 모르고' -> '문허질줄도 몰으고'

- '쌓는다' -> '싸ㅅ는다'

- '펼쳐서' -> '펄처서'

- '헤엄친다' -> '헤염친다'          


https://youtu.be/5NreCeOIs60?si=JO8Wwk-WBi26jC7G

https://youtu.be/s2IG306xr20?si=7M3N0qel-Tq6PO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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