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과 함께, 너에게 나를 보낸다 23
사이좋은 정문(正門)의 두 돌기둥 끝에서
오색기(五色旗)와 태양기(太陽旗)가 춤을 추는 날
금(線)을 그은 지역(地域)의 아이들이 즐거워하다.
아이들에게 하루의 건조(乾燥)한 학과(學課)로
햇말간 권태(勸怠)가 깃들고
'모순(矛盾)' 두 자를 이해(理解)치 못하도록
머리가 단순(單純)하였구나.
이런 날에는
잃어버린 완고(完固)하던 형(兄)을
부르고 싶다.
_ (1936.6.10. 윤동주 20세)
1935년 작품 <거리에서>와 <공상>을 소환한 후 다시 1936년 작품으로 돌아옴
원래 제목은 <모순>이었음 차례에도 <모순>으로 되어 있음
잃어버린 완고하던 형은 누구일까?
1935년 9월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르 마친 윤동주 시인은 평양의 숭실중학교에 입학을 한다. 미션스쿨인 숭실학교는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를 요케 버텨가고 있었다. 하지만 바람벽이 되어주었던 서양 선교사들이 평양을 떠나게 되었다. 1936년 1월 20일 총독부에 의해 교장직에서 강제 해임된 교장 윤산온은 어쩔 수 없이 한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를 사랑했던 학생들은 동맹 퇴학을 감행한다. 퇴학자 명단에는 윤동주를 비롯하여 문익환 등도 있었다. 1936년 3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항의 표시로 윤동주는 결국 6개월 만에 숭실중학교를 자퇴한다.
바로 한 달 뒤인 1936년 4월 중국 산둥성의 지난에서 지난 주재 일본 영사관 경찰부에 체포된 송몽규는 일본 경찰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기록되었다. 이 기록은 그가 삶을 마칠 때까지 빈틈없이 이어진다. 그때부터 그는 요시찰인물이 되어 평생 감시를 받는다. 숭실중학교를 겨우 6개월 다녔던 윤동주는 문익환과 함께 용정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윤동주는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편입한다. 문익환은 5학년에 편입한다. 이때 쓴 <이런 날>을 보면 형 송몽규를 그리워하는 윤동주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깃발과 상관정문에 사이좋게 세워진 두 돌기둥 긑에 오색기와 태양기가 휘날리고 있다. 오색기는 1932년 만주국이 일본인, 조선인, 한족, 만주족, 몽골족 등 5족이 협화하여 건국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깃발이다. 위에서부터 붉은색은 일본인, 파란색은 한족, 백색은 몽골족, 흑색은 티베트족 그리고 배경이 되는 황색은 만주족을 뜻한다. 태양기는 히노마루라고 하는 일본 국기이다. 태극기 없이 오색기와 태양기라는 남의 나라 국기가 휘날리는 운동장에서 뛰어놀아야하는 상황이 윤동주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깃발과 상관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윤동주는 "모순" 두자를 이해하지 못하도록 머리가 단순하다고 탄식한다.
용정에서 돌아와 입학한 광명중학교는 조선인 학생들을 일본 천황의 신민으로 황민화하려는 목표를 가진 학교로 변해 있었다. 당시 흉년의 여파로 경영난에 허덕이다가 일본인에게 매각되어 친일계 학교로 변했던 것이다.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자퇴한 윤동주와 문익환은 조선인의 황국화를 위해서 세워진 중학부에서 공부할 수 밖에 없는 신세에 "솥에서 뛰어내려 숯불에 내려앉은 겪이구나" 하고 개탄을 금치 못하였다. 자기의 정체성을 지킬 수 없고, 자기 정체성이 아닌 깃발 아래 뛰어놀아야 하는 상황이 윤동주에게는 '모순'이었다.
한편 중국으로 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송몽규는 1935년 11월 난징을 떠나 산둥 성 지난 소재의 이웅 산하에서 독립운동에 가담한다. 1년 간 교육을 받다가 1936년 4월 10일 지난 주재 일본 영사관 경찰부에 체포된 뒤 본적지인 함북 웅기경찰서로 이송되어 갖은 고문을 당한다.
윤동주는 아이의 마음으로 동시를 계속 쓰기 어려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맑디맑았던 그의 유년 정신에 갈등과 부끄러움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 반성적인 자아로 인해 글의 시는 점차 독특한 내면세계로 확장되어간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는 조금씩 비극적인 세계를 체험한다.
이 시는 광명학원에 편입한 이후인 1936년 6월 10일에 쓴 작품으로, 침략자의 깃발이 휘날리는 학교 운동장에서 피해자인 조선인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느낀 심정을 그린 작품이다. 시의 제목인 '이런 날'은 일본의 국경일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일본 식민지인 만주국에서는 일본 국경일에 만주국의 국기인 오색 기와 일본의 국기인 태양기(일장기)를 함께 달았다고 한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일본의 국경일에 멋모르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모순적으로 느껴진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숭실중학교에서 신사참배 거부에 동참하여 급우들과 학교를 자퇴하고 고향인 용정으로 돌아와서 광명학원으로 편입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광명학원은 일본계 학교였다. 시인의 이 같은 행동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광명학원에 입학한 것으로 보인다.
모순적인 시대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조선인들을 일갈하듯이 이 작품이 쓰인 2개월 뒤인 1936년 8월 13일 동아일보는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일장기를 말소하여 보도하는 '일장기 말소 사건'이 일어난다.
이 시에서 느낀 모순적인 시대적 상황은 3개월 전에 작성한 <모란봉에서>라는 작품에서도 느껴볼 수 있다.
'햇말간'은 빛깔이 매우 희고 말간이라는 뜻을 지닌 '해말간'의 힘줌말로 여기서는 '순전한, 아주 재미없는'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 원문표기
'두 돌기둥' -> '두돌긔둥'
'그은' -> '끟은'
'하루의' -> '하로의'
'햇말간' -> '해ㅅ말간'
'깃들고' -> '기뜰고'
'못하도록' -> '몯하도록'
'하였구나.' -> '하엿구나.'
마음에도 언제나 문이 없었다
https://youtu.be/eE0mW0TLJ6M?si=8RI62iuqkifxInWd
https://youtu.be/Kj-GiFOPhts?si=pnntZXj4seRQyB3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