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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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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Feb 24. 2024

창공(蒼空)

윤동주 시인과 함께, 너에게 나를 보낸다 29




창공(蒼空)



그 여름날

열정(熱情)의 포플러는

오려는 창공(蒼空)의 푸른 젖가슴을

어루만지려

팔을 펼쳐 흔들거렸다.

끓는 태양(太陽) 그늘 좁다란 지점(地点)에서.


천막(天幕) 같은 하늘 밑에서

떠들던 소나기

그리고 번개를,

춤추던 구름은 이끌고

남방(南方)으로 도망하고,

높다랗게 창공(蒼空)은 한 폭으로

가지 위에 퍼지고

둥근달과 기러기를 불러왔다.


푸드른 어린 마음이 이상(理想)에 타고,

그의 동경(憧憬)의 날 가을에

조락(凋落)의 눈물을 비웃다.


_ (1935.10.20. 평양에서, 윤동주 19세)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이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1935년 9월 1일 평양 숭실중학교에 3학년 2학기로 편입한 후 쓴 작품이다. 이 시의 화자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높다란 가을 하늘인 창공을 동경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가을 끝무렵에 있는 조락의 눈물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화자의 마음에 피어나는 이상이 푸르고 희망차다는 것에서 그 동경이 얼마나 순수하고 강렬한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 무렵 윤동주 시인은 인생에서 첫 번째 실패를 경험한다.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4학년 2학기로 편입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여 한 학년 낮은 3학년 2학기로 편입한다. 친구인 문익환은 4학년 2학기로 편입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친구였던 문익환과는 친구에서 선후배가 되었던 것이다. 그때 마음은 참으로 낭패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나중에 일본 유학길에서 한 번 더 경험하게 된다. 친구이자 사촌이었던 송몽규와 같은 대학에 시험을 보았는데 송몽규만 합격하고 윤동주 시인은 불합격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학교와 관련하여 이렇게 두 번의 절망을 하게 된 경험이 있다. 


이 시의 원제가 '蒼空.(未定稿) /창공.(미정고)'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시인이 끝내 완성하지 못한 미완성의 작품으로 보인다.


자유의 획득을 위해 창공을 노래한다고 해조의 단순성을 벗어나 그 이미지의 복합 구성이나 운율 형태의 자율성을 확대한다. 자유로운 시와 훌륭한 시는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TS 엘리엇의 자유시에 대한 견해를 살피면 어떠한 시도 자유로운 시일 순 없다는 것이다. 자유시는 다만 생명을 상실한 형식에 대한 반항인 동시에 새로운 형식의 창조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창공>이 어떤 시라는 것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그 나름의 방법론에 의해 율동과 의미를 배치해 놓았다. 무한과 가능의 영토인 창공은 하나의 구원 요소이기도 하다. 결코 오늘에 만족할 수 없는 꿋꿋한 기대와 희망을 소년의 이상과 맞물리게 하면서 싱그러운 마음의 축제를 마련하고 있다. 역시 회화성이 두드러진 작품으로서 시적 압축보다는 산문적 진술에 기운 느낌이 짙다. 밝고 힘찬 시상을 통해 미래에의 의지나 젊음이 발랄하게 고동치고 있다. 하늘과 여름의 나무가 좋은 대조를 이루며 평화로움을 나타내고 있다.


'푸른 젖가슴'은 푸른 하늘을 '떠들던 소나기'는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를 의인화한 표현이다.


* 원문표기

- '포플러는' -> '포푸라는'

- '흔들거렸다.' -> '흔들거럿다.'

- '끓는' -> '끌는'

- '떠들던 소나기' -> '떠들든 소낙이'

- '춤추던' -> '춤추든'

- '높다랗게' -> '높다라케'

- '가지 위에' -> '가지우에'

- '둥근달과 기러기를 불러왔다.' -> '둥근달과 기럭이를 불러왓다.'          



3년만 갇혔다가, 3년만 쉬었다가 다시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벌써 37년 세월을 갇혀서 살아버렸네. 아니 죽어버렸네. 일제 강점기 36년이 길어서 변절해 버린 사람들처럼 나도 너무 오래 갇혀 살았더니, 나의  길을 잃어버리고 살았구나. 이제는, 뭉그적거리던 나를 대책 없이 나가라고 하니 겁에 질려서 머뭇거리고 있구나. 아, 오늘은 하늘이 낮게 내려와 나를 적시는구나.


* 메모 


동백꽃이 진다고 슬퍼하지 마라

암술은 남아서 끝까지 젖을 물린다

아비는 자식에게 자리를 물려준다


제주도의 무와 배추는 겨울에도

우거지 시래기로 내걸릴 틈이 없다

온몸에 쟁여놓은 겨울을 피워 올린다


땅속에서 배추벌레가 몸을 풀고 있다

나비에게 젖을 물리려고

무꽃과 배추꽃이 젖앓이를 한다


봄에는 하늘에도 바다에도 땅에도

서둘러서 젖물이 돈다

젖몽우리가 꽃망울로 부풀어 오른다


*


수평선 너머로 풍덩 돌아가니

서둘러서 어둠의 이불을 편다


벌러덩 누워버린 거리의 나무

온몸을 뒤채이며 눈뜨는 거리


물관부 채관부 부지런한 불빛

내 마음속까지 환하게 비춘다


밤에도 잠 못 이루는 나와 나무

별빛도 눈빛도 물빛에 젖는다


* 새가 운다


홀딱 벗고 사랑하자

홀딱 벗고 사랑하자


새가 운다 

저 새는 누구일까


괜찮으니 걱정 마라

괜찮으니 걱정 마라


새가 운다

저 새는 누구일까


빡빡 깎고 목탁치자

빡빡 깎고 목탁치자


새가 운다

저 새는 누구일까


멧비둘기일까 박새일까 직박구리일까

검은등뻐꾸기일까 붉은머리오목눈이일까


생각 말고 시를 쓰자

생각하고 시를 쓰자


봄밤의 새가 운다

저 새는 누구의 영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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