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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윤동주

윤동주 시인과 함께, 너에게 나를 보낸다 45

by 강산






지난밤에

눈이 소―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나리지


_ (1936.12. 추정, 윤동주 20세)



처음에 제목을 <니불>이라 썼다가 <눈>으로 고쳤다.


1936년 12월 동시로 추운 겨울에 내리는 눈을 이불로 묘사한 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모든 사물이 추워 보이는 일제강점시 시절 따뜻한 이불처럼 보이는 눈을 보며 봄을 기다렸을 화자의 모습이 상상된다.


시인이 같은 시기에 쓴 동명의 다른 작품인 <눈>이 있다.


'소―복이'라는 소리늘임법이 사용되었다.


* 원문표기

- '왔네' -> '왓네'

- '지붕' -> '집웅'

- '추워한다고' -> '치워한다고'

- '이불인가 봐' -> '니불인가바'

- '추운' -> '치운'




https://youtu.be/_tZkQZhjd4I?si=gdazIFvn8AuvuuBR

2024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해변에서 /박유빈 눈이 간지러워서 해변으로 갔다 화창한 날씨 눈부신 바다 환한 사람들 수평선만큼 기복 없는 해변의 감정 너무 밝다 해변을 산책하던 나는 반짝이는 모래알 사이에서 보았다 그것은 눈알 실금 없이 깨끗한 눈알 바다에서 떠밀려온 유리병도 아니었고 피서객이 흘리고 간 유리구슬도 아니었다 파도가 칠 때마다 움찔거리는 그것은 오점 없이 깨끗한 눈알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햇살에 인상을 찌푸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제 화창하지 않다 내가 만든 그늘서 눈알은 부릅뜨기 좋은 상태 – fate 숙명 , destiny 운명, 그러나 내 뒤로 사람들이 지나갈 때 눈알은 움찔거렸다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해초처럼 누워서 왔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유언일지도 모르고 그때 배운 것 같다 사랑하지 않고도 빠져 죽는 마음 떠오른다 어떤 이의 어리숙한 얼굴 꼭 죽을 것만 같았던 사람 아니 그것은 죽은 것 혹은 벗어놓은 것 떠밀려온 것 유유자적 흘러온 것 눈알은 하나뿐이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누구를 위한 눈물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걱정될 뿐이다 메마를 것 같다 언젠가 미끈한 눈웃음 짓던 사람을 사랑한 고래가 그랬듯이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다 보면 무언가 밟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세상에 막 내던져진 (피투), 작은 눈빛 오늘은 어느 때보다 화창한 날 어디에도 흐린 곳 하나 없다 너무 밝다 최선을 다해 기지개 켜는 눈알의 의지


https://youtu.be/5sn3lBCTj4s?si=hIF3ljTW_hvKegYt

2024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서울늑대/이실비 사랑을 믿는 개의 눈을 볼 때 내가 느끼는 건 공포야 이렇게 커다란 나를 어떻게 사랑할래? 침대를 집어 삼키는 몸으로 묻던 하얀 늑대 천사를 이겨 먹는 하얀 늑대 흰 늑대 백 늑대 북극늑대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그린란드 매일 찾아가도 없잖아 서울에서 만나 서울에서 헤어진 하얀 늑대 이제 없잖아 우린 개가 아니니까 웃지 말자 대신에 달리자 아주 빠르게 두 덩이의 하얀 빛 우리는 우리만 아는 도로를 잔뜩 만들었다 한강 대교에서 대교까지 발 딛고 내려다보기도 했다 미워하기도 했다 도시를 강을 투명하지 않은 물속을 밤마다 내리는 눈 까만 담요에 쏟은 우유 천사를 부려먹던 하얀 늑대의 등 네 등이 보고 싶어 자고 있을 것 같아 숨 고르며 털 뿜으며 이불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영원 목만 빼꼼 내놓고 숨어 다니는 작은 동물들 나는 그런 걸 가져보려 한 적 없는데 하필 너를 데리고 집에 왔을까 내 몸도 감당 못하면서 우리는 같은 멸종을 소원하던 사이 꿇린 무릎부터 터진 입까지 하얀 늑대가 맛있게 먹어치우던 죄를 짓고 죄를 모르는 사람 혼자 먹어야 하는 일 앞에서 천사는 입을 벌려 개처럼 웃어본다


https://youtu.be/KHV2Rde59Z8?si=hkpr_l_JrMErZtrC

2024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조명실/이실비 그 사람 죽은 거 알아? celebrity 또보겠지 떡볶이 집에서 묻는 네 얼굴이 너무 아름다운 거야 이상하지 충분히 안타까워하면서 떡볶이를 계속 먹고 있는 게 너를 계속 사랑하고 있다는 게 괜찮니? 그런 물음들에 어떻게 답장해야할지 모르겠고 겨울이 끝나면 같이 힘껏 코를 풀자 그런 다짐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이 아직도 코를 흘리고 있다 손톱이 자라는 속도가 손톱을 벗겨내는 속도를 이기길 바랐다 다정 걱정 동정 무작정 틀지 않고 어두운 조명실에 오래 앉아 있었다 초록색 비상구 등만 선명히 극장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이것이 지옥이라면 관객들의 나란한 뒤통수 그들에겐 내가 안 보이겠지 그래도 나는 보고 있다 잊지 않고 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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