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삶글 09
감귤이 꽃을 벗으니 감귤의 알몸이 참 환하다. 감귤꽃이 지고 감귤이 자라는 모습이 참 귀엽다. 감귤나무뿌리는 대부분 탱자나무뿌리다. 탱자나무뿌리에 감귤나무 순을 접을 붙여서 감귤나무가 만들어진다. 탱자나무뿌리가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에 대부분 탱자나무뿌리를 이용한다. 그래서 감귤나무꽃은 탱자나무꽃과 비슷하다. 탱자나무꽃보다 좀 더 풍성해 보인다. 물론 탱자나무에 무섭게 붙어있는 가시는 없다. 감귤나무에 영양상태가 좋지 못하면 뿌리의 힘 때문인지 탱자나무처럼 다시 가시가 돋아나고 탱자나무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감귤꽃이 피면 향기도 진하다. 지금은 그 향기를 머금은 감귤꽃 잎들이 지고 있다. 꽃잎이 다 진 다음에도 배꼽은 오래도록 남아있다. 감귤들의 배꼽을 보면서 나의 배꼽을 생각한다. 어머니 뱃속에서 어머니를 빨아먹고 자란 태아의 시절을 생각한다. 오래도록 어머니의 희생을 생각하라고 배꼽은 남아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나를 주고 싶다. 나를 빨아먹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나도 누군가의 배꼽이 되고 싶다. 그 누군가가 바로 당신이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당신에게 나를 보낸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나의 숨결을 보낸다.
때죽나무는 떼로 종을 울린다. 하늘에서 하얀 종소리가 떨어져 땅을 울린다. 때죽나무 종꽃에서 들리는 소리를 찾아서 곶자왈에 간다. 종소리가 하늘에서 들리지 않고 나무 의자에서 들린다. 때죽나무 종꽃을 보려고 갔더니 벌써 다 떨어져 하늘의 종소리를 땅에서 울리고 있다. 때죽나무 종꽃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하여 집에 심으려고 하니 꽃집에서 그러지 말라고 한다. 때죽나무는 집안에 심는 나무가 아니라고 한다. 떼로 떨어질 수 있어서 불길한 나무라고 한다. 때죽나무는 독이 많아서 떼로 죽인다고 한다. 때죽나무 간 물을 냇물에 풀면 물고기들이 떼로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떼죽나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사월에 떼로 죽고 광주에서는 오월에 떼로 죽었다고 한다. 봄에는 그렇게 떼로 죽었다고 한다. 땅에서 울고 있는 종꽃을 의자에 올려놓고 기도를 한다. 나무 의자가 조금은 따뜻해지고 따뜻한 가슴에서 다시 작은 종소리가 들린다.
나는 언제 어디서 왔을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똑, 똑, 똑, 제습기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내가 숨 쉬는 공기에 이렇게 많은 물방울이 숨어 있었구나. 내가 살아있는 목숨 안에 이렇게 많은 눈물방울이 숨어 있었구나. 밖에는 이미 6월 장마가 시작되었고 안에서도 역시 장마가 시작되었구나.
6월 장마에 돌도 큰다,라는 속담이 있다. 6월 장마에 특히, 수국과 산수국 그리고 대나무들이 가장 크게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하고 있다. 그들 중에서 나는 오늘 산수국을 오래도록 본다. 산수국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한다. 나는 언제 어디에서 왔을까, 깊이 생각한다. 아버지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더 먼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렇게 저 먼 곳으로 다시 찾아가 나의 뿌리를 생각한다.
나의 아버지는 1931년 3월 26일에 이 세상에 태어나셨다. 나는 그때부터 아버지 몸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아마 1965년 6월 장마가 시작되고, 산수국과 수국이 한창 피어나던 이 무렵에 아버지 몸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나의 모든 전생을 한 번쯤 더 되풀이하여 생각했을 것이다. 물에서 살았던 시절부터 물 밖으로 기어 나왔던 경험까지, 그중에서 많은 것들은 생략하고 꼭 필요한 정거장들만을 거쳐서 돌아왔을 것이다. 아가미 시절과 허파 시절을 짧은 10개월 동안 다시 한번 속성으로 살아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1966년 어느 봄날에 힘차게 울면서 이 세상으로 나왔을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어도공화국에는 아버지 같은 산수국이 피어나고 어머니 같은 수국이 피어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어도공화국에는 아들 같은 큰 유리새도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이제 마지막으로 나의 꿈과 나의 삶과 나의 글들을 점검하고 확정하여, 꼭 필요한 것들만 이 세상에 남기고 빈 몸으로 저 먼 곳으로 다시 한번 떠나야만 하리라.
* 지난날 썼던 글들도 가끔 불러와서, 나의 뿌리 찾기를 통하여 자가심리치료를 하고, 또한 내가 이 세상에 남겨야 할 글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요즘 쓰는 글들과 함께 다시 정리를 한다. 나는 어쩌면 지금 쓰고 있는 <꿈삶글>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우고 떠날 생각을 하며 <꿈삶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