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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n 19. 2024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윤동주 시인과 함께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윤동주 시인과 함께




0000 프로필


서른 살까지 사는 것이 꿈이었다. 왼쪽 가슴이 아팠다. 남몰래 가슴을 안고 쓰러지는 들풀이었다. 내려다보는 별들의 눈빛도 함께 붉어졌다. 어머니는 보름달을 이고 징검다리 건너오셨고, 아버지는 평생 구들장만 짊어지셨다. 달맞이꽃을 따라 가출을 하였다. 선천성 심장병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나의 비밀은 첫 시집이 나오고서야 들통이 났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비후성 심근증, 심장병과 25년 만에 첫 이별을 하였다. 그러나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바다는 나를 이어도까지 실어다 주었다. 30년 넘게 섬에서 이어도가 되어 홀로 깊이 살았다. 나는 이제 겨우 돌아왔다. 섬에서 꿈꾼 것들을 풀어놓는다. 꿈속의 삶을 이 지상으로 옮겨놓는다. 나에게는 꿈도 삶이고 삶도 꿈이다. <꿈삶글>은 하나다. 윤동주 시인을 다시 만나 함께 길을 찾는다. 생명의 숲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함께 마지막 순례를 떠난다.



0001 윤동주 시인


일제강점기에 짧게 살다 간 젊은 시인으로,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고민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그의 얼마 되지 않는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으며, 기독교인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아버지는 윤영석(尹永錫), 어머니는 김룡(金龍)이다. 


1931년(14세)에 명동(明東) 소학교를 졸업하고, 한 때 중국인 관립학교인 대랍자(大拉子) 학교를 다니다 가족이 용정으로 이사하자 용정에 있는 은진(恩眞) 중학교에 입학하였다(1933). 1935년에 평양의 숭실(崇實) 중학교로 전학하였으나, 학교에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폐쇄당하고 말았다. 다시 용정에 있는 광명(光明) 학원의 중학부로 편입하여 거기서 졸업하였다. 1941년에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릿쿄[立敎]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1942), 다시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로 옮겼다(1942). 


학업 도중 귀향하려던 시점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1943. 7),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그러나 복역 중 건강이 악화되어 1945년 2월에 생을 마치고 말았다.


유해는 그의 고향 용정(龍井)에 묻혔다. 한편,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옥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은 결과이며, 이는 일제의 생체실험의 일환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고 말았으나, 그의 생은 인생과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심오한 시인이었다. 그의 동생 윤일주(尹一柱)와 당숙인 윤영춘(尹永春)도 시인이었다. 


그의 시집은 본인이 직접 발간하지 못하고, 그의 사후 동료나 후배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그의 초간 시집은 하숙집 친구로 함께 지냈던 정병욱(鄭炳昱)이 자필본을 보관하고 있다가 발간하였고, 초간 시집에는 그의 친구 시인인 유령(柳玲)이 추모시를 선사하였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첫 작품으로 <삶과 죽음> , <초한대>를 썼다. 발표 작품으로는 만주의 연길(延吉)에서 발간된 《가톨릭 소년(少年)》지에 실린 동시 <병아리>(1936. 11), <빗자루>(1936. 12), <오줌싸개 지도>(1937. 1), <무얼 먹구사나>(1937. 3), <거짓부리>(1937. 10) 등이 있다. 연희전문학교에 다닐 때에는 《조선일보》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교지 《문우(文友)》지에 게재된 <자화상>, <새로운 길>이 있다. 그리고 그의 유작(遺作)인 <쉽게 씌어진 시>가 사후에 《경향신문》에 게재되기도 하였다(1946).  


그의 절정기에 쓰인 작품들이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발간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의 자필 유작 3부와 다른 작품들을 모아 친구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에 의해 사후에 그의 뜻대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정음사(正音社)에서 출간되었다(1948). 


그의 짧은 생애에 쓰인 시는 어린 청소년기의 시와 성년이 된 후의 후기 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쓴 시는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 대체로 유년기적 평화를 지향하는 현실 분위기의 시가 많다. <겨울> <버선본> <조개껍질> <햇빛 바람> 등이 이에 속한다. 후기인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시는 성인으로서 자아성찰의 철학적 감각이 강하고, 한편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은 깊이 있는 시가 대종을 이룬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등이 대표적인 그의 후기 작품이다. 


그의 시비가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졌다(1968). 윤동주(尹東柱) 탄생 백주년을 넘기면서 많은 자료들과 영화 등을 통하여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0002 못다 부른 노래


못다 부른 노래가 있다. 아직도 못다 부른 노래가 있다. 꿈속에서도 못다 부른 노래가 있다. 꿈결에도 노랫소리가 들린다. <여수 블루스> 노랫소리 들린다. <산동애가> 노랫소리가 구슬프게 들린다. <부용산> 노랫소리 들린다. <맹서 하는 깃발> 노랫소리 들린다. 장사익 선생님의 <꽃구경> 노랫소리 들린다. 


<웡이자랑> 자장가소리 들린다. 자랑자랑 자랑자랑 자랑자랑, 웡이자랑 웡이자랑 자랑자랑 웡이자랑, 우리 아긴 자는 소리, 놈의 아긴 우는 소리로고나, 웡이자랑 웡이자랑 웡이자랑 웡이 웡이 웡이자랑..., <이어도 사나> 뱃노래가 들려온다.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처어라 처어 쳐라 쳐, 젓구나 가고 젓구나 가고, 쉬고나 가자 쉬고나 가자, 쳐라 쳐 쳐라 쳐, 차라 차 차라 차,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한짝 손에 한짝 손에, 테왁을 메고 테왁을 메고, 한짝 손에 한짝 손에, 비창을 들라 비창을 쥘라, 칠성판을 칠성판을, 등에다 지고 등에다 지고,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산동애가> 사연을 들으며 나는 윤동주 시인을 읽기 시작한다. <부용산> 사연을 들으며 윤동주 시인은 나를 읽기 시작한다.




산동애가 / 열 아홉살 백순례가 오빠 대신 끌려가 죽으면서 불렀다는 노래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골을 멍든 다리 절어 절어

달비 머리 풀어 얹고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


살기 좋은 산동마을 인심도 좋아.

열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도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골에 나는 간다.

노고단 화엄사 종소리야

너 만은 너 만은 영원토록 울어다오.


잘 있거라 산동아 산을 안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어놓고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효성 다 못하고

발길마다 눈물지며 꽃처럼 떨어져서

나 혼자 총소리에 이름 없이 스러졌네.

  

산동애가, 가사, 지화자, 1961년 (osulgil.com)

https://youtu.be/SfJSdH0rf8U?si=SSfdQtyet5nrCVRL


* 산동애가 / 이효정 가수가 약간 변형해서 부른 노래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열아홉 꽃봉오리

피워 보지 못한 채로

화엄사 종소리에 병든 다리 절며 절며

달비 머리 풀어 얹고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짜기에 이름 없이 쓰러졌네

살기 좋은 산동마을 인심도 좋아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어 놓고

열아홉 꽃봉오리 피기도 전에

까마귀 우는 곳에 나는 간다.

지리산 노고단아 화엄사 종소리야

너만은 너만은 영원토록 울어다오.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어 놓고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 효성 다 못하고

발길마다 눈물지며 꽃처럼 떨어져서

지리산 골짝에 한을 안고 쓰러졌네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 효성 다 못하고

발길마다 눈물지며 꽃처럼 떨어져서

지리산 골짜기에 한을 안고 쓰러졌네


https://youtu.be/-3L5XtpwcOc?si=bAwsEKuqfx9a5eNS


부용산 / 일찍 죽은 여동생을 부용산에 묻고 지은 오빠의 애절한 심정을 노래한 제망매가(祭亡妹歌)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 (1절 전문)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은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 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 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 서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 (2절 전문) 

  

https://blog.naver.com/koh34/223347869035


https://youtu.be/fx65ExrdcLc?si=rUMNgVTrzj_j8LVd

여순사건 70주기 "그 아픔과 선율" (여수mbc 창사 48주년 특집) 역사학자 주철희 박사 *노래 - 여수 블루스 / 여수야화 / 산동애가 / 부용산


이어도 사나 / 여러 버전 중의 하나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우리 배는 잘도 간다

솔솔 가는 건 소나무 배요 잘잘 가는 건 잣나무 배요

어서 가자 어서 어서 목적지에 들어나 가자

우리 인생 한번 죽어지면 다시 환생을 못하느니라

원의 아들아 원 자랑마라 신의 아들은 신 자랑마라

홑베개를 베고 혼자 잠자는 원도 신도 두렵지 않다.

원수님은 외나무 다리 길은 무슨 큰길이던가

원수님아 길 막지 마라 사랑 원수는 아니로다.

낙락장송 늘어진 가지 홀로 앉아 우는 새야

내 님 죽은 영혼인가 나를 보면 자꾸만 운다

시집살이 삼 년 첩살이 삼 년 몇 삼 년을 살았다마는

열두 폭의 도당치마가 눈물로 다 젖었도다.

임아 임아 정한 말을 하여라. 절구 뒤 절구공이로 알마.

임이 없어도 밤이 새더라 닭이 없어도 밤이 새더라

임과 닭은 없어도 산다.

밤에 가고 밤에 온 손님 어느 고을 누구인 줄 알리오.

저기 문 앞 푸른 버드나무에 이름 성명 써 두고 가소

만조백관이 오시는 길에는 말 발에도 향기가 난다

무적상놈 지나는 길에는 길에서조차 누린내 난다

강남을 가도 돌아 나오고 서울을 가도 돌아 나온다

황천길은 아침 한나절 거리지만 한번 가면 다시 올 줄 몰라.

강남 바다에서 비 지어 오면 제주 바다에 배 띄우지 마라

명지 바다에 실바람 불면 부모의 넋이 돌아나 오게  


웡이자랑 / 여러 버전 중의 하나


웡이 자랑자랑 웡이 자랑자랑 웡이 자랑자랑 웡이 자랑자랑 저래가는 검둥개야이리오는 검둥개야 우리 아기 재와도라 느네 애기 재와주마 웡이 자랑자랑 웡이 자랑자랑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자랑자랑 웡이자랑 아니 아니재와 주니 질긴질긴 촘대로 손모가지발모가지 걸려 매고 걸려 매여 깊은 깊은 천지 속에 비 온 날은 들이치고 날 좋은 날은 내 칠기여 자랑자랑웡이자랑 일가방상화목동이 어서자랑 부모에게 소신동이 어서 자랑 동숭에게 우애동이 어서 자랑 어서 자랑 웡이 자랑자랑 웡이 자랑자랑 웡이 자랑자랑 웡이 자랑자랑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자랑자랑 웡이자랑 어서 점점 쌀밥먹엉 돈잠자라 혼정저녁 허여사할 거 아니냐 했는다 지엄시네 무사히영저드람시니 무사히영저드람시니


산동애가 유래


산동애가는 여순사건 때

구례군 산동면 상관마을에 

사는 백부전 열아홉 살 처녀가

부역혐의로 끌려가면서

구슬프게 불렀던 노래다.


산동면에서 부자였던 백 씨 집안은

5남매를 두었으나

큰아들과 둘째 아들은 일제 징용과

여순사건으로 희생되고

셋째 아들마저 쫓기게 되자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오빠 대신 끌려가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죽게 된다. 

     

<따뜻한 봄날> 김형영 / 장사익의 가슴을 치는 노래 <꽃구경>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 감아버리더니

한 웅큼 한 웅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은 안 하시고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김형영(1945, 01~ 2021, 02)




https://youtu.be/8skFZkFwUwg?si=LxLzVplP0HWfeatq

https://youtu.be/7rO-ic6RWYM?si=KqNICdvcuUQ7PeSR

https://youtu.be/XdRP_HODHQw?si=SdJhyITw-syc8_p3

https://youtu.be/I96EIng3Qlw?si=7N9WHbBCODU3bV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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