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동주 시인과 함께 4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깜짝깜짝
놀라며 굴속으로 숨어야만 했다
굴이 발각되어 한라산 오르는 길
밤새 내린 눈도 덮어주지 못했다
전분공장이나 단추공장으로 가서
정방폭포의 아우성으로 떨어졌다
지금도 정방폭포에는 빈 관이 많다
주상절리에 빈 관들이 세워져 있다
새하얀 무명천이 하늘에서 끝없이 내려온다
무명천 할머니께서 수의를 만들고 계시는지
만가(輓歌)처럼 베 짜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멀리, 목호(牧胡)들의 범섬까지 뚜렷하게 보인다
물빛과 무명천은 여전히 하얗고
발을 담그고 세수도 하였을 것만 같은 여울물소리
더 이상 발을 디딜 수 없는 노래는 비명(悲鳴)이 된다
길을 잃고 느닷없이 단애(斷崖)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
서귀, 중문, 남원, 안덕, 대정, 표선, 한라산 남쪽 사람들
태평양을 헤매다가 75년 만에 작은 집으로 돌아온다
불로장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아왔던 서복이 머문 곳
지금도 대궐 같은 집에서 불로초를 가꾸고 있는 곳
불로초 공원에 만든 그 작은 공간으로 돌아오는 영혼들
타고난 제 삶도 끝까지 살지 못하고 벼락처럼 떠나버린
그 많은 정방폭포의 사람들
광풍에 느닷없이 길이 끊어져 허공에 발을 딛고
한꺼번에 바다로 추락해 버린 목숨들, 오늘도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바다에서 길을 찾고 있는 사람들
이어도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평화공원과
정방폭포를 둘러보고 무등이왓으로 간다
https://youtu.be/9Ge4Smf3uSQ?si=pdXD5IeQgrhNsSWM
(유튜브 대본)
― 윤동주 시인과 함께 4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깜짝깜짝
놀라며 굴속으로 숨어야만 했다
굴이 발각되어 한라산 오르는 길
밤새 내린 눈도 덮어주지 못했다
전분공장이나 단추공장으로 가서
정방폭포의 아우성으로 떨어졌다
지금도 정방폭포에는 빈 관이 많다
주상절리에 빈 관들이 세워져 있다
새하얀 무명천이 하늘에서 끝없이 내려온다
무명천 할머니께서 수의를 만들고 계시는지
만가(輓歌)처럼 베 짜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멀리, 목호(牧胡)들의 범섬까지 뚜렷하게 보인다
물빛과 무명천은 여전히 하얗고
발을 담그고 세수도 하였을 것만 같은 여울물소리
더 이상 발을 디딜 수 없는 노래는 비명(悲鳴)이 된다
길을 잃고 느닷없이 단애(斷崖)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
서귀, 중문, 남원, 안덕, 대정, 표선, 한라산 남쪽 사람들
태평양을 헤매다가 75년 만에 작은 집으로 돌아온다
불로장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아왔던 서복이 머문 곳
지금도 대궐 같은 집에서 불로초를 가꾸고 있는 곳
불로초 공원에 만든 그 작은 공간으로 돌아오는 영혼들
타고난 제 삶도 끝까지 살지 못하고 벼락처럼 떠나버린
그 많은 정방폭포의 사람들
광풍에 느닷없이 길이 끊어져 허공에 발을 딛고
한꺼번에 바다로 추락해 버린 목숨들, 오늘도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바다에서 길을 찾고 있는 사람들
이어도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평화공원과
정방폭포를 둘러보고 무등이왓으로 간다
정방폭포를 쓰기 시작한다
나는 폭포를 볼 때 위에서 먼저 본다
떨어지기 직전의 물의 마음을 본다
정방폭포를 쓰기 시작한다. 정방폭포 이전과 이후를 쓰기 시작한다. 보이는 것들의 이전과 보이는 것들의 이후를 쓰기 시작한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 오래도록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오래도록 바라보고 메모를 하고 여러 각도에서 다시 바라보고 메모를 수정하고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드디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같은 것도 보는 시간에 따라서 달라진다. 기후 조건과 날씨 상태에 따라서 달라진다. 나는 결코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곳에서만 바라보지 않는다.
이번에 쓰기 시작하는 정방폭포도 그렇다. 나는 우선 정방폭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제주 4·3 당시에 정방폭포 절벽 위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지금은 서복불로초공원이 근사하게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전분공장과 창고들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 내가 정방폭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서복 일행이 지나가면서 썼다는 "서복과지" 혹은 "서복과차"라는 글자를 찾아보고 싶어서였다. 본격적으로 정방폭포에 대하여 메모를 쓰기 시작한 것은 2023년 봄부터였다. 서귀포지역 최대 학살터였던 정방폭포에 5월에 겨우 희생자 위령공간이 우여곡절 끝에 조성되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그 실체가 밝혀지기 위해서는 한 10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드디어 정방폭포를 쓰기 시작한다.
정방폭포는 천제연폭포, 천지연폭포와 더불어 제주도 3대 폭포라고 불린다. 높이 23m, 너비 8m에 깊이 5m에 달하며, 국내에선 유일한, 뭍에서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다. 서귀포 시내에서 버스로 15분 거리에 있다. 입구의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하고 소나무가 있는 계단을 따라 5분 정도 내려오면, 햇빛이 비쳐 은하수 빛깔로 변하는 정방폭포를 볼 수 있다. 멀리서도 시원한 폭포소리가 들리고, 폭포 양쪽으로 주상절리가 잘 발달한 수직 암벽도 볼 수 있다. 한라산에서 내려와 서귀포 시내를 관통하고, 바다 앞으로 하얗게 떨어지는 정방폭포의 모습은, 외국의 거대 폭포처럼 웅장하진 않지만,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단정하게 떨어지는 모습이 전통 수묵화를 감상하는 느낌을 준다.
1995년 제주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국가 명승 제43호로 승격되었다.
정방폭포의 한쪽 석벽에는 '서불과차'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아주 먼 옛날 중국 진시황은 세상을 모두 자기의 손아귀에 넣고 권세를 누리며 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그런데 그 부러울 것 없는 진시황에게도 어쩌지 못하는 고민이 있었으니, 그건 자신의 나이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왕으로서의 위엄이나 왜적을 막아내는 장수로서의 용맹스러움은 나무랄 데 없었으나 점점 늙고 쇠약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은 스스로도 어쩔 수 없음에 늘 진시황은 고민하였다.
늙지 않고 영생을 누리고 싶었던 진시황이 하루는 모든 신하를 불러 놓고 명을 내렸다. “이 세상에서 불로장생 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자가 없느냐?” 서불이라는 꽤 많은 신하는 진시황의 앞으로 나서서 또박또박 그 물음에 대답을 하였다. “소인이 듣기로는 저 동쪽 나라 작은 섬 영주라는 곳에는 영산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불로초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그곳에 가서 그 불로초를 캐오겠습니다.”
자신의 큰 소원이 이루어지게 된 진시황은 서불이 원하는 동남동녀 각 500명을 뽑아주고, 큰 배와 먹을 것을 잔뜩 내려주었다. 동쪽의 거친 바다를 건너오던 서불 일행은 깊은 바닷속 큰 용을 만나 큰 위기를 맞으나 서불의 쩌렁쩌렁한 호령으로 금방 물리쳤다. 제주에 도착하자 서불은 데리고 온 동남동녀 500쌍에게 제주의 영산 한라산에 가서 불로초를 캐오라고 명한다. 동남동녀 500쌍은 한라산에서 불로초를 찾아 온 산을 헤매었지만 결국 불로초를 찾지 못하고, 한라산의 특이한 식물 시로미를 캔 뒤 정방폭포 서쪽 절벽에 ‘서불과지’라는 마애각을 남기고 서쪽으로 돌아갔다.
정방폭포 ‘소남머리’는 4·3 당시 정보과에서 취조받은 주민들 중, 즉결처형 대상자들 대부분이 희생당한 곳이기도 하다. 흔히 정방폭포에서 희생당했다고 하는 희생자 대부분이 정방폭포 상단과 이어지는 이곳에서 총살당했다. ‘소남머리’는 동산에 소나무가 많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서귀중학교 학생이었던 송세종 씨는 "그때 당시 어디 여자인지는 모르지만, 도망가다가 절벽으로 떨어졌는데 노송에 걸렸어. 그 여자가 임신을 하고 있었지. 떨어지니까 군인들이, 이건 하늘이 도운 사람이라 해가지고 살려줬어. 사람 두 번 죽인다는 것이 없으니까. 나도 직접 눈으로 본 건 아니지만"이라고 회고했다. 서귀리 및 서귀면, 중문면 일대뿐만 아니라 남원면, 안덕면, 대정면, 표선면 주민에 이르기까지, 정방폭포 희생자들은 산남 지역 전체에 이른다. <출처: 제주 4·3 연구소, 「4·3 유적 Ⅱ」(2008)>
* 정방폭포 관련 작품은 인터넷 발표 보류 규정 때문에 핵심 작품은 제외하고 참고자료만 여기에 올립니다.
산은 바다의 지붕 위에 떠 있고
바다는 산에서 내려온 물들의 집
수직은 수평 위에 서 있고
수평은 쓰러진 수직의 잔잔한 잠
산의 고향은 바다
바다의 고향은 산
하늘이 수직으로 떨어져
단애 아래 수평으로 걷는다
산은 바닥에서 다시 출발하고
바다는 또 하늘에서 내려온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목숨들
날아오르지 못하는 날개들
바닥이 너무 깊이 젖어
일어서지 못하는 수평선
허리 굽힌 윤슬이
툭, 어깨를 치며
손을 내민다
* 제주 4·3 당시 130여 가구가 거주한 무등이왓은 ‘잃어버린 마을’ 122곳 가운데 가장 큰 마을로, 조와 메밀, 콩 등을 재배했다. 1948년 11월 15일 토벌대가 무등이왓 마을을 진입해 주민 10명을 총살했으며, 21일에는 주민 3명을 총살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동광리는 무등이왓(130여 가구)과 조수궤(10여 가구), 시장밧(3 가구), 간장리(10여 가구), 삼밧구석(45 가구) 등 5개 자연마을로 이뤄진 중산간 마을로 4·3 당시 최소한 172명이 희생됐으며, 인근에는 주민들이 피신 생활을 했던 큰넓궤가 있다.
― 파랑새를 보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정방폭포 절벽에 파랑새가 살고 있다
절벽 중간쯤 움푹 파인 돌 틈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파랑새 두 마리
나는 보았다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정방폭포 물소리의 커튼을 젖히고
힘차게 날아오르는 파랑새를 보았다
꿈인 듯 생시인 듯
밤하늘을 원 없이 날다가
돌아갈 때에는
물고기도 한 마리씩 물고 가는 파랑새들
집에 숨어있는 새끼들에게 주려는 듯
환하게 미소 지으며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정방폭포의 어둠을 먹고 자란 파랑새를 보았다
오래도록 숨어 살던 파랑새가 이제는
당당하게 새끼를 키우는 것을 비로소 보았다
정방폭포에서 태어난 파랑새는 이제 푸르다
한라산으로 날아간다 파랑새가 푸르게 난다
시로미를 입에 물고 한라산 위로 날아오른다
―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정방폭포 앞에서 태평양을 본다
정방폭포 위에서 태평양을 본다
한라산을 등지고 태평양을 본다
제주도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제주(濟州)라는 말은 너무 슬프다
용불용설처럼 출륙금지령이 오래 지속되면서
1946년 8월 1일,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었다
전라남도 제주군이 제주도(道)로 승격되었다
인디언의 땅을 점령한 미국이 눈독을 들였다
섬은 스스로 문을 열지 않으면 섬에 갇힌다
연대와 환대로 마음을 열어야 섬을 지킬 수 있다
덕판배가 판옥선이 되고 거북선이 되는 동안
제주도 사람들은 테우를 타고 멜잡이만 했다
더 늦기 전에 이제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태평양으로 가야만 한다
저 태평양을 보아라
파도가 파도의 등을 밀어주는 태평양을 보아라
바람이 바람을 안고 함께 가는 태평양을 보아라
토박이들이 먼저 이방인들을 안아주어야만 한다
현지인들이 먼저 이주민들을 품어주어야만 한다
연대하는 마음으로 환대하는 마음으로 대해야만
침략자들까지 감동하여 함께 하나가 될 수 있다
탐라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꼭 그래야만 한다
* 탐라국(현 제주도)은 삼국시대에 이르러 백제, 신라와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탐라국이 육지에 직접 예속되어 행정구역으로 편제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중엽인 1105년(숙종 10)부터다. 1271년(원종 12)에 삼별초(三別抄)가 제주도에 웅거 하면서 몽골에 마지막까지 항쟁을 벌이다가 1273년에 패한 후 제주도는 원나라의 직할지가 되어 목마장(牧馬場)이 설치된다. 원의 직할 지였던 까닭에 다른 곳보다도 몽골의 문화적인 영향이 컸으며, 대규모 목마의 흔적으로 환경에도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그 후 약 1세기 동안 제주도는 고려와 원나라 사이에 소속이 여러 차례 바뀌는 복잡한 과정을 겪다가 1367년(공민왕 16)에 완전히 고려에 복속된다. 조선시대에 들어 1416년(태종 16)에 한라산을 경계로 북쪽에 제주목(濟州牧)을 두고, 남쪽의 동부에는 정의현(旌義縣), 서부에 대정현(大靜縣)을 설치하여 전라도에 소속시켜 조선시대 동안 유지된다. 1864년에 정의현과 대정현을 군으로 승격했으며,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23부제(府制)를 실시함에 따라 1895년에 제주부를 설치하여 정의군, 대정 군을 관할하도록 한다. 1896년에 다시 13 도제(道制) 실시로 전라남도 제주군, 정의군, 대정 군이 된다. 1914년에 시행된 군면 폐합 때 정의군, 대정 군과 완도군 추자면이 제주군에 병합되어 제주군은 제주도 전역을 관할하게 된다. 1915년에 도제(島制)를 실시하여 제주도라 했으며, 1946년에 비로소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제주도(濟州道)로 승격하고 북제주군 및 남제주군을 신설한다.
아주 넓고 고요한 바다
평화로운 바다라고 한다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시인이다
시인은 이름을 잘 짓는 사람이다
정방폭포에서 태평양으로 가는
한라산이 묻는다
은하수가 묻는다
일본에게 묻는다 미국에 묻는다
그대들은 평화로운 바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벌였던가요
우리들의 태평양에서
평화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던가
제주도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아니다
제주도는 알고 보면
태평양 그 자체의 몸이다
그리하여 태평양에서는
태평가를 함부로 부를 수 없다
사람들의 손자국과 발자국을 보았다
인류세는 이미 지층이 쌓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머니의 가슴에 총을 쏘고 아버지의
머리에 총을 쏘았고 지구의 몸에도 원자폭탄을
새겨놓았다 우리는 우리들의 가슴에 총을 쏘았다
제주도에서 학살이 일어나던 그 시기부터
우리의 지구는 급격하게 뜨거워졌다
지구는 심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가슴에만 울분이 쌓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들의 지구는 죽어가고 있다
우리들은 이제라도 인간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해야만,
자, 이제 우리들의 가슴에도 평화의 나무를 심고 가꾸자
상처 깊은 어머니의 가슴에도 사랑의 나무를 심고 가꾸자
인류세에서 다시 자연의 지질시대로 돌려놓아야만 하리라
원자력발전소에서는 핵 오염수를 방출하고 있다
하와이를 지나 캘리포니아로 가는데
거대한 쓰레기 섬이 나를 붙잡고
제주도의 사연과 어머니의 상처에 대하여 말한다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류세가 환경변화를 가속화시켜서
식물과 동물들이 적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세상은 상생하는 생명들만 살아남는다
나는 이제 누구와 함께 공생할 수 있을까
제비나비와 제주꼬마팔랑나비가 꽃을 찾고 있다
바다에서 글쎄
청띠제비나비와 왕자팔랑나비가 알 낳을 자리를 찾고 있다
우리는 몸속에 바다를 품고 있다
등뼈에서 바다의 파도소리 들린다
우리들의 먼 조상은 바다에서 살았다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왔다
강에는 칼슘도 없었고 망간도 없었고 인도 없었다
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바다가 필요했다
민물고기는 몸속에 바다의 등뼈를 만들었다
지느러미는 네 개의 다리가 되었고
심장과 허파를 보호하려고 갈비뼈를 만들었다
이크티오스테가는 서서히 육지로 올라왔고
바다에서 강으로 강에서 지상으로 상륙했다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 그리고 인간
몸 안에 바다를 품고 있는 인간
태아를 기르는 바다
자궁은 몸 안에 품고 있는 바다가 분명하다
공룡은 멸종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고
우리들의 숲이 사라지면 사람들도 멸종되고 말리라
꽃이 피는 현화식물의 탄생으로 공룡이 멸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속씨식물들은
겉씨식물처럼 키가 크지 않아도 된다
꽃으로 곤충을 유혹하여 씨를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곤충과 꽃의 상부상조가 속씨식물을 번식시켰고
키가 큰 겉씨식물이 줄어들어서 공룡들의 식량이 줄었다
포유류들도 식물과 공생관계를 유지하여 살아남았다
하지만 공룡들은 식물들을 뜯어먹기에 바빠서 결국 멸종되고 말았다
사람도 그러하리라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면 결국 죽고 말리라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긴 해바라기는 겨드랑이에도
꽃을 피운다 머리가 무거워진 해바라기는
친구가 없던 해바라기는 스스로 많은 꽃을 피운다
해바라기 줄기는 하나인데 꽃들이 참 많다
머리가 무거워서 땅 가까이 내려가니
봉선화 친구들이 환하게 웃으며 맞이한다
가까이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물 흐르는 소리와 햇빛 흐르는 소리 들린다
해바라기들은 제 머리까지 해를 끌어내려
8월의 햇빛 폭포에 푸르게 샤워를 한다
해바라기 밭에서는 정방폭포 소리 들린다
해바라기들은 햇빛 폭포가 되어 더욱 푸르다
섶섬과 문섬 사이로 용오름이 오르고
더 먼 곳에서 무지개가 떠오른다
발 밑의 절벽이 무서워서 망설이고 있는데
한라산에서 뒤따라온 바람이 등을 힘차게 밀어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드디어 태평양이 되어있다
정방폭포 아래에서 오래도록 꿈을 꾸는
이무기는 언젠가는 승천할 수 있지만
정방폭포 위에서 꿈을 포기한
다슬기는 끝내 떨어져서 죽고 말리라
멀리 보이는 수평선도
건널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하면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되지만
덕판배라도 타고 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태평양을 가슴에 품은 큰 사람이 되리라
관다발을 타고 오르내리는
햇빛과 물이 돌아보면 서귀포는 언제나
문만 열면 태평양의 가슴으로 활짝 열린다
서귀포의 감귤나무들이 태평양의 바람을 품는다
정방폭포에 백발거사가 살고 있다
바람이 분다 하얗게 지퍼를 내린다
수직으로 쏟아지던 폭포가 날아간다
하얀 수직이 푸른 수평으로 날개를 편다
바람은 백발거사를 푸르게 춤추게 한다
정방폭포에서는
너에게 갈 수 있는 길이 보인다
너의 푸른 하늘이 환하게 보인다
식물들은
물과 햇빛만 있으면 살 수 있다
식물들의 과학은
인간보다 훨씬 더 앞서간다
맹물로 가는 자동차를
식물들은 처음부터 타고 다녔다
식물들은 누구라도 광합성을 하는데
인간은 아직까지
광합성 인간으로 진화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스스로
지구를 향하여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다시 한번 정방폭포를 본다
아니,
저 먼 곳에서 정방폭포를 다시 본다
내가 살았던 이어도에는 서복 선생님도 함께 살고 계셨다
진시황제처럼 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상머슴이 되셨다
이어도는 하늘에도 있고 바다에도 있고 수중에도 있었다
천국에도 있고 연옥에도 있고 지옥에도 있는 공화국이었다
이어도 사람들은 서복 선생님과 서귀포 이야기를 자주 했다
서귀포에서 가져온 불로초 씨앗으로 서천꽃밭도 만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서복 선생의 꿈
나는 그런 꿈속에서 오십육 년 넘도록 살다가 산책을 나왔다
서복 선생님께서 정방폭포에 쓰셨다는 서불과지(徐市過之)
그 멀고도 아름다운 전설의 길을 따라서 걸어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정방폭포로 간다
서복(徐福), 또는 서불(徐巿)은 전국시대 진(秦) 나라의 인물. 자는 군방(君房), 서불(徐巿)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제(齊) 나라 사람이다. 기원전 219년, 방사로 진시황에게 중용되었고, 이후 명령을 받아 어린 남녀 수천 명을 데리고 동쪽으로 불로초를 구하러 갔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서복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사마천 사기의 진시황본기뿐만 아니라 사기의 '회남형산열전', 진수의 정사 삼국지, 후한서 등에 나온다. 기록에 따르면 서복은 중국을 떠나 단주(亶洲) 또는 이주(夷洲)에 도달하였다고 나오는데, 중국에서 이주(夷洲)는 지금의 타이완을, 단주(亶洲)는 일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또한 서복은 처음부터 불로초를 찾을 수 없음을 알고 아예 진시황의 손아귀를 벗어나 자기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일부러 용왕의 명을 빙자하여 어린 남녀 수천 명과 각종 기술자들을 요구하여 데리고 떠났으며, 동쪽 어느 섬에 자기의 왕국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동쪽으로 간 이후의 행방에 대한 전설로는 그가 일본, 대만 또는 제주도에 도달하였다는 전설이 있는데, 서복에 관한 전승은 동아시아 해안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베링 해협을 건너 알래스카, 즉 아메리카에 도달했다는 전설도 있다.
서복이 다녀갔다는 의미의 서불과차(徐市過此) 혹은 서불과지(徐巿過之)는 글자가 서귀포시 정방폭포 옆에 새겨져 있다. 이 글자 자체는 2000년대 초에 중국인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 주변 정리 사업을 할 때 새긴 것이며 원래는 폭포 절벽 어딘가에 새겨져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2011년에 서귀포에서 글자를 찾아보겠다고 폭포 주변을 정밀 탐색했지만 발견되지 않았다.
물보라가 전분가루처럼 흩날린다
햇빛을 받으니 단추처럼 반짝인다
정방폭포는 한라산 남쪽 최대의 사삼 학살터였다
너븐숭이 순이 삼촌 목소리가 여기서도 들린다
순이 삼촌 소설이 창작오페라로 꽃을 피우는 동안
정방폭포 영령들은 이제 겨우 위령 공간 얻었네
절벽이 너무 높아서 아직도 올라오지 못하는 영혼들
아직도 바람처럼 파도처럼 허공을 떠돌고만 있네
사람들은 바다로 떨어지는 절경이라며 환호하지만
단추처럼 뚝, 떨어진 죽은 영혼들은 오늘도 눈물만,
후반부에 만나는 것이 좋을까
흐르기만 하는 물은 폭포를 보지 못한다
떨어지는 물만이 절벽을 볼 수 있다
한라산을 내려오며 보았던
작은 폭포들을 돌아보면서
정방폭포 위에 다다른 물줄기
문섬과 섶섬이 있는 태평양을 본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한 높이를 가늠하며
온 힘을 다하여 날개를 펼치고 뛰어내린다
* 정방폭포를 쓰기 위해서 현지답사, 자료 조사 및 메모를 시작합니다.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 서귀포라 하였는데
또다시 돌아왔으니 무엇이라 해야만 할까
정방폭포가 더 좋아서 또다시 돌아온 서복
정방폭포와 소남머리 사이에 집을 지었다네
전분공장과 단추공장이 있었던 자리에 글쎄
터를 잡고 아예 살림을 차리고 살아간다네
해방이 되고 3.1절 발포 사건이 일어나고
4.3 무장봉기가 일어나고 초토화 작전으로
단추공장과 전분공장으로 끌려간 사람들
정방폭포 아래로 눈물 떨어뜨려 죽일 때
‘서복과지’글씨에 매달린 영혼들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정방폭포로 돌아왔다네
가족들은 무서워서 시체도 찾아가지 못하여
동남동녀들과 영혼들과 함께 살림을 차렸다네
무서운 단추공장과 전분공장의 기억을 지우고
죽은 사람들과 함께 불로초를 기르며 살아가네
용왕님도 가끔 찾아와 머물고 가는 이곳에는
소나무 가지에 용왕님의 그림자가 걸려있고
하늘에는 남극성이 피고 땅에는 황근꽃이 뜨네
뼈아픈 고통도 억울함도 원망도 잘 익으면 저렇게
용 같은 소나무로 자라고 남극성으로 빛나고
노랗게 피어나는 무궁화, 황근꽃으로 떠오르는구나
더 깊은 곳으로 떨어진다
아스팔트 다리 위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지나가고
내일도 자전거가 지나가고
모레도 자동차가 지나가리라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폭포
바다보다 더 깊은 곳으로 떨어져
다시 한번 높이 솟아오르는 물소리
바다로 가는 물소리가 있다
바다로 가는 발소리가 있다
더 이상 디딜 바닥이 없을 때
우리는 모두 정방폭포가 된다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낮은 곳으로 떨어져서
시체도 찾을 수 없는 영혼들이 있다
늘 낮은 곳에서만 사는 바다는
더 높은 곳을 꿈꾸며
날고 싶어서 날아보고 싶어서
오늘도 파도의 날개를 펼쳐본다
헛묘에 묻혀있는 주인공들의 눈물도 섞여 있으리라
무등이왓에서 큰넓궤로, 볼레오름으로, 단추공장으로
소남머리로, 정방폭포로 걸어갔던 발자국도 있으리라
정방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속에는
어찌하여 그것들 뿐이겠는가
백록담에 잠시 머물렀던 물은
바다에서 하늘로 다시 올라간 구름이었으며
또다시 지상으로 내려온 빗물이 아니었던가
그 속에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당신이 언젠가 흘렸을 눈물도 조금은 섞여 있으리라
아, 그리하여 오늘은 이렇게 정방폭포로 떨어지고
바다의 윤슬로 반짝이며 서로를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우리들은 함께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고 말리라
정방도 아니고 폭포도 아니고 정방폭포라니
차라리 나무라면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언젠가는 자라겠지만
하필 붙잡은 화두가 정방폭포라서
붙잡을수록 자꾸만 아래로 떨어지기만 하는구나
정방에 앉아서 참선이라도 하려 해도
자꾸만 떨어지는 폭포수에 마음까지 젖는구나
그래도 한 번 잡은 화두는 끝까지 잡아야만
무엇인가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나는 오늘도 정방폭포 속에서 살아간다
정방폭포 하나 붙들고 날아오를 꿈에 젖는다
하늘과 바다를 뻥 뚫고 빛 속으로 날개를 편다
너는 어찌하여 나를 만날 수 없을까
너는 어찌하여 나를 만질 수 없을까
너는 어찌하여 나를 안을 수 없을까
나는 어찌하여 너를 만날 수 없을까
나는 어찌하여 너를 만질 수 없을까
나는 어찌하여 너를 안을 수 없을까
너와 나는 언젠가 꼭 만나야만 한다
너와 나는 언젠가 꼭 만져야만 한다
너와 나는 언젠가 꼭 안아야만 한다
너와 나는 우리가 되어야 꽃이 된다
너와 나는 우리가 되어야 밥이 된다
너와 나는 우리가 되어야 삶이 된다
함께 우리가 되기 위하여 내가 먼저
너에게 나를 꿈과 사랑으로 보낸다
행복으로 꽃피는 삶을 위하여 간다
나는 요즘 내 삶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길에서 나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서 찾고 있다. 한라산에서 내려온 물이 서귀포 시내의 복개천 안으로 흐르다가, 이제 잠시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이다가 마지막 다리 아래를 흐르고 있다. 머지않아 이 물은 더 이상 길이 없어질 것이다. 길 끝에서 허공에 발을 내딛어야만 할 것이다. 나의 삶도 이제는 그럴 것이다. 그동안 무난한 길을 걸어왔던 나는 이제 그 길 끝에 도달하고 말았다. 이제는 길 없는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3년만 근무하고 나오려고 했던 발전소에서 나는 벌써 36년 가까이 머뭇거리고 있다. 이제 얼마 후면 임금피크에 접어들고 2년 3개월 후에는 어쩔 수 없이 나와야만 한다. 나는 그동안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 취해서 살았다. 삶의 의미를 깊이 깨닫지 못하고 월급의 마약에 취해서 정신없이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나의 지금 심정은 정방폭포 위에서 어떻게 날개를 펼쳐야만 바다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과연 나의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과연 사랑하는 당신을 기어이 만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정방폭포 위에 감옥이 하나 있다. 쇠창살 안에서 달빛이 책을 읽고 있다. 나와 함께 책을 읽던 달빛이 뛰어내린다. 달빛이 부서지며 햇빛과 섞인다. 정방폭포 위에 있던 감옥도 함께 부서진다. 달빛과 햇빛과 윤슬이 만나 무지개를 만든다. 무지개 다리 위로 오늘이 환하게 웃는다. 무지개 다리를 건너가는 사람이 있다.
책을 읽다가 꿈을 꾸었다. 눈을 뜬 채로 꿈을 꾸었다. 바위 속에 숨어 있던 부처님께서 바위를 열고 피어났다. 나는 돌부처 몸에 피어난 지의류였다. 돌부처 아래 사는 밑들이벌이었다. 아니, 지의류에 숨어 사는 이끼개미귀신이었다. 아니다. 이끼개미귀신에 붙잡힌 돌좀이었다. 그러나 아, 이제 보인다. 섶섬 문섬 범섬이 보인다.
오늘도 나는 시를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너를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사랑을 생각한다. 시는 사랑이다.
마늘꽃
사람들은 당신의
꽃이 피기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마늘의
꽃이 필까봐서
마늘쫑 목을 친다
나는 마늘보다
마늘꽃이 더 좋다
나는 늘 기다린다
당신이 활짝 피어야
나는 더욱 환해진다
나의 사랑은 그렇다
우리들의 사랑은
그래야만 하리라
마늘꽃이 환하다
꽃과 사랑
꽃이 핀다
사랑하면 죽는다는데
그래도 사랑하고 싶다
오늘 해야 할 사랑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꽃이 진다
아니,
꽃이 사랑을 낳는다
아름다운 폐가
일찍 핀 꽃은 일찍 지고
늦게 핀 꽃은 늦게 진다
일찍 핀 매화 일찍 지고
늦게 핀 살구꽃 한창이다
일찍 피었다고 웃지 말고
늦게 피었다고 울지마라
나뭇가지에 빈 둥지 하나
아름다운 꽃대궐 환하다
봄물
나에게 봄물 오르니
만물이 꿈틀거린다
건조한 너의 마음에
단비로 적시고 싶다
뼈와 인대
조개 한 마리
뼈 사이에 조용히
부드러운 살을 내밀고 있다
위험을 감지한 조개 한 마리
부드러운 발을
뼈 속으로 숨기고
뼈를 꽉 다물어버린다
밖에서는 더 이상
조개의 문을 열 수 없다
양쪽에 붙어있는
하얀 인대가
뼈보다 힘이 더 쎄다
세상은
뼈가 아니라
인대가 움직인다
다시 백미러
앞으로 잘 가려면
뒤도 함께 보아야만 한다
백미러 속에 길과 산이 보인다
백미러 속에 강과 산이 보인다
백미러 속에 강산이 보인다
백미러 속에 이어도가 보인다
백미러 속에 그림자가 보인다
백미러 속으로 앞날이 보인다
앞으로 잘 가려면
앞만 보아서는 안 된다
앞으로 잘 가려면
뒤도 함께 보아야만 한다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잘 뒤돌아 보아야만 한다
내가 걸어온 나의 길이
내가 걸어갈 나의 길을
뒤에서 잘 밀어줄 것이다
방황과 여행과 순례는 나에게
여행은 돌아올 곳을 여기에 두고 떠난다
방황은 돌아올 곳을 박차고 떠나 버린다
그리하여 여행이 끝나면
처음 있었던 곳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방황이 끝나면
나는 반드시
새로운 곳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여행보다 오히려
방황의 길이
더욱 의미 있고 아름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순례는 나에게 무엇일까?
거시기와 어처구니
혓바늘
입 속의 혓바늘
바다와 나의 숨결이
바다는 언제나 숨을 멈추지 않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바다는 언제나 숨을 멈추지 않는다
바다는 오늘도 살기 위하여 숨 쉰다
바다는 오늘도 쓰레기 가득 토한다
나도 자주 쉬지 않고 울분을 토한다
바다와 나의 숨결이 만나 춤을 춘다
바다와 나의 숨결이 만나 하늘 된다
바다와 나의 숨결이 만나 구름 된다
바다와 하늘 사이에 틈이 있어 산다
바다와 하늘 사이에 틈이 좋아 산다
바다와 나 사이에도 틈이 있어 좋다
하늘과 나 사이에도 틈이 있어 산다
오늘은 정방폭포에 다시 와서 시와 시조를 생각한다. 詩(시)와 時調(시조)를 생각한다. 時調(시조)에서 중요한 것은 詩(시)가 아니라 時(시)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시조(時調)라는 명칭은 조선 영조 때의 가객 이세춘이 당시에 ‘단가’라고 불리던 것을 ‘시절가조(時節歌調)’라고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시조’라는 명칭의 원뜻은 시절가조(時節歌調), 즉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라는 뜻이었으므로, 엄격히 말하면 시조는 문학 갈래 명칭이라기보다는 음악곡조의 명칭이다. 1920년대 후반 최남선의 「조선국민문학으로의 시조」를 필두로 전개되었던 시조부흥운동과 더불어 문학 갈래 명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 다시 시작하는 순례
<4·3과 평화> 여름의 얼굴이 된 정방폭포
상처가 깊을수록 많은 눈물을 쏟아서 더욱 하얗다
새하얀 무명천이 하늘에서 끝없이 내려온다
무명천 할머니께서 수의를 만들고 계시는지
만가(輓歌)처럼 베 짜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얼굴 안쪽에 그늘처럼 흑백사진 한 장이 숨어있다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전분공장과 창고들이 보이고
멀리, 목호(牧胡)들의 범섬까지 뚜렷하게 보인다
물빛과 무명천은 여전히 하얗고
발을 담그고 세수도 하였을 것만 같은 여울물소리
더 이상 발을 디딜 수 없는 노래는 비명(悲鳴)이 된다
길을 잃고 느닷없이 단애(斷崖)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
서귀, 중문, 남원, 안덕, 대정, 표선, 한라산 남쪽 사람들
태평양을 헤매다가 75년 만에 작은 집으로 돌아온다
불로장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아왔던 서복이 머문 곳
지금도 대궐 같은 집에서 불로초를 가꾸고 있는 곳
불로초 공원에 만든 그 작은 공간으로 돌아오는 영혼들
타고난 제 삶도 끝까지 살지 못하고 벼락처럼 떠나버린
그 많은 정방폭포의 사람들
광풍에 느닷없이 길이 끊어져 허공에 발을 딛고
한꺼번에 바다로 추락해 버린 목숨들, 오늘도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바다에서 길을 찾고 있는 사람들
그중의 한 사람을 따라서 긴 순례를 다시 시작한다
* 정방폭포는 한라산 남쪽 최대의 학살터였다. 75년 만인 2023년 5월에 비로소 서복불로초공원 한쪽에 작은 4·3 희생자 위령공간이 마련되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_(1941. 11. 20. 윤동주 25세)
* 정방폭포에서 베틀소리가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만가(輓歌) 소리도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아우성소리가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자장가소리도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원자폭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일본이 항복하는 소리 들린다.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일장기 대신 성조기가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왜 제주도의 폭포는 남쪽에만 있을까? 자세히 살펴보니, 북쪽의 폭포들은 낮은 포복으로 기어 오고 있었다. 윤동주 시인이 요즘 시인이라면 어떤 시를 쓰고 있을까? 나는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며 나의 꿈과 나의 삶과 나의 문학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점검하며 순례를 떠난다. 윤동주의 거울 하나 들고서 순례를 다시 시작한다.
"하늘을 보지 못해서 부끄럼이 너무 많구나! 나는 지금껏 죽어가는 것들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나는 이제라도 나한테 주어진 길이 아니라,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길을 찾아서 걸어가고 싶다. 오늘 밤에도 나의 별은 잠들지 못하고 추위에 떨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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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브런치북] 작가님 참고자료 1. 에세이 (brunch.co.kr)
06화 Why I Write 나는 왜 쓰는가 (brunch.co.kr)
제주4·3평화재단 (jeju43peace.or.kr) 제주4·3이란 : 1947년 3월 1일,요란한 총성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