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의 사랑이 출발한다
별 하나의 사랑이 도착한다
오늘 밤에 내가 만난 저 별빛은
어느 먼 곳에서 출발한 것일까
오늘 밤에 내가 만난 이 사랑은
어느 아득한 곳에서 찾아왔을까
오늘 밤 내가 당신에게 출발하면
우리는 어느 먼 별에서 만날까
오늘도 예수님은 사랑으로 빛나고
오늘도 어머니는 사랑으로 빛난다
* 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한다. 부처님의 자비에 대하여 생각한다. 어머니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한다. 기독교의 근본은 사랑인데 일부 극우 기독교인들의 혐오에 대하여 생각한다. 불교와 가톨릭은 대기업인데 기독교는 자영업이라는 말에 대하여 생각한다. 김건희를 지키려다가 계엄령까지 발동한 윤석열을 생각한다. 그리고 괴물이 되어버린 윤석열 일당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혹시 나도 그런 괴물이 되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며 반성하는 요즘이다.
https://youtu.be/1IKRVJfmyrI?si=HtfP1TOC9lXaBdnz
어떤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알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 링컨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나는 다만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나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라도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내가 먼저 다가가서 그의 진짜 모습을 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면 비로소 우리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진실로 아름다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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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징검다리 건너 외딴집에서 태어났다. 행정구역으로는 월경리였으나 원등 1구에 가까웠다. 삼기천을 경계로 원등리와 월경리가 나누어졌다. 우리 집은 바로 그 삼기천 둑 너머에 있었다. 아마도 삼기천 둑 공사를 하면서 하천 부지의 자투리 땅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자투리 땅에 불법 건축물을 짓고 살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불법 건축물인 우리 집은 전기를 설치할 수 없었다. 징검다리 건너 원등 1구로 이사를 오면서 비로소 전기가 들어왔고 이웃이 생겼다. 바로 앞 집이 주동이 집이었고 주동이 집 앞이 옥자 집 그리고 옥자 집 옆이 종길이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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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천성 심장병 환자로 태어났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비후성 심근증 환자로 태어났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나도 몰랐다. 나는 달리기를 잘하지 못했다. 숨이 차서 달릴 수 없었다. 체력이 좋지 못해서 숨이 차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체력단련을 위하여 밤에 홀로 학교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달과 함께 뛰었고 별빛에 흠뻑 젖으며 운동장을 홀로 외롭게 뛰었다. 하지만 더욱 숨이 차서 오래도록 뛸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남몰래 쓰러지는 들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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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가난해서 국민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도시로 나가 돈을 벌어야 했던 누나와 큰형과 작은형을 보면서 나는 중학교를 가기 위해서 나 스스로 돈을 모아야만 했다. 나는 오리를 길렀고 닭을 길렀고 토끼를 길러 나의 저축통장을 만들었다. 내가 짝사랑을 시작한 국민학교 3학년부터 지게길을 시작했다. 왕산과 진등산과 사다리산과 심산에 올가미를 놓아 산토끼를 잡고 싸이나로 꿩을 잡아 팔았다. 뱀과 개구리도 잡아서 팔았다. 나는 내 스스로의 힘으로 중학교를 가기 위하여 스스로 돈을 모아야만 했다. 나는 왕산에 울타리를 만들고 대량으로 토끼를 길러볼 꿈을 꾸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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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은 돈으로 나는 곡성 읍내 병원을 남몰래 찾아갔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스스로 병원을 찾아갔다. 나는 참 바보였다. 멍청이, 반편이, 똥골이, 좀팽이, 꺼벙이, 외톨이, 눈물단지이면서 동시에 울음 없는 아이였다. 나는 나의 몸이 아파도 가족들에게 아프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돈이 필요해도 돈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학교에서 매를 맞거나 오후에 남아서 청소를 하기도 했지만 집에 가서 돈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왼쪽 가슴에 청진기를 대어본 늙은 의사는 선천성 심장 판막증이라고 말했다. 심장병은 청진기로 소리만 들어도 바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치료법은 없고 반드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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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나라 의술로는 심장수술을 잘하지 못했다. 육영수 여사가 심장재단을 만들어서 홍보하던 시절이었다. 심장병 어린이를 미국으로 데려가서 수술을 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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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관 철문 안쪽에 숨겨두었던 흑백텔레비전에서 나는 그런 어린이들을 많이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전설의 고향, 전우, 타잔, 원더우먼, 로봇태권브이, 수사반장, 수사본부..., 이런 프로그램들이 생각나겠지만 내 기억에는 미국에서 심장 판막증 수술을 받고 돌아온 아이들 사연들이 많이 보였다. 그 당시에 나는 대통령은 박정희만 해야 하는 줄 알았고 국회의원은 문형태와 고재청이만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우리 집 벽에는 늘 문형태와 고재청 사진이 박혀있는 한 장 짜리 달력이 붙어 있었다. 그러다가 원등 3구 우리 친구 강인옥의 할아버지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나의 책꽂이에는 아직도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상이란 도장이 찍혀있는 옥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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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광주까지 가서 남몰래 진찰을 받았다. 심장병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심장병 환자로 살아야만 했다. 차마 가족들에게도 말을 할 수 없었다. 집안에 심장병 환자 한 명 있으면 아무리 부자라도 그 집은 망한다고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는 홀로 고민했다. 내가 심장병 환자라는 사실을 알면 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돈이 없어서 자식 수술을 시켜주지 못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그런 고민을 하다가 나는 독하게 마음먹고 혼자 남몰래 버티다가 홀로 죽기로 결심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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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치 때문에 이가 아무리 아파도 치과에 가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충치 때문에 이가 너무 아플 때 솜에 석유를 묻혀 꽉 물고 있으면 덜 아프다고 하여 나는 이가 아플 때마다 솜에 석유를 묻혀서 힘껏 물곤 하였다. 그러다가 충치가 더욱 심해지고 치아의 구멍이 커져서 결국 어금니 두 개가 깨어져버렸다. 지금은 그 빈 어금니 자리에 새로운 이를 넣고 싶어도 넣을 수 없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옆에 있던 이가 빈 공간으로 누워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참으로 어리석게 살았다. 아니, 이 소중한 인생을 허망하고 어리석게 허비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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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가 선천성 심장병 환자라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으면 나의 삶은 아마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머니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방앗간 천장에서 떨어지셔서 크게 다쳤기 때문에 늘 구들장으로 누워 계셔야만 했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도붓장사를 해야 했던 어머니가 너무 불쌍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모두가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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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한다. 부처님의 자비에 대하여 생각한다. 어머니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한다. 기독교의 근본은 사랑인데 일부 극우 기독교인들의 혐오에 대하여 생각한다. 불교와 가톨릭은 대기업인데 기독교는 자영업이라는 말에 대하여 생각한다. 김건희를 지키려다가 계엄령까지 발동한 윤석열을 생각한다. 그리고 괴물이 되어버린 윤석열 일당의 행동들을 지켜보면서 혹시 나도 그런 괴물이 되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을 다시 한번 깊이 들여다보며 반성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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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기 시작했을까. 나는 늘 내 이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다. 신발가게 하시던 아버지 친구분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들었다. 술 한 잔 얻어 마시고 즉석에서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들었다. 진성(鎭星)은 토성(土星)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쩌면 토성에서 오지 않았을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나는 혼자 생각하며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성이 배인데, 사람들은 먹는 배를 생각하며 '배꼭지'라고 하였지만 나는 어쩌면 먹는 배가 아니라 바다를 건너가는 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토성에서 지구까지 배를 타고 오지 않았을까, 홀로 깊이 생각하곤 하였다. 내가 선천성 심장병 환자라는 사실을 홀로 알았을 때 생각했다. 또 토성에서 배를 타고 와서 지구에 도착하여 정박하는 과정에서 어떤 충돌이 있었으며 그 순간에 심장이 충격을 받아서 고장 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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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에는 무의식적으로 윤회설이 스며들어 있었다. 불교를 더 공부하기 위하여 대학생불교학생회장도 하고 스님이 되려고 절에 들어가 머리도 깎아보았지만 나는 종교인이 되지는 못했다. 나는 성경공부를 하기 위하여 1년 동안 정식으로 성당에서 성경을 배우고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도 받았지만 적극적인 종교인은 되지 못했다. 또한 개신교에도 친구를 따라서 가보기는 했지만, 조용히 묵상하는 기도가 아니라 큰 소리로 소리치며 하는 통성기도가 나의 체질에 맞지 않아서 더 이상 가지 않았다. 나는 종교를 배척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종교의 순기능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의 순기능 중의 하나는 약자들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국가에서 미처 챙기지 못하는 약자들을 위한 봉사와 희생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일부 극우 기독교인들이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혐오를 조장하고 있어서 걱정이다. 나쁜 종교와 나쁜 정치가 만나면 참으로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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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구에 와서 처음 만난 친구들이 삼기초등학교 54회 동창생들이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어느 한 집단에 소속되지 못했다. 나는 외딴집에서 태어나 자랐다. 월경 1구에 속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월경 1구와 월경 2구 중간쯤에 있는 외딴집이었다. 역삼각형 모양의 아래 꼭지점 부근에 있는 외딴집 이었다. 거리상으로는 원등 1구에 더 가까웠다. 삼기천의 징검다리만 건너면 원등 1구였다. 나의 기억은 그 외딴집에서 출발을 한다. 그런데 어쩌면 그 외딴집 이전에 살았던 월경리 2구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을 하기도 한다. 월경리 2구는 보통 행경(행정)이라고 불렀는데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내 기억에는, 아주 작고 허술한 집이 물가에 있었는데 벽도 반듯하지 못했고 방바닥의 수평도 제대로 맞지 않는 그런, 집 같지 않은 집이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 집에 관한 꿈을 꾼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방 안 여기저기 빗물을 받기 위하여 세숫대야나 양동이를 놓아두는 집, 잠을 자면서도 기울어진 방바닥 때문에 미끄러져서 한쪽 벽에 붙어있게 만드는 집, 벽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꿈속에서도 벽이 무너질 것 같아서 걱정하는 그런, 집 같지 않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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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나는, 아주 작고 불안한 집에서 잠을 자다가, 그대로 집이 통째로 나의 무덤으로 변하는 꿈을 가끔 꾼다. 나의 무의식 가장 아래 바닥에 그런 집이 하나 있다. 나의 불안은 아마도 그 집에서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위태로움 또한 그 집에서 출발한 것일 것이다. 그 위태로운 집과 나의 선천성 심장병이 나의 유년시절을 대표하는 결정적인 요인일 것이다. 사람들의 삶은 대부분 유년시절의 결핍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유년시절의 결핍을 채우기 위하여 남은 시간을 발버둥치는 것이 어쩌면 각각 개인들의 삶이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유년시절의 결핍을 만회하기 위해서 남은 평생을 발버둥치며 사는 인생은 뭔가 허전함이 존재할 것이다. 또한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바로 나의 심장병인데, 싫든 좋든 평생을 함께 살아야만 했던 심장병 외에 또 다른 친구 몇 명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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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기초등학교 54회 동창생들 중에 심광식이란 친구가 있었다. 월경 2구에서도 더 깊은 산골에 살았던 친구였다. 그 친구와 나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아마도 가난의 동지여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했다. 그런데 나와 심광식은 그 가난한 동네에서도 더욱 가난한 극빈자였다. 심광식은 결국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버렸다. 학교를 그만두고 홀로 외롭게 지내던 시절에 나와 자주 만나던 친구였다. 그렇게 소식이 끊어진 심광식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참으로 많이 보고 싶은 심광식, 너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 우리 이승에서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
삼기초 54회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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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의 종착역에서 태어난 우리들은
삼기천을 따라 내려가 섬진강 되어
먼바다로 까지 나가 살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이태리에 산다는 혜숙이
얼굴을 보았다 잘 살아온 종길이가
밀라노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캐나다 산다는 혁찬이는 잘 있을까
울산에 산다는 희민이는 잘 있을까
의정부에 산다는 경희는 잘 있을까
아직도 유배에서 풀리지 않은 나는
언제쯤 연어의 종착역으로 돌아갈까
흙이 되어버린 친구들도 생각이 난다
진섭이 정우 석순이 그리고...,
먼바다를 건너오는 실뱀장어들 보니
연어들도 머지않아 돌아올 것 같구나
탐라국 입춘굿 낭쉐처럼 올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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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기초 54회 동창생들 중에 심광식이 있었다. 월경 2구에서도 더 깊은 산골에 살았던 친구였다. 그 친구와 나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아마도 가난의 동지여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했다. 그런데 나와 심광식은 그 가난한 동네에서도 더욱 가난한 극빈자였다. 심광식은 결국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버렸다. 그렇게 소식이 끊어진 심광식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참으로 많이 보고 싶은 심광식, 너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
* 혹시, 심광식 소식 아는 친구 있을까요? 심광식 연락처 알 수 있을까요?